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중앙회, 농민 등지고 ‘농가소득 5천만원’ 축배

참담한 농업현실 외면하고
계산기로 두드린 농업소득
농민단체 “농민 우롱 말라”

  • 입력 2018.12.16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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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농협중앙회가 제주 농가소득 5,000만원 최초 달성 기념행사를 개최한 당일 제주농민들이 행사장 앞에서 비를 맞으며 이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농협중앙회가 제주 농가소득 5,000만원 최초 달성 기념행사를 개최한 당일 제주농민들이 행사장 앞에서 비를 맞으며 이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농협중앙회(회장 김병원)가 제주 농가소득 5,000만원 달성을 맞아 거창한 기념행사를 열었다. 그러나 정작 5,000만원 소득의 당사자여야 할 제주농민들은 이를 두고 “얼토당토 않은 짓”이라며 단단히 화가 났다. 농민들이 주인공이 돼야 할 행사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의제기를 하러 온 농민들은 행사장에 한 발짝도 들여놓지 못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평균 농가소득은 3,824만원이며 광역지자체 중 제주가 유일하게 5,292만원으로 5,000만원을 넘어섰다. 농협중앙회는 지난 11일 제주 메종글래드호텔에서 이를 기념한 ‘농가소득 5,000만원을 넘어 지속가능 제주농업 다짐대회’를 열었다. 태풍 등의 악재로 인해 두 차례 연기됐던 행사지만, 농민들이 여의도에서 치열하게 투쟁 중인 최근의 상황은 연기 사유가 되지 못했다.

시기를 떠나 행사의 의미 자체도 농민들의 공감을 얻기 힘들다. 평균 농가소득이 5,292만원이라지만 이 중 농업소득은 1,330만원에 불과한데다 제주의 평균 농가부채는 전국 최고인 6,523만원이다. 적어도 농협이 자랑삼을 만한 상황으론 볼 수 없다.

애당초 5,292만원이라는 통계수치 또한 농민들이 겪는 현실과는 괴리가 크다. 행사장을 찾은 한 농민은 “소득 5,000만원이 되려면 농민들이 한 해에 1억2,000만원을 벌어야 한다. 어떻게 해서 그런 계산이 나오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의아해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농민들이 농협중앙회장 및 농협중앙회 제주지역본부장에게 기자회견문을 전달하기 위해 행사장으로 이동하던 중 호텔 복도에서 농협 관계자들로부터 철수 요청을 받고 있다.
기자회견을 마친 농민들이 농협중앙회장 및 농협중앙회 제주지역본부장에게 기자회견문을 전달하기 위해 행사장으로 이동하던 중 호텔 복도에서 농협 관계자들로부터 철수 요청을 받고 있다.

이날 농민들이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자 한 호텔 정문에선 농협 측이 느닷없는 조합장 공명선거 캠페인을 진행했다. 행사를 앞두고 농민단체에 반발 움직임이 보이자 ‘알박기’ 집회신고를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지역사회에 팽배하다.

농민들은 이에 호텔 앞마당에서 기자회견을 강행했다. 전농 제주도연맹과 전여농 제주도연합, 한농연 제주도연합회 등 농민단체를 주축으로 7개 시민단체가 광범위하게 참여했다. 송인섭 전농 제주도연맹 의장은 “제주도의 농가부채가 1위인데다 지금 월동채소 가격이 밑바닥에 붙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하 행사를 하고 있다. 당장 철회하고 농협 본연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꾸짖었다.

농협 측의 제지에 발끈한 농민들이 “우리는 농민이 아니냐”고 소리높여 항의하고 있다. 약 10분간 대치하던 농민들은 농협중앙회 제주지역본부장과의 면담 약속을 받고 철수했다.
농협 측의 제지에 발끈한 농민들이 “우리는 농민이 아니냐”고 소리높여 항의하고 있다. 약 10분간 대치하던 농민들은 농협중앙회 제주지역본부장과의 면담 약속을 받고 철수했다.

농민들은 대표급 책임자에게 기자회견문을 전달하기 위해 행사장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호텔 복도를 막아선 농협 측은 원만한 행사 진행을 위해 철수해줄 것을 요청했고, 농민들은 추후 농협중앙회 제주지역본부장과의 면담을 약속받은 뒤 철수했다.

농민들이 물러난 행사장엔 김병원 농협중앙회장과 원희룡 제주도지사, 오영훈 국회의원 등 주요 인사들이 도착했다. 김병원 회장은 “취임하면서 농가소득 5,000만원을 들고 나왔을 때 모두가 의심하고 부담스러워했지만 나는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과학적·체계적으로 접근했다. 농산물 가격을 올릴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찾았다”며 감격에 젖었다.

농협중앙회와 제주도는 이날 행사 말미에 도내 농가에 농기계를 지원하기 위한 농기계 플랫폼 업무협약을 맺었다. 4년간 농기계 보급에 총액 200억원을 투자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농민들을 등지고 개최한 자화자찬식 행사에 농협을 바라보는 농민들의 시선은 오히려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다.
 

농민들이 물러간 뒤 행사장엔 김병원 농협중앙회장, 원희룡 제주도지사 등 내빈들이 도착해 축하행사를 진행했다. 김병원 회장은 “오늘 감개가 무량하다”며 제주 농가소득 5,000만원 달성의 의미를 높게 평가했다.
농민들이 물러간 뒤 행사장엔 김병원 농협중앙회장, 원희룡 제주도지사 등 내빈들이 도착해 축하행사를 진행했다. 김병원 회장은 “오늘 감개가 무량하다”며 제주 농가소득 5,000만원 달성의 의미를 높게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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