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쌀 농사 이야기

[쌀 르포] 강원 철원

  • 입력 2018.12.16 14:32
  • 수정 2018.12.16 14:36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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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지난 12일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이평리 한 필지에 조성된 빙상장에서 한 농민이 스케이트를 타고 있다. 이곳은 농한기를 맞은 철원농민들이 모여드는 장소들 중 하나다.
지난 12일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이평리 한 필지에 조성된 빙상장에서 한 농민이 스케이트를 타고 있다. 이곳은 농한기를 맞은 철원농민들이 모여드는 장소들 중 하나다.

 

강원도 철원군은 전국에서 가장 빨리 벼를 수확하는 그 특성상 지역 농정의 영향력이 강하다. 각각 1만5,000평, 4만평의 쌀농사를 짓는 두 농민을 통해 올 한 해 느낀 고충을 짧게나마 들여다봤다. 

올해 쌀 수매 너무했다!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이평리엔 제법 근사한 빙상장이 있다. 12월 중순쯤이 되면 물을 채워 둔 빈 논이 꽁꽁 얼면서 훌륭한 거대얼음판이 만들어진다. 지도에서 검색도 안 되는 곳이지만 매년 농민 수십명이 회원으로 등록해 농한기에 잠시나마 여가를 즐긴다. 올해 ‘동송빙상장’은 12월 초부터 한파가 들이닥치며 평년보다 더 빠르게 완성돼, 아직 정식개장도 하지 않았는데 오전부터 농민들이 서넛 모인다.

“올해 풍년작에 쌀값도 좋아져서 많이 나아졌죠. 그 전해까지만 해도 정말 어려웠었는데…. 하지만 올해 오대미가 저기 (충북) 진천 쌀하고 가격이 같았다는 게 말이 됩니까. 몇 만원은 더 나가는 쌀인데. 농협에서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나중에서야 조정하면서 욕을 엄청 먹었죠.”

그 중 한 명인 강모(64)씨가 대표로 기자를 향해 말을 쏟아냈다. 강씨는 군이나 농협에 찍히면 피곤해진다며 한사코 이름과 거주지를 밝히는 것은 거부했다. 이곳에서 만난 농민들은 올해 생산한 쌀 중 철원에서 팔지 않은 쌀이 꽤 많다고 했다. 농협의 가격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수매량이다. 절반 정도는 정미소 등 민간 RPC로 보내야 하는데, 보통 20%에 이르는 가격이 깎여나간다고 입을 모았다. ‘정미소 갑질’에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농협수매도 공공비축미처럼 등급제를 도입해 잘 지은 사람이 대가를 받게 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강씨는 스스로의 힘으로 한 해 농사를 완성하는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는 농민이다. 유기농 쌀농사를 짓던 강씨는 5년 전쯤 600평 규모의 하우스 고추 농사를 병행했는데 농약을 제외한 모든 비료와 농자재를 자체적으로 만들어 생산비를 줄였다. 자신의 쌀처럼 유기농으로도 할까 했지만 고추는 유기농을 찾는 시장이 없어서 농약은 뿌린다고. 자신의 고추농사는 생산비와 유통비를 전부 합쳐 매출의 30%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쌀농사를 짓다 얻은 빚을 모두 청산했다며 자랑하는 와중에도, 이렇게 돌파구를 찾아야만 하는 농업구조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잊지 않았다. 얘기를 나누던 동송빙상장 인근에도 대형 연동하우스가 서너 채는 보였다.

“나라가 농사꾼에게 이렇게 빚만 지게 만드는 구조는 절대로 잘못됐어. 쌀이 안 되니까 저렇게 하우스를 짓지. 그렇게 많아지다 보면 당연히 가격 떨어지니까 같이 또 다 죽는 거야. 저렇게 좋은 시설 지어놓으니 눈에 안차는 고추 같은 거 하긴 당연히 아깝겠지. 하지만 파프리카도 지어봤자 결국 헐값이고, 빚만 지고 나가는 거야.”

 

임차 경쟁에서 밀려난 토박이

황윤길(66) 철원쌀연구회 회장.
황윤길(66) 철원쌀연구회 회장.

 

작년부터 농지은행을 통한 농지 신규 임차가 어려워진 것도 토박이 농민들에게는 큰 불만사항이다. 어느 정도 쌀농사에 자신이 있다는 철원지역의 농민들이 쌀농법의 선구자를 지향하며 만들었다는 철원쌀연구회의 황윤길(66) 회장은 이미 농지 구하기가 어려운 현실 속에 농지은행의 정책이 변경되며 새로운 농지를 찾기가 더 힘들어졌다고 말한다.

“지난 6월쯤 지방선거가 끝난 뒤 설훈 당시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장이 철원을 방문했었지. 그때 우린 65세가 넘었다는 이유로 농지은행에서 임차를 할 수 없는 현실을 고쳐달라고 말했어. 농사꾼이 정년이 어디 있어. 할 수 있는 데까지 농사짓다가 가는 거지. 근데 알고 보니 이미 만 40세 이상은 아예 농지를 못 빌리도록 돼 있었던 거야. 그나마 빌릴 수 있었던 사람들까지도 아예 못 빌리도록 해놨어.”

황 회장은 40대 이상은 아예 농지은행을 통한 임차가 불가능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정말로 그럴까 싶어 한국농어촌공사 철원지사 농지은행부에 물어보니, 기존 임차농지의 연장계약은 해당이 없지만 신규 임차의 경우엔 조건이 많이 달라졌단다.

예전엔 지주가 임차인을 지정해 계약을 요청할 수 있었는데, 이젠 무조건 신청자들 간 경쟁을 통해 농지를 배분한다는 것. 정부의 청년농 육성 정책의 영향으로 지난 2017년 5월부터 임차 1순위에 20·30세대, 2순위엔 귀농자·전업농·전업농육성대상자·농업법인 등이 지정됐다.

일반농가는 사실상 끝 순위에 있다. 사업부 관계자에 따르면 전체농지의 80% 정도가 재계약이고 나머지가 신규임차인데, 그 중의 절반 이상이 청년농에게 배정됐다. 관계자는 이런 불만이 있다고 전하자 농지 전체로 보면 청년농에게 배정된 비중은 크지 않다면서도, 내년 1~2월 임차시기의 계약 추이를 한번 더 봐야할 것 같다고 답했다.

“농지은행을 통하지 않고서야 지주들이 계약서를 써서 땅을 빌려주는 일이 거의 없다는 거 잘 알고 있잖아. 그렇게 되면 임차농은 당연히 직불금 못 받지, 또 여러 가지 사업 수령에 영향이 있으니 알게 모르게 누적되는 손해들이 매우 커.”

사실 연고가 없는 귀농 청년들은 그나마 농지은행이라도 있어 돌파구를 마련하는 경우도 많아 더 절박한 이들을 배려하는 정책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어렵다. 농사짓는 사람이 농지에 대한 권리를 보장받게 하는, 천지개벽 수준의 농지정리, 농지개혁이 다시금 간절해지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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