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태양광발전소, 마을총회로 결정하다

  • 입력 2018.12.09 18:00
  • 기자명 이영수(경북 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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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수(경북 영천)
이영수(경북 영천)

전국적으로 무분별한 태양광발전소 인허가 문제로 난리다. 이장회의를 가면 태양광발전소 때문에 마을마다 골머리를 앓고 있다.

추석이 지난 무렵 복숭아밭에서 도장지정리를 하고 있는데 동네 형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3반에서 누가 태양광발전소 하려고 주민동의를 받고 있는데 이장이 알고 있는지, 그리고 동의를 해줘야 되는지 묻는 전화였다. 하던 일을 멈추고 3반 반장에게 전화를 하니 금시초문이라고 했다. 그날 오후 3반 주민 몇 분에게 여쭤보니 뭔지는 모르겠는데 한동네 사는 사람이 와서 동의서 좀 해달라고 하는데 내키지는 않았지만 안면 때문에 입장이 곤란해 그냥 해줬다는 것이다.

문득 지난 봄날이 생각났다.

마을숙원사업으로 농로포장을 한창 하고 있는데 동네형님이 사과나무가 다 죽었으니 밭에 빨리 같이 가보자고 재촉했다. 막상 가보니 동해로 죽은 나무들이 제법 있었다. 동해로 나무가 죽어서 태양광을 하던지 해야 되겠다며 넌지시 말을 꺼내기에 “형님 안 그래도 외지 사람이 중골 입구에 태양광한다고 해서 머리 아파 죽겠는데 형님까지 와 이캐 샀능교? 내 처음에 귀농했을 때 형님이 말씀한대로 농사짓는 게 힘들어도 우짜든지 농사지으며 재밌게 삽시다”라고 당부하고는 돌아왔다.

지금과 달리 귀농이라고는 머리 깎고 절에 들어가는 인구보다 적은 시절이라 유난히 친하게 지내던 형님이 동네에서도 알아주는 옥토에 태양광을 생각한다는 게 서글퍼 발걸음이 무거웠다.

농사일이 바쁘기도 하고 한번쯤 지나가는 생각이거니 여겨 까마득히 잊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벌써 영천시청에 신청서까지 접수한 상태였다. 개인적 친분으로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없지만 이대로 두면 안 될 것 같아서 이참에 마을에서 공론화를 시켜 마을입장을 정리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우선 인근에 사는 주민들의 의견을 듣고자 3반 반상회를 열었다. 세 가구 빼고 전원 참석했는데 태양광 신청을 한 형님이 안 보였다. 3반 반장이 해당 당사자가 오면 껄끄러울 것 같아 안 불렀다길래 비록 입장이 달라도 모셔서 이야기 듣는 게 순리라고 설득해 연락을 하니 다행히 오셔서 이야기를 나눴다. 이미 태양광발전소 반대로 입장을 모으고 감정이 격해있던 주민들도 막상 당사자가 오고 대화를 하니 좋은 말로 취소해 달라고 부탁했다.

3반 반상회 결정에 따라 6개 반 반장들의 동의를 받아 유례없이 임시마을총회를 개최했다.

갑작스런 임시총회에도 실 거주 100여 가구에 70여명이 참석했다. 불편한 자리인 줄 알지만 태양광 신청 당사자에게 참석해달라고 부탁했고 담당공무원도 불렀다.

이미 골프장 문제로 수 년 동안 골머리를 앓아 본 적이 있는 주민들은 개발이니 뭐니 해도 살기 좋은 게 최고라며 돈벌이로 하는 태양광발전소가 우리 동네에는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다수였다. 하지만 전 이장을 비롯한 몇 분이 “외지사람은 안되지만 한동네 살던 사람이 농사를 못 지어서 하는 것은 허가를 해주자”고 제안하자 토론에 열기가 띠었다. 이번에는 조용하던 할매들이 나서서 “그렇게 허가해주기 시작하면 농사지을 영감도 없고 자식도 없는 우리부터 할 건데 그러면 우리 동네가 우째 되겠노? 동네를 위해 개인욕심을 버리자”고 이야기를 하셨다. 2시간여의 뜨거운 토론열기에 담당공무원들도 끝까지 자리를 지켰고, 결국 투표로 결정하기로 했다. 평생 함께 살아온 안면에 자기의사를 분명히 표현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혹시나 싶어서 준비한 투표용지가 용이하게 쓰였다.

투표결과 반대 60표 찬성 3표로 ‘경북 영천시 임고면 효1리 주민들은 임시마을총회 결과 앞으로 자가발전과 건축물 위를 제외한 개인의 영리를 위한 어떠한 형태의 태양광발전소도 반대한다’고 결정했다.

부디 늙고 힘없는 변방의 작은 농촌마을에서 꽃 핀 민주주의도 존중되는 나라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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