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 특집Ⅰ - 제주물류] ‘육지의 두 배’ 제주 물류비, 정부는 손을 놨다

우리나라 겨울철 식량공급
개별농민들 손에만 맡겨져
제주 농가경제 날로 악화

  • 입력 2018.12.16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제주 물류비 문제는 국민 먹거리 공급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에도 정책적으로 방치돼 있다.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의 한 무밭에서 월동무 수확이 한창이다.
제주 물류비 문제는 국민 먹거리 공급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에도 정책적으로 방치돼 있다.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의 한 무밭에서 월동무 수확이 한창이다.

김승삼(49)씨는 제주 구좌읍에서 무·당근 농사를 짓고 있다. 지난 겨울 심었던 무 8,000평이 냉해를 입어 지원 한 푼 없이 산지폐기를 했고, 그나마 1만4,000평 당근은 본전치기를 했다. 올 겨울엔 무 3만평을 심었는데 월동무 재배 증가로 가격이 속절없이 주저앉아 있다. 당장은 괜찮아 보이는 당근도 육지부터 물량이 밀린 탓에 내년 3월 이전에 폭락이 우려되고 있다.

제주 농업은 육지보다 훨씬 불리한 조건을 안고 있다. 기후변화를 민감하게 받는 환경인데다 심을 수 있는 작목 자체가 한정된 탓에 누구나 김씨처럼 재해와 생산과잉의 굴레 속에 처해 있다.

하지만 제주 농민들이 꼽는 최대 난제는 기후도, 작목도 아니다. 육지 농민들로선 생각해본 적도 없을 ‘해상물류비’다. 김씨는 “출하해서 낙찰받는 금액의 30%는 물류비로 나간다. 최근 8,000원(20kg)도 안되는 무 가격으론 작업비도 안 남는다”고 했다.

5톤 트럭 한 대로 환산했을 때 제주 농민들이 부담하는 운임은 120만~130만원이다. 육지의 운임이 60만~80만원 수준임을 감안하면 많게는 두 배까지 차이가 나는 셈이다. 시세가 낮으면 운임을 메우기 위해 도리어 도매시장에 돈을 송금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운임은 해마다 오른다. 선박을 가진 제주의 운수업체가 육지의 화물연대와 계약을 맺은 뒤 농민들과 일괄협상하는데 운수업체와 화물연대 어느 쪽에서 인상요인이 발생하는지 농민들은 알 길이 없다. 단지 올해도 3% 인상이 결정됐을 뿐이다.

고권섭 전국농민회총연맹 제주도연맹 부의장은 “내가 처음 무 출하사업을 시작한 6년 전에 비해 지금 컨테이너 운임이 두 배 가까이 뛰었다. 안전의식이 강화되면서 과적을 안하는 부분도 있어 실질적으로 농가 부담은 두 배를 넘는다”고 말했다.

제주시 구좌읍 소재 무밭. 밭담 틈새 사이로 약을 치는 농민들의 모습이 보인다.
제주시 구좌읍 소재 무밭. 밭담 틈새 사이로 약을 치는 농민들의 모습이 보인다.

겨울철은 육지의 생산량이 급감하는 시기다. 무와 당근, 양배추·감귤 등 온난한 제주에서 나는 양질의 농산물이 전국의 밥상을 책임진다. 제주 물류 문제는 제주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나라 겨울철 식량 공급의 문제다. 그러나 정부의 방치 속에 이 막중한 역할은 제주의 개별 농가에게 내맡겨졌고, 이는 제주 농가경제를 피폐하게 만드는 근본 원인이 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를 인지하고 후보 시절 ‘제주 해상물류비 지원’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농식품부와 제주도의 적극적인 추진에도 불구하고 2년째 기재부의 ‘형평성 논리’에 가로막혀 있다.

지난 8일 제주 해상물류비 예산편성 무산 소식에 제주 농민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김승삼씨는 “짝당 1,000원만이라도 물류비 지원을 해준다면 농민들은 엎드려서 절을 할 거다. 대통령 공약이라 기대를 많이 했는데 실망이 크다. 내년·내후년이라고 다를 것 같진 않다”며 고개를 저었다.

기후 피해 문제와 작목 제한 문제로 육지보다 소득이 안정되지 못한 가운데 농민들이 감당해야 할 물류비만은 꾸준히 오르고 있다. 이는 제주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이며 우리나라 농산물 유통이 갖고 있는 심각한 맹점이다.

김씨는 “기후와 작목은 어찌보면 불가피한 문제로 볼 수도 있지만 물류비는 의지만 있다면 가장 해결하기 쉬운 문제다. 정부가 충분히 컨트롤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주지 않으니 답답할 뿐”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