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64] 소박한 바람

  • 입력 2018.12.23 18:10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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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원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귀농·귀촌한 지 3년이 지나가고 있다. 첫해(2016년)에는 미니사과 알프스 오토메 묘목을 식재했고 2년차(2017년)엔 나무를 자라게 했고 3년차인 올해는 처음으로 적은 양이지만 수확할 수 있었다.

그동안 내가 은퇴한 후 귀농하여 농사를 짓는다고 하면 텃밭농사나 취미농사 정도로 이해하는 지인들이 많았다. 평생 안 해보던 농사일을 60대 중반이 넘어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리라.

아무튼 만 3년 동안 농촌 현장에서 농부로 살면서 내 딴에는 많은 것을 직접 몸으로 마음으로 겪어 보았다. 농업·농촌·농민 문제를 나름 평생 고민한다고는 했으나 근 50여년을 도시에서 살았고, 농사라고는 텃밭농사 조금 해본 것이 전부였으며, 현장 농민들의 삶과 일을 이해하려고 노력은 하였으나 옆에서 피부를 맞대고 살아본 경험은 없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생소하고 낯설었다.

도시생활에 익숙한 나는 농촌에서의 생활이 마냥 즐겁고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현실도 조금씩 느끼고 있고, 비록 소농이지만 취미로 하는 농사일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라 할까. 토양검사와 관리, 관주시설, 전지 전정, 유기방제, 퇴비 및 영양소 제조 및 공급 등 전문적인 일을 해야 했다. 당연히 판매를 해야 하고 소득도 올려야 한다. 적당히 농사짓다가는 하나도 건지질 못 한다는 사실에 늘 긴장하게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삽질 하나, 낫질 하나 제대로 할 줄 몰라 몇 번 다치기도 했고 응급실 신세를 진적도 두 번이나 있었다. 예초기가 시동이 걸리지 않거나 동력분무기가 운행 중 멈추면 기계치인 나는 몇 시간씩 이 작은 기계들과 씨름하느라 정작 농사일의 진도는 하나도 못 나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무더운 여름날의 농사일은 정말 힘들고 숨이 막혔다.

농민들의 모임에 적극 참여하고 기술센터에서 주로 진행되는 농민교육도 그들과 함께 받았다. 작은 규모의 소농이지만 프로 농사꾼으로서의 삶을 목표로 하였으니 생산물에 직접 나의 브랜드를 붙여 판매도 해보았다. 이제 생초보 농사꾼 딱지는 조금은 뗀 것 같기도 하다고 자평해 보기도 한다.

이대로 세월이 흘러 10~20년쯤 지나면 지인들이나 후세대들이 나를 인생 전반부에는 교수로 살았고, 인생 후반부에는 철저하게 농부로 산 사람이라고 생각해 주지 않을까. 나 같은 사람이 은퇴 후 귀촌하여 농사꾼으로 살았다고 해서 뭐하나 바뀔 것 없고, 애초에 바뀌리라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냥 그렇게 살다가 사라져 가는 평범한 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박한 바람이 있다면 나를 아는 지인들이 이론과 현장을 동시에 이해하고, 대안을 찾은 사람이 아니라, 찾으려 애썼던 사람이었다고 생각해줬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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