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
아버지는 본인이 직접 겪어온 이 시대의 적폐농정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쌀 목표가격 24만원 보장하라!’ 아버지 세대에서 진즉 해결됐어야 할 이 절절하고 당연한 구호를 아들과 함께 외치는 현실은 결코 달갑지 않았다.
힘겹고 고된 농민의 삶 속에서도 농민운동을 놓지 않고 끈질기게 해온 이유가 어쩌면 이 젊은 아들에게 있음을 아버지는 손팻말을 들고 스스로 곱씹을 뿐이었다.
자신보다 더 나은 농업 기반, 지금보다 더 나은 농업 정책을 마련해 후계농인 아들이 더 나은 농업 환경에서 살아남기를 바라는 건 부모로서, 농사 선배로서 당연하다 싶었다.
농민으로서의 삶을 택한 아들의 결정이 참 대견하면서도 못내 안타까웠을 아버지였을 테니. 그 자신이 5년 전 국회 앞에서 목청껏 외쳤던 ‘쌀값은 농민값’이란 구호는 세월이 흘러 ‘밥 한 공기 300원’이란 구호로 변주됐을 뿐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한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죽고 결국 정권 교체를 이뤄 냈음에도 농민의 삶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새 정부에 걸었던 기대가 박탈감으로, 박탈감이 분노로 탈바꿈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들은 말 그대로 초보농사꾼이었다. 올해 처음으로 자신이 임대한 논에 옥수수를 심었다. 정부의 쌀 생산조정제(논 타작물 재배) 참여가 임대 조건이었다. 간척지 논에 옥수수를 심을 때부터 농사 실패는 예견된 것이었을까.
아들은 첫 농사부터 쓴맛을 제대로 봤다. 갖은 노력을 했건만 수확할만한 옥수수가 없었다. 결국 지난 9월, 아들은 트랙터로 논을 갈아엎었다. 이 나라에서 농사짓는다는 게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20대 초반에 몸소 겪었다.
초보농사꾼으로 겪은 첫 인생(?)의 쓴맛이 그를 국회 앞으로 이끌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아버지 옆에서 ‘밥 한 공기 300원 보장’을 외치며 팔뚝질을 한다는 게 익숙해질 리가 없었다.
농사경력 20년, 30년이 넘는 농사꾼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발언한다는 게 절대 쉬울 리 없었다. 다만, 그 오랜 세월 ‘쌀값은 농민값’이라 늘 강조해온 아버지의 삶을, 아스팔트 농사에도 전력을 다해 온 선배 농민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는 계기가 되진 않았을까.
농민들과 함께 힘줘 외친 ‘밥 한 공기 300원 보장’은 결국, 아들이 자신의 시대를 농민답게 살아내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므로!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밥 한 공기 300원 보장, 쌀 목표가격 24만원 쟁취 농민농성장’을 꾸리고 전국의 농민들이 릴레이농성을 이어간 지 4주째에 접어들고 있다.
허나, 관련 예산을 논의해야 할 국회는 공전에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한겨울 아스팔트에 친 천막에서 한뎃잠을 청하고 매일 아침 국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농민들의 고충을 정치권은 조금도 헤아리지 않고 있다.
거리에서 잠을 청하며 밤새 칼칼해진 목을 뜨거운 봉지커피로 달래고 1박2일 농성의 고단함을 인근 건물 화장실에서 씻겨 내는 농민들의 절박함을 정치권은 애써 외면하고 있다.
문재인정부의 농정이 박근혜정부의 적폐농정과 무엇이 다르냐고 묻는 농민들이 늘어나는 이유다. 2주 가량 국회 앞 농민농성장으로 출근하다시피 하며 여러 농민들을 만났고 이들의 삶의 이야기를 안주로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그중 기억에 남은, 한 마디를 지면에 남긴다. 다소 과격(?)하더라도 여의도를 제 집 드나들 듯 다녀간 농민들의 마음과 기자의 마음이 별반 다르지 않을 테니.
“호박잎에 똥 싸먹을 놈들, 와서 얘기 듣는 놈 하나 없어. 총선 때 다 갈아엎어야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