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농민에게 필요한 건 적선 아닌 권리!
[농정춘추] 농민에게 필요한 건 적선 아닌 권리!
  • 김은진 원광대 교수
  • 승인 2018.12.23 18: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은진 원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미국 뉴욕 현지시간으로 2018년 12월 17일, 유엔(UN) 총회에서 드디어 ‘농민권리선언’이 찬성 121표, 반대 8표, 기권 54표로 채택됐다. 28개 조항으로 이뤄진 이 선언은 그냥 농민이라는 사람에게 어떤 권리가 있는가라는 것만을 선언하는 것이 아니다. 식량생산이라는 고유의 의미를 넘어서 농업과 농촌, 더 나아가 21세기 위기에 직면한 인류의 생존, 지구환경 생태계의 보존이라는 거대담론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문제의 중심에 농민이 있음을 천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유엔이 그동안 숱하게 해왔던 각종 선언과 마찬가지로 이 선언도 그야말로 ‘선언’이다. 단순한 ‘선언’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토록 기뻐하고 기대를 하는 것은 이런 ‘선언’까지 가는 데도 17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려 드디어 그 중요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눈앞에 보이는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그 선언에 열거한 모든 것들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정책 및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난한 과정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정책과 제도에 대한 의지는 결국 각국의 정부로부터 나온다. 그럼 우리 정부는 어떨까? 우리 정부는 ‘기권’했다. 과거 역사의 어느 시점에서 우리는 ‘기권은 반대보다 나쁘다’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그렇다. 어쩌면 정권 유지를 위해 퍼뜨렸던 그 말이 지금 이 시점에 딱 들어맞는 말이 아닌가 싶다. ‘기권’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무관심의 또 다른 표현이 아닌가라는 생각 때문이다. 지금 정부가 농업·농촌·농민문제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정말 그렇다.

지구 반대편에서 농민권리선언이 채택되고 몇 시간 지나지 않은, 우리나라 시간으로 2018년 12월 18일, 우리 정부의 2019년도 농식품부 대통령 업무보고가 있었다. 놀랍게도 이날 대통령은 ‘농촌경제 근간인 쌀값이 상당히 회복해서 농가 소득증대에 도움’이 됐다고 이야기했다. 바로 며칠 전 밥쌀 3만7,000톤을 수입하기로 결정한 사실을 까마득히 잊었는지, 바로 지난 달에 쌀 목표가격을 19만6,000원으로 하겠다고 했던 사실을 까마득히 잊었는지. 자신이 2017년 대통령 선거 전에만 해도 ‘농민의 삶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밥쌀수입은 금지돼야 한다’고 말하고 ‘적어도 쌀값은 21만원은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던 사실을 까마득히 잊었는지.

어디 중앙정부뿐이랴.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유행처럼 공약했던 농민수당은 또 어떤가. 전국 수십 개의 지방정부에서 무슨 경쟁이라도 하듯이 농민수당을 도입하겠다고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그러나 그 농민수당 내용을 들여다보면 한숨만 나온다. 마치 ‘농민’들에게 줄 것처럼 떠들어댔던 그 수당은 한 집에 농사를 짓는 사람이 몇 명이건 간에 상관없이 한 사람 몫만 준다는 게 지금까지 나온 모든 농민수당의 흐름이다. 즉, 농민이 아니라 농가에게 준다는 말이다. 이게 무슨 ‘농민수당’이냐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별 소용이 없다. 그럼 그 수당이라는 걸 얼마나 준다는 걸까? 여기저기서 60만원이라고 하니 한 달에 60만원인 줄 아는 사람들도 많다. 천만의 말씀. 1년에 60만원, 그러니까 한 달에 5만원 꼴이다. 심지어 그것도 60만원 이내에서 결정하겠다고 말하는 지방정부도 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권리’란 ‘어떤 일을 행하거나 타인에 대하여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힘이나 자격’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농사를 짓는 사람이 농사를 짓는 것도 권리이고 그에 대하여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요구할 수 있는 자격도 권리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리고 바로 지금도 농민들은 내년에 과연 농사를 지을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하고, 또 제대로 값을 받으려면 도대체 무엇을 심어야 하는지를 고민한다. 여기 어디에 농민의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는가? 뭐가 농민의 권리란 말인가? 그저 돈 몇 푼 쥐어주면서 생색내는 정부만 있을 뿐이다.

농민의 권리는 기권하면서 북한인권 결의안에는 공동제안국으로 이름 올리는 이 정부, 정말 어디까지 가려는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