[그 시절 우리는] 한라산 테우리⑤ 말 엉덩이에 이름을 새기다

  • 입력 2018.12.23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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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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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 일로 내견장에 말을 네 마리나 끌고 나왔어?”

“아, 금년에 요놈들 내견 지질 때가 돼서….”

“아이고, 자네 어제 읍내 가더니만 대장간에 내견 만들러 갔었구먼.”

내견. 말 엉덩이에다 쥔장이 찍는 불도장을 이르는 말인데, 한자말 같지만 그게 아니고 순수한 제주 사투리다.

어미 말이 새끼를 낳으면 한 살 때까지는 어디를 가나 자기 새끼를 데리고 다니기 때문에, 따로 표시를 해두지 않아도 잃어버릴 염려가 없다. 그러나 두 살이 넘어서면 어미 품을 떠나 독립을 한다. 그래서 2년차 되는 때에 엉덩이에 표시를 해두어야 한다.

그러니까 내견은 주인이 말 엉덩이에 찍는 쇠도장이다. 그것을 불에 달궈서 표시를 하는 행위를 내견 찍는다, 혹은 내견을 낸다, 라고 얘기한다. 마을 한 쪽에 내견장이 따로 마련돼 있는데, 물론 내견을 찍을 때에도 말이나 사람이 다치지 않게 해달라고 먼저 고사를 지낸다.

“자, 다들 밧줄 단단히 잡았지? 어이, 거기 앞다리 담당, 걸어 넘길 준비 다 됐어?”

“앞다리는 걱정 말고 뒷다리나 잘 걸어 넘기라구.”

“단번에 쓰러뜨려야 돼. 잘 못하다간 발길질에 얻어맞아 다치는 수가 있어.”

“준비 다 됐지! 하나, 둘, 셋 하면 넘어뜨리는 거야. 하나, 둘, 셋!”

사람들이 앞다리와 다리를 각각 따로따로 밧줄로 걸어 나눠 잡고는 일시에 넘어뜨리자, 말이 울음소리를 내지르며 쓰러진다. 그 사이에 불에 달궜던 내견(쇠도장)을 엉덩이에 눌러 지진다.

테우리 출신 송종오 할아버지에 따르면, 보통은 말 주인이 대장간에서 자신의 성씨를 내견으로 새긴다. 하지만 김 씨나 이 씨나 박 씨처럼 흔한 성씨의 경우에는 겹칠 염려가 있기 때문에, 주인 이름자의 한 글자를 한자로 쇠도장에 새기기도 했다.

물론 요즘은 울타리가 쳐진 목장에서 말을 사육하기 때문에 엉덩이에 별다른 표시를 안 해두었다고 해서 혼란이 생길 이유가 없으니 ‘내견’이라는 말 자체가 아예 사라져 버렸다

엉덩이에 주인의 이름자가 낙인으로 찍힌 말들은 테우리에게 넘겨져서 한라산으로 올라가게 되는 것이다.

송종오 할아버지는 열대여섯 나이에 말을 몰겠다고 테우리 노인을 찾아갔다고 했다. 소년 송종오와 노인 테우리는 이런 대화를 나눴다. 제주 사투리는 어려우니 그냥 표준어로 소개하자.

“저, 테우리 시켜 주세요.”

“허허, 고놈 참, 아니, 할 짓이 없어서 말 모는 테우리 일을 배우겠다고 그래?”

“말을 몰고 산으로 돌아다니는 거 아주 재밌을 것 같아서….”

“쯧쯧쯧. 가난이 죄지. 너라고 어디 테우리 일이 하고 싶어서 찾아왔겠느냐.”

노인이 끌끌 혀를 차는 이유는, 자신이 겪은 소싯적 테우리 생활의 절절한 애환을 떠올린 탓이다. 한라산의 말 테우리는 이솝 우화에 나오는 양치기 소년처럼, 피리나 불고 낮잠이나 자면서 해찰 피우듯 유유자적 할 수 있는 한가로운 구실이 아니었다.

“대개 집안이 아주 빈한한 집의 남자 아이가 먹고 살 길이 막막하니까, 말을 많이 키우는 부잣집에 양자처럼 입양되어서 테우리를 하는 것이지요. 머슴이 새경을 받듯이, 테우리 노릇을 1년 해주면 말 한 필을 받거나, 혹은 돈으로 환산해서 삯을 받든가…그렇게들 했어요.”

자, 바야흐로 ‘견습 테우리’ 송종오 소년이 옆구리에 차롱을 지참하고서 첫 출근을 한다. ‘차롱’은 대나무를 잘게 쪼개 엮은 도시락의 제주 토속어다. 보리밥에다, 반찬이라야 된장에다 마늘장아찌가 전부였다.

“그래, 어디 한 번 올라가 보자.”

“예, 할아버지.”

견습 테우리가 노인 테우리를 따라 한라산 중턱으로 첫 출근을 한다. 잘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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