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24시간 중 ‘그녀의 시간’은 없었다
하루 24시간 중 ‘그녀의 시간’은 없었다
  • 배정은 기자
  • 승인 2018.12.17 08: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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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것, 너무 어렵죠” … 경남 진주 여성농민이 들려주는 여성농민 이야기

[한국농정신문 배정은 기자]

모든 워킹맘이 그렇겠지만 농민인 워킹맘들은 24시간이 특히나 더 모자라다. 오전 5시에 일어나 가족들 아침식사를 챙겨주고 오전 일을 하다보면 또 가족들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 점심식사를 준비해야 한다. 오후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면 다시 저녁식사를 준비해야 하고 빨래에 청소까지 집안일을 마치면 새벽 1시에야 겨우 잠자리에 들 수 있다.

조금 쉴 틈이 생겼나 싶으면 마을회관에 가서 동네 어르신들을 챙겨야 하고 때때로 마을이 함께 먹을 식사도 준비해야 한다. 또 겨울이라서 요즘은 김장까지 하느라 정말로 눈코 뜰 새가 없다. 여성농민을 위한 바우처 제도가 있지만 매년 때맞춰 신청하는 것도 벅찰뿐더러 얼마 되지도 않는 돈인데 스스로를 위해 쓸 시간을 내기도 버겁다.

지난 11일 높이 솟은 아파트단지를 맞은편에 두고 하우스가 줄이어 서있는 경남 금산면 장사리에서 여성농민 이연록(53)씨와 조정화(49)씨를 만났다. 남편과 함께 하우스에서 고추 농사를 짓고 있는 이씨와 조씨는 올해 바우처카드를 마트에서 썼다. 진주시 브라보 바우처는 10만원짜리, 자부담 2만원을 제외하면 8만원 남짓한 돈을 지원하지만 그마저도 쓸 겨를 없이 한 해를 다 보냈다. 쓰지 못한 돈은 내년으로 이월도 되지 않으니 부랴부랴 장 보는 데 쓴 것이다.

지난 11일 경남 진주시 금산면 장사리에 위치한 이연록씨의 하우스에서 조정화씨(왼쪽)와 이씨가 함께 웃고 있다.
지난 11일 경남 진주시 금산면 장사리에 위치한 이연록씨의 하우스에서 조정화씨(왼쪽)와 이씨가 함께 웃고 있다.

“바우처 제도가 시행된 첫 해에는 카드를 받고 언니, 동생들이랑 다 같이 다짐했었죠. 이 돈, 꼭 우리를 위해서만 쓰자고. 그리고 미용실에 가서 머리 한 번 하고나니 없어져버렸지만 올해는 그 미용실도 못 갔네요, 너무 바빠서.” 이씨가 말하자 이야기를 듣고 있던 조씨도 “올해 바우처 카드를 신청하러 갔더니 제가 경영주 등록이 안 돼 있다고 하더라고요. 매년 갱신해야 된다는 걸 그제야 알았어요. 할 일도 태산인데 매년 때맞춰 갱신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라며 말을 보탰다.

여성농업인 바우처는 현재 여성농민을 위해 시행되고 있는 유일한 제도였다. 여기에 하나 더, 올해 2월부터 여성농민들은 남편의 동의 없이도 공동경영주로 이름을 올릴 수 있게 됐다. 2016년 공동경영주 등록이 가능해진 이후 겨우 간소화 된 것. 하지만 매년 등록을 새로 해야 하는 불편과 본인 소유의 경작지가 없으면 등록이 불가능한 점(결국은 남편의 동의가 필요한 일), 등록을 하더라도 등록을 하지 않는 것과 차이가 없는 점 등 여전히 불편을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최근 이슈인 농민수당 이야기를 꺼내자 한숨이 터져 나왔다. 농민수당 도입에 대한 여성농민들의 생각은 ‘도입할 때 제대로 도입하자’는 것. 일단 도입부터 하고 봤다가 또 다시 여성농민이 농민수당 지급 대상으로 인정받기까지 몇 년이 걸릴지 모른다는 우려에서다.

“공동경영주로 등록을 하면 뭐 하냐, 결국엔 농민수당도 받을 수 없는데.”, “남성, 여성 가리지 않고 농민마다 수당을 지급하면 결국엔 농가에 더 큰 도움이 되는 것 아니냐”하는 주장이 전국적으로 쏟아지고 있음에도 결국 늘 그랬듯이 농촌에서, 정책에서 여성인 농민의 목소리는 묵살당하고 있다.

얼마 전 남편이 크게 다쳐 혼자서 농사일을 도맡아야 했던 이씨는 우리나라에서 여성농민으로 사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농협이 위한다는 그 농민도 결국엔 남성농민을 말하는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했다.

모든 정책과 기술의 발전이 남성농민을 중심으로 해 남편 없이 혼자 농사를 지으려니 농기계를 다루는 것도 쉽지 않은데 인력을 지원받을 길도 없고 여성을 위한 농기계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고.

말하자면 끝이 없는 여성농민의 이야기는 내년에도 계속될 것이다. 진주시 여성농민회는 내년부터 농민수당에 대한 시 차원의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고 여성농민도 수당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다짐으로 2018년을 마무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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