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경력 산란계농가의 절규 “살 길을 알려달라”

AI·살충제 파동·공급과잉·후장기·선별포장업 … 끝없는 악재
장밋빛 희망은 오간데 없어 “내일 없는 농장도 생산 계속돼”

  • 입력 2018.12.16 18:00
  • 기자명 홍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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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홍기원 기자]

취재 내내 홍명의(71)씨의 전화기는 계속 울렸다. 농장에 중간상인의 차가 와서 달걀을 싣고 있다고 한다. 그는 곧 농장에 가서 거래명세서를 끊어줘야 한다면서도 자리를 좀체 뜨지 못했다. “희망이 안 보인다. 내일을 바라볼 수가 없다”며 국회의원에게 전하지 못한 호소문을 신신당부 하고서야 걸음을 옮겼다. 그의 희망은 무엇이었고 어떻게 부서졌던 걸까.

홍씨는 30여년 전 닭 1,500수로 산란계 사육을 시작했다. 현재는 경기도 양주시 남면에 성계 4만3,000여수(병아리 포함하면 10만수) 규모의 산란계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적잖은 산란계농가들이 최근 몇 년새 축사시설현대화사업을 통해 계사를 신축 및 개보수하며 사육규모를 늘린 상황이다.

홍씨는 지난 2016년 현대화사업을 받아 계사 2동을 새로 지었다. 그러면서 8억원 상당의 빚이 새로 생겼다. 그는 “7단·8단 케이지를 들이는데 10억원이 넘게 들었다”면서 “교육을 나가서 들어보니 현대화를 하면 안정적으로 갈 수 있다 싶었다. 또, 가업으로 물려줄 생각이 있어 투자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부딪힌 현실은 교육에서 제시한 장밋빛 전망과는 너무 달랐다.

경기도 양주시 산란계농가인 홍명의씨가 중간유통상인에게 보낼 물량을 맞춰보고 있다. 메모지 옆에 특란기준 1개당 106원이란 기준가가 적혀있지만 이달말 할인이 얼마나 될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10월달 할인은 30원, 지난달 할인은 37원이었다.
경기도 양주시 산란계농가인 홍명의씨가 중간유통상인에게 보낼 물량을 맞춰보고 있다. 메모지 옆에 특란기준 1개당 106원이란 기준가가 적혀있지만 이달말 할인이 얼마나 될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10월달 할인은 30원, 지난달 할인은 37원이었다.

그해 겨울,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가금농가를 강타했다. 약 3,000만수의 가금류를 살처분했던 그 AI가 인근 농장에서 발생했고 예방적살처분으로 닭을 묻어야 했다. 지난해 봄, 달걀공급이 부족해지며 가격이 덩달아 껑충 뛰었지만 그는 6월에야 닭을 입식할 수 있었다.

달걀가격의 고공행진은 오래가지 않았다. 여름이 채 가기 전인 8월, 살충제 문제가 불거졌다. 그의 농장에도 수많은 검사가 진행됐다. 다행히 살충제 성분은 검출되지 않았지만 진드기와의 전쟁은 현재진행형이다.

달걀가격은 언제 올랐냐는 듯 추락하기 시작했다. 올해 들어선 공급과잉이 겹치며 침체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여기에 오랜 관행으로 굳어진 후장기 정산의 폐단이 가격폭락을 더욱 부채질하기 시작했다.

대한양계협회에 따르면 지난 12일 기준가는 특란 1개당 106원이다. 이 가격대로면 생산비에 간당간당한 수준이다. 그러나 실거래가는 중간상인들이 임의로 정한 할인(시장에선 DC로 불린다)에 의해 형성된다. 이 지역은 10월엔 30원 할인이 붙었고 지난달엔 7원이 더 얹어졌다. 홍씨가 곧 농장에 가서 작성할 거래명세표엔 106원 기준가에서 전달 할인 37원을 뺀 69원을 적어 보내게 된다.

이게 끝이 아니다. 이번달 할인은 월말에 중간상인이 결정해 지역에 통보한다. 그는 “월말에 인근 농장주들에게 물어서 할인이 얼마가 됐는지 알아보고 그대로 받는다. 개별적으로 상인과 연락해서 할인율을 낮춰달라 부탁할 엄두를 내기 어려운 구조다”라고 전했다. 지역별로 일률적으로 결정된 할인에 거리가 상대적으로 더 멀다는 이유로 추가할인을 당해야 하는 농장도 있다고 한다.

농장만 그럴듯하게 현대화됐을 뿐, 전근대적인 가격결정구조는 그대로 남아 산란계농가의 속은 곪아갔던 것이다. 게다가 생산비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사료값마저 최근 인상됐다. 직원 인건비도 부담이다.

내년 4월 25일부터 시행될 식용란선별포장업은 홍씨의 마지막 희망도 위태롭게 하고 있다. 양주지역엔 선별포장업을 할만한 유통센터가 없다. 선별포장업 허가를 받으려면 수억원대의 시설투자가 필수다. 중간상인은 자신들은 할 형편이 안된다면서 홍씨에게 선별포장업 허가를 받으라고 독촉한다.

10만수 이하의 농장에게 선별포장업은 무리한 투자다. 이대로 제도가 시행되면 홍씨가 인근 지역농협 하나로마트에 달걀을 공급하던 판로 역시 사라질 판이다. 앞으로는 선별포장업장을 거치지 않으면 달걀을 마트로 보낼 수 없다. 지역농협 하나로마트는 1일 300판 물량을 생산비 이상 건질 수 있는 유일한 판로다.

홍씨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차에 국회에서 관련한 토론회가 열린다해서 만사를 제치고 11일 토론회를 찾았다고 한다. 그러나 정부관계자들이 “검토하겠다”는 답변만 반복하면서 답답함만 더 쌓인 듯했다. 홍씨는 기준가가 적힌 자료, 그리고 자리에서 갈겨쓴 메모를 번갈아 바라보다 계속되는 전화에 쫓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울뿐인 거래명세표지만 작성해야 한다. 빈 자리엔 그가 토론회에 참석한 국회의원에게 전하려 준비했던 호소문만 남았다.

“… 능력이 안 되어 선별포장업 허가를 받지 못한 농가에서도 생산은 계속됩니다. 그 농가들도 함께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시길 간곡히 거듭 부탁드립니다. 우리 양계농가는 현재 절망입니다. 희망과 내일을 바라볼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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