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 특집Ⅰ]홀대받은 농정, 외면당한 농민들

  • 입력 2018.12.16 20:00
  • 수정 2018.12.17 09:29
  • 기자명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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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밥 한 공기 300원 보장하라’는 농민들의 외침을 듣고도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국회 방호원들에게 둘러싸여 의원실을 빠져나갔다. 지난 12일 농민들의 항의방문 자리에서였다. 사진은 휴대폰으로 촬영한 동영상을 갈무리한 것이다. 박경철 기자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밥 한 공기 300원 보장하라’는 농민들의 외침을 듣고도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국회 방호원들에게 둘러싸여 의원실을 빠져나갔다. 지난 12일 농민들의 항의방문 자리에서였다. 사진은 휴대폰으로 촬영한 동영상을 갈무리한 것이다. 박경철 기자

[한국농정신문 원재정 기자]

“농업을 직접 챙기겠다”던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맡은 지 햇수로 2년이 됐다. 희망고문이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농정의 형식과 내용 어느 것 하나 달라지지 않았다. 표지만 떼면 박근혜농정인지 문재인농정인지 구분조차 어렵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꼭 5년 전 이맘 때, 농민들은 쌀 목표가격 재설정을 앞두고 국회에 상주했다. 지역구 의원실을 방문해 정부가 법대로 ‘4,000원’ 올린 새 목표가격을 성토했다. 17만83원이던 쌀 목표가격이 5년만에 새로고침 된 결과가 17만4,083원이라니, 이를 흔쾌히 받아들일 농민은 없었다.

그동안 오른 임차료에 비료·약제비만 따져 봐도 기막힌 일이다. 농사 한 번 지어보고 월급을 쌀값으로 계산해 보라는 고성은 그래서 나왔다.

다시 5년 뒤 2018년 12월. 농민들은 또다시 국회 앞에 농성장을 꾸리고 풍찬노숙 중이다. 이번엔 법대로 ‘192원’ 인상이라는 수치를 들고 나왔다.

정부는 법 개정이 안 돼 어쩔 수 없다며 ‘192원’ 오른 새 목표가격 ‘18만8,192원’을 내밀었고 농민들은 갈무리하던 농삿일도 뒤로한 채 상경했다. 20여일 째 농성 중인 농민들은 쌀 목표가격과 직불제 개편안이 동시에 정치적으로 타협될 긴박한 국회 상황에 여당 당대표 의원실을 찾았다.

여당 대표는 농민들의 면담 요청을 벽 하나 사이에 두고 ‘없는 듯’ 외면하다 국회 방호원들의 보호 속에 눈길 한 번 안주고 빠져나갔다. 촛불정부라는 이름표의 빛이 바래는 순간이면서 ‘더불어한국당’이란 절묘한 작명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5년 전과 똑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 다만 시간이 흘러 더 늙은 농민들이 목청을 돋우고 있는 게 그때와 달라진 점이다.

어쩌면 ‘2018년엔 진짜 변하지 않겠냐’는 믿음은 봄부터 싹이 잘려나갔는지도 모르겠다.

지난 2월 경남 진주에서 시설하우스 농민들을 만났을 때, 비싼 기름으로 겨우내 키운 청양고추 값이 폭락해 산지폐기를 하면서 고심 중이었다. 정부는 주산지협의체를 구성하면서 대책을 세우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9월에 청양고추 주산지인 진주의 한 여성농민이 비닐하우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청양고추 값이 연이어 폭락해 힘들어 했다는 주변의 안타까운 말들이 전해졌고, 슬하에 어린 자녀가 셋 있다는 소식에 마음이 더 아렸다.

지난 5월엔 70·80대 고령의 여성농민들이 전남 나주에서 영암으로 밭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차량사고로 사망하는 참사도 벌어졌다.

언론은 할머니들이 ‘용돈벌이’에 나섰다 사고를 당했다고 보도했지만, 농촌에서 노인들의 벌이라곤 새벽밥 먹고 남의 밭일을 돕는 것 외에 마땅히 없다는 것을 농민들은 잘 안다.

시간을 때우는 취미가 아니라 생업이라는 뜻이다. 농촌 노인들의 복지가 제대로 갖춰졌다면 ‘용돈벌이’로 목숨을 맞바꾸는 일은 일찌감치 사라지지 않았을까.

농민들의 지난 1년은 농가소득과 농산물 제값받기라는 핵심 정책이 여전히 표류한 가운데 ‘농사지어 봤자 빚’이라는 푸념을 입에 달게 했다.

정부 출범 2년차에 공익형직불제 개편과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설치 문제가 뒤늦게 수면 위로 떠올랐다. 늦었지만 다행이다.

“늙은 농민은 아스팔트에서, 비정규직 청년노동자는 공장에서 죽어가고 있다”고 적은 충남 홍성 한 농민의 SNS 글귀가 2018년 마지막달의 풍경을 대변하고 있다.

내년에는 희망을 품고 농사짓는 원년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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