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다시 남북의 문을 열고 함께 갈 때

  • 입력 2018.12.09 14:35
  • 기자명 우희종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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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희종 서울대 교수

지난달 28일부터 3박 4일 동안 유엔(UN)경제사회이사회의 NGO 협의지위를 획득하고 있는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의 공동대표로서 잠시 평양을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3중 제재 (유엔, 미국, 한국) 속에서도 평양 시가지엔 많은 택시와 함께 고층 건물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는 것은 남측 방문단 인사들의 공통된 놀람이었다. 남북 관계는 지난 두 남한 정권 동안 민간 차원 교류도 완전히 차단됐기에 정보가 별로 없었던 이들로서는 지난 10년간 국제 제재 속에서 북한이 그다지 변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던 탓이다.

평소 세계 어디나 사람 사는 곳은 그리 다르지 않다는 지론과 더불어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옛말을 새삼 떠올리면서 고층 건물이 생겨난 평양을 바라보지만, 여전히 평양을 벗어나면 전형적인 옛날 한국 농촌 모습을 볼 수 있다. 기내에서 읽은 노동신문의 내용을 살펴봐도 식량 확보를 위한 북한의 노력과 주민들에게 양질의 단백질 공급을 하려는 북한 당국의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강원도 세포지구에 추진한 대규모 축산 단지는 김정은 위원장의 2018년 신년사에도 등장한다.

하지만 여전히 식량 부족은 북한 주민들의 현실 문제로서 풀어야 할 숙제기에 북한과의 협력 사업에 남측 농업이 기여할 여지는 분명하다. 지난 20여 년 동안 1997년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의 ‘축산지원 및 농기계 수리 센터 건설사업’을 필두로 이어진 여러 남북 축산 협력 사업은 2005년 500마리 규모의 평양시 양돈장 건설사업과 2007년 협동농장 시범 개발 사업 등으로 진행돼 왔다. 그러나 이명박정부의 등장으로 전면 중단됐던 상황이었기에 모든 것은 이제 다시 시발점에 선 셈이다.

남북 협력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온 농축산 분야지만, 국제 제재가 있는 현실에서 이를 위한 정부 측의 ‘남북농업협력추진협의회’나 남북농업협력추진단은 제대로된 역할을 하기 힘들다. 오직 제한된 범위에서 민간 협력 형태만이 가능한 현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의 고민은 남한보다 북한 측이 더 크다고 느꼈다. 특히 정책이나 사업 추진에 있어서 민간 측과 정부가 서로 협조해야 일을 쉽게 풀어갈 수 있는 남한에 비해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과 민간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경계선이 분명한 북측이기에 더욱 그런 듯하다.

더욱이 10년이란 시간의 흐름 속에 변화된 남북 및 국제상황을 고려하면서 북측 고위층은 ‘고기 잡는 법’에 관심을 두지만, 말단 실무 측에서는 여전히 ‘고기’에 대한 관심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남는 것 퍼주기 식 협력관계는 남북 모두에 적합하지 않다. 또한 국제 제재 속에 남북협력사업의 가시적 진행이나 효과를 당장 얻기는 어렵다.

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북한 식량 문제에 대한 협력 사업은 가까운 미래에 예상되는 국제식량전쟁에 대한 남한의 대응전략 마련에 기여할 것이고, 이미 다국적 식량회사들에 휘둘리는 남한의 농업 구조를 재편하는 계기로 만들 수 있다.

한반도 평화가 단지 정치 구호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이렇듯 큰 틀에서의 지향점을 분명히 하되, 그 첫 걸음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남과 북은 가슴을 열고 지난 10년의 간극을 넘어 서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주 만나 소통하고 이해하는 것이 절실함은 이번 방북에서 재확인할 수 있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남북 지도자들이 함께 힘 모아 노력하고, 이들의 노력에 부응하여 우리 모두 실질적이자 구체적인 결실을 위해 고민하고 행동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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