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한라산 테우리④ 말 테우리의 봄날은 바빴다!

  • 입력 2018.12.16 19:53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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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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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봄, 한라산 테우리가 말 수십 마리를 이끌고 들로 내려왔다. 오늘 작업을 하기로 약정된 보리밭 어귀에서, 먼저 간 선배 테우리의 영령을 위무하는 제사를 지내고 나서, 물경 백여 마리에 이르는 말들을 널찍한 보리밭으로 몰아넣는다. 그렇다면 테우리는 그 많은 말들을 어떻게 통솔해서 밭 볼리기를 했을까?

“테우리는 선도를 사고(서고) 그 주름에 사람들이 몰(말)을 딴 데로 못 가게 에워싸서 테우리 있신(있는) 데로만 몰아주면 테우리가 자동차 운전하듯이 욜로 가고 절로 가고 돌아오고…”

송종오 할아버지의 얘기에 따르면, 말들을 밭으로 몰아넣은 다음, 테우리가 맨 앞에 서서 무리를 이끌고서 이 쪽 밭머리에서 저 쪽 밭머리로 갔다 왔다를 반복하는데, 조수에 해당하는 예닐곱 명의 거추꾼들이 무리의 측면과 후방에서, 테우리가 이끄는 대로 말떼를 몰고 따라가는 방식이다

농부가 쟁기질을 할 때 “이랴, 자랴!” 따위의 소리로 소를 모는 것과 마찬가지로, 테우리가 말을 몰 때에도 그 비슷하다. 왕년의 테우리였던 송종오 할아버지에게 그 소리를 내보라 부탁했더니 그가 벌떡 일어서더니 말을 모는 시늉까지 해가며 흉내를 낸다.

“이러, 이러, 이러!…하고 몰을 몰고, 후어어어…월월월!…그러면 말이 고개를 숙영(숙이고) 싹 돌아와요.”

아마도 앞부분의 ‘이러이러’는 쟁기질을 할 때와 견주면 ‘이랴이랴’일 것이고, 뒷 대목의 ‘후어어’는 멈추라는 의미의 ‘워어~’에 해당할 터이다. 끝의 ‘월월월’은 쟁기 돌림을 할 때 내는 것과 같은, 방향을 바꾸라는 신호일 것이고… 내 맘대로 해석하자면 그렇다.

뿐만 아니라 테우리는 밭 볼리기를 하면서 타령을 곁들이기도 하는데 “이 밭을 다 볼리고 / 딴 데로 가야 / 우럭대가리에 곤밥 반지기라도 얻어먹지 / 요놈의 말들아 / 꼬닥꼬닥 워워 / 밭볼리야 월월!”, 이런 내용의 타령이다. 보리밭 밟는 작업 어서 끝내고 다른 밭으로 가야 우럭 반찬에 쌀과 보리가 반씩 섞인 ‘반지기 밥’이라도 더 얻어먹을 것 아니냐…이런 뜻이다.

어쨌든 테우리가 말무리를 이끌고 보리밭(밀밭)을 고루 왔다갔다 해주어야 단단하게 잘 밟혀서 풍년을 기약할 수가 있었기 때문에, 말을 노련하게 다루는 솜씨가 없는 사람은 엄두를 낼 수가 없는 일이 바로 그 밭 볼리기 작업이었다. 해가 기울어서 밭 볼리기가 끝나면 테우리는 말무리를 다시 산으로 올려 보내고 집으로 돌아간다.

경마장의 경주마에게만 품격이 매겨지는 건 아니다. 한라산 산간 마을 사람들이 키우는 말도 제 가끔의 등급이 있고 그 등급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따로 있었다. 송종오 할아버지는 1등급부터 10등급에 이르는 말들의 호칭을 단숨에 줄줄 꿰었다.

“1가라, 2청춘, 3적다, 4월라, 5루메…이렇게 죽 나가다가 8두메, 9궁산, 10걸 이렇게….”

‘가라’라고 불리는 말이 으뜸이고, ‘청춘’으로 호칭되는 말은 제2등급이다. ‘가라’는 털색이 새까맣고 윤기가 흐르는 말이고, 두 번째로 알아주는 ‘청춘’은 털빛이 새하얀 백마다. 3등급인 ‘적다’는 잘 익은 고추처럼 붉은 색을 띠는 말이고(한자의 赤多에서 따온 것인지의 여부는 나도 잘 모르겠다), 4등급으로 치는 ‘월라’는 희거나 검은 무늬가 조화롭게 잘 어우러진 말이다.

맨 마지막 등급으로 취급되는 ‘걸’은 색깔이 탁하고 생김새도 가장 못난 말이다. 물론 등급에 따라서 거래되는 가격도 크게 차이가 났다는 것이 송종오 할아버지의 증언이다.

그건 그렇고, 산간마을에 사는 말의 주인이, 가령 다섯 마리의 말을 테우리에게 맡겼다고 치자. 그런데 이 집 저 집의 말들을 맡아서 수십 마리씩 한라산으로 몰고 올라간 테우리는, 생김새만 보고도 뉘 집 말인지 척척 구별을 했을까? 그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주인들은 산으로 올려 보내기 전에 자기 말의 엉덩이에 불도장을 찍는다. 그것을 제주 사투리로 ‘내견’이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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