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농민수당을 농민수당답게!

  • 입력 2018.12.16 18:00
  • 기자명 강정남(전남 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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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남(전남 나주)
강정남(전남 나주)

어려서부터 유독 간섭을 병적으로 싫어한 나는 관찰하는 것을 좋아한다. 물끄러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노을 속에 빠진다던가, 캄캄해질 때까지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한다던가 하는 사소한 관찰을 좋아한다. 지나간 사람들은 지나간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 것이며, 그 이야기는 알지 못해도 표정과 몸에서 풍기는 느낌으로 어렴풋이 이야기를 지어내곤 했다. 그리고 농촌으로 시집와서는 드디어 도를 닦았나, 흙하고도 말을 하고 배하고도 말을 하고 고추, 나락, 콩, 깨…하고도 말을 한다. ㅎㅎ 남들도 그러하리라. 농촌에서 농사짓는 대개의 사람이 그러하리라 생각된다. 어찌 생명을 키우면서, 매일 매일 보면서 하나, 하나 대화를 안 할 수 없지 않는가!

하나하나는 매우 다양하고 특색 있고 재미있다. 그리고 다~ 다르다. 우리의 존재도 그렇다! 여성농민인 우리는 더욱더 그렇다. 한 달 전 지역에서 여성농민 생애 구술사를 해봤다. 물론 작가분이 인터뷰하고 전체 편집은 했지만 녹취록을 듣고 있노라면 가슴이 메어졌다 풀어졌다 울다가 웃다가 정신이 없다. 이렇게 아까운 사람을… 이렇게 아까운 여자를… 흘러간 세월은 안타까울 뿐이고 다가올 세월은 당당할 뿐일 이 여성농민들이 가슴 벅차게 자랑스러울 뿐이다. 모진 역경 속에서 인내한 세월만큼 심장이 더 부드러워졌고 더 넓어진 여성농민들이었다.

이런 여성농민들이 화가 났다. 농민수당이라고 해서,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인정하는 농민수당이라고 해서, 금액이 문제가 아니라 드디어 우리도 농민의 가치를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농민수당을 도입한다고 해서 좋아했더니만 그것이 아니었다. 대부분 도입하겠다는 지방자치단체장은 예산의 문제를 들면서 여성농민을 농민에서 먼저 배제시켜 버렸다.

농가 단위로 지급되는 건 시대에 뒤쳐져 있지만 여전히 유지되는 가부장제도 하에서는 가장이라고 하는 남편에게 지급되는 것이지 여성농민에게 지급되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여성농민은 남자들과 똑같이 농사지으면서 농사에 대한 공익적 가치가 없는 농사만 짓고 있는 것인가! 여성농민이 농사지으면 환경을 파괴하는가! 왜 여성농민에게도 똑같이 농민수당을 지급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가! 아니, 말만 하는가? 모든 농민에게 똑같이 개별 지급돼야 한다. 더구나 농업에 대한 공익적 가치라고 한다면 더욱더 그렇다.

‘집단’, ‘조직’, ‘전체’란 단어는 매우 심플해 보이지만 개인의 가치를 거세하는 함정이 숨어있다. 산이 언제부터 산이었을까. 나무 하나하나가 무리를 지어 결국 산이 되지 않았겠나. 나무 하나하나를 보면 굽은 나무, 가는 나무, 그늘진 나무, 병든 나무… 참 많다. 그렇다고 해서 그 나무들이 산을 이루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가!

우리가 ‘같이’, ‘함께’라는 단어를 많이 쓰는 건 그것이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가치가 있다면 기꺼이 가치 있는 일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얍삽하게 굴지 말자! 제발! 여성농민의 가치를 무시해서 얻는 건 결국 가정에서부터 국가 단위까지 손해 밖에 없을 뿐이다! 눈앞에 당장 먹잇감이 있다고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면 두 눈이 있다 해도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밥 한 공기 쌀값 300원도 안 되는 세상에서 무엇이 아깝고 무엇이 두려울 쏘냐! 농민의 가치는 이미 떨어질 대로 떨어져 버렸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여성농민은 오늘도 꿋꿋이 농사를 지을 뿐이다. 그것이 우리 이름이다. 여성농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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