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 밖’ 염소수급대책 내놓은 농식품부

생후 1년 이상 암염소를 도태대상에 골라 … 도대체 왜?
대상 선정도 기준 통계도 잘못됐는데 사업 강행만 고집
21억원 예산만 허공에 날린 채 과잉생산 못 막게 되나

  • 입력 2018.12.09 18:00
  • 수정 2018.12.09 21:52
  • 기자명 홍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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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홍기원 기자]

농림축산식품부의 이상한 염소 수급조절 대책이 구설에 오르고 있다. 염소농가 사이에선 상식 밖의 대책이 나왔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지만 농식품부는 안일한 행정편의적 사고에 젖어 심각성조차 제대로 인지하고 못하고 있다.

농식품부는 가격폭락이 몇 년째 지속되는 염소시장의 공급과잉을 해소하고자 지난 10월부터 암염소 도태장려금 지원을 하기로 결정했다. 과잉 사육 중인 암염소 2만1,000마리를 도태해 자생적 수급조절 기능이 회복되도록 하는 게 목표다. 이 사업은 두당 10만원씩 농가에 지원해 총 21억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지원 계획을 살펴보면 추진방법·사업기간·사업물량 배정기준 등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게 염소농가들의 주장이다. 농식품부는 생후 1년 이상의 가임암염소를 도태대상으로 정했으며 내년 10월까지 이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사업물량은 기타가축통계조사 결과에 따라 이미 시도별 예산배정까지 마친 상태다.

정부가 내놓은 상식 밖 염소수급대책에 염소농가의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사진은 경북의 한 염소농가 축사 모습. 한승호 기자
정부가 내놓은 상식 밖 염소수급대책에 염소농가의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사진은 경북의 한 염소농가 축사 모습. 한승호 기자

이에 경북지역의 한 염소농가는 “암염소는 보통 7개월만 되면 수정에 들어가는 농가가 많다”라며 “현 상황에선 2~3산 암염소는 분양 시장이 없다. 3산 이상의 염소는 어차피 도축장으로 가는데 이 물량에 왜 지원을 한단 말이냐”고 반문했다. 개별농가들이 가치가 높은 어린 암염소 대신 이미 다산을 해 도태할 암염소를 내놓고 지원금을 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염소농가는 “암염소가 한 번 출산하면 보통 2~3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시간을 끌수록 생산량이 그만큼 늘어난다”라며 “생후 1년 미만의 미경산 암염소를 단기간에 도태해야 하는데 농식품부 정책은 정반대다”라고 의아해했다. 그러면서 “건초값이 라일그라스 기준 1파레트당 16만원이었는데 지금은 26만원이다. 그동안 염소값은 반토막이 됐다”면서 “이 상황을 10월까지 끄는 것보다 일시에 끝냈으면 한다”고 하소연했다.

시도별 예산을 배정하는 기준으로 활용한 기타가축통계조사도 말썽이다. 황주홍 민주평화당 의원실이 농식품부에 요청해 받은 자료를 보면 농식품부는 지난해 12월 1일 기준으로 집계된 통계를 활용했는데 염소 전체 사육농가수는 1만2,295농가, 사육마릿수는 39만3,351두로 나타났다. 그러나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의 지난달 현재 염소 사육현황조사에선 염소 전체 사육농가수는 1만7,127농가에 사육마릿수는 58만9,514두로 집계됐다.

시도별로 나눠 살펴보면 농식품부가 활용한 통계는 전북이 사육마릿수는 전국 2위(7만3,027두)인데 생후 1년이상 가임암염소 마릿수는 가장 많아(3만1,808마리) 도태 장려금 예산도 가장 많이 배분받았다. 그러나 방역지원본부 집계를 보면 전북의 염소 사육마릿수(9만2,046두)는 전남(12만3,523두)과 경북(9만9,372두)보다 낮아 신뢰도에 의문을 남기고 있다. 단적인 사례로 여수시를 비교해보면 농식품부가 활용한 통계엔 이 지역은 염소를 사육하지 않는 걸로 조사됐으나 방역지원본부는 188농가가 2,813두의 염소를 사육한다고 집계했다.

즉, 농식품부의 염소수급조절 대책은 도태대상도 잘못 정하고 신뢰도 낮은 통계에 따라 예산을 나눠서 기간도 수급조절 효과가 떨어지도록 배정해 시행한다는 것이다. 안태붕 전국 염소가격폭락 비상대책위원장은 “농식품부와 이 사업을 협의할 때 계속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받아들이지 않더라. 아까운 예산만 날릴 수 있다”라며 “행정편의적 사고에서 벗어나 정책이 실제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농식품부는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농식품부 축산경영과는 황주홍 의원실이 요청해 제공한 자료에서 “기타가축통계조사는 방역지원본부와 달리 1세 이상 암염소 마릿수가 조사됐고 사육마릿수 증가 추세도 반영해 이를 근거로 배정했다”면서 염소농가들의 염소 수매요청엔 “정부가 염소 등 가축을 수매한 사례는 없다”고 잘라 답했다.

축산경영과 관계자는 “다산한 노령암염소는 제한을 두지 않았고 기타가축통계조사가 실제와 격차도 있는 걸 안다”면서도 “생후 1년 미만 암염소는 단가가 높아 지원할 수 있는 도태마릿수가 줄어든다. 이미 지역에서 농가 선정 마무리 단계에 있어 정책개선을 따로 검토하진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농가들이 빨리 시행해야 한다고 요청하며 시간에 쫓겨 정책이 추진된 면이 있다”고 되레 농가들에게 정책부실의 책임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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