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개혁’ 연속 인터뷰⑩] 박주환 전 칠보농협 감사

“협동조합은 교육으로 시작해서 교육으로 끝난다”
조합장·임원, 협동조합 시험 치른다면 … 농협 개혁 역량 발굴 농민회 역할 절실

  • 입력 2018.12.09 17:11
  • 기자명 박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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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박경철 기자]

2016년 농협법 개정안 통과로 지난해 초 농협의 지주체제 전환이 완료됐다. 이후 새정부 출범과 맞물려 농민·사회단체도 농협 적폐 청산을 요구했지만 뒷심이 부족했다. 또한 국회가 개정 농협법에서 부족한 부분을 논의하겠다고 만든 농협발전소위원회도 휴면 상태다. ‘농협 개혁’ 목소리가 잦아드는 형국이지만 “농협이 문제”라는 농민들의 성토는 여전하다. 매월 농협 전문가들의 연속 인터뷰를 통해 농협 개혁의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하고자 한다.

“협동조합은 교육으로 시작해서 교육으로 끝난다. 아는 만큼 농협을 개혁할 수 있고, 변화시킬 수 있다.”

박주환(52) 전 칠보농협 감사가 시종일관 강조한 얘기다. 물론 이는 그가 농협에 관심을 갖고 하나라도 더 배우기 위해 농협 전문가들을 끈질기게 쫓아다니며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 얘기기도 하다. 그러다보니 자신만의 철학으로 체화한 셈이다. 지난 4일 전북 정읍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나 농협 개혁에 대한 소신을 확인했다.

- 농협 개혁 관심은 언제부터.

고향인 정읍으로 돌아온 게 1990년대 중반이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지만 나이가 찼고, 고향에서 농사를 짓기로 마음을 먹었다. 부모님 입장에선 당신들이 고생을 했으니 자식은 공부해서 편하게 살았으면 했던 터라 곱게 보일리 만무했다. 처음 2~3년은 투명인간처럼 지내면서 농사만 지었다.

하지만 그렇게 살 수만은 없었다. 농부 3년차에 농민회에 가입해 농민운동을 시작했고, 마을이장도 맡아 주변을 살폈다. 부모님의 마음도 차츰 풀렸고, 동네일을 맡아보며 면사무소 직원과 결혼도 하게 됐다. 이런 과정 속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어른들이 농협 얘기만 나오면 욕을 엄청 했었다.

농협에 출자한 어른들이 주인인데 직원들이 그들을 대하는 태도에서부터 문제였다. 뭘 물어봐도 알려주지도 않고, 참여도 막혀 있고, 불만을 얘기해도 반영되지 않았다. 욕을 먹을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당시 농협의 대출금리는 시중은행보다 월등히 높았던 터다. 농협이 조합원의 등에 빨대를 꽂아놓고 피를 빨아먹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농사짓고 이용해야 할 농협인데 제대로 알아보자고 다짐했다.

- 교육을 강조하게 된 배경은.

교육에 눈을 뜬 건 그때부터다. 다른 교육은 몰라도 농협 개혁 교육이면 하던 일도 멈추고 전국 어디라도 쫓아갔다. 농협 개혁으로 소문난 한 조합장의 집까지 쫓아가 일대일 과외까지 받았다. 그 조합장이 운영하는 지역농협의 예·결산 총회까지 쫓아다녔다.

하지만 한계를 느꼈다. 농협을 제대로 알기엔 너무 폐쇄적이라서다. 세세하게 들여다보자는 생각에 감사에 도전했고, 2011년부터 지난해 1월까지 칠보농협에서 감사를 맡았다. 감사를 맡고 무엇보다 교육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문제를 제기했다. 칠보농협이 문을 연 이래 전체 조합원 교육이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은 까닭이다. 조합원이 어렵다면 임원 워크숍이라도 추진하자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조합장이다. 도시는 잘 모르겠지만 지역에선 농사꾼이 조합장이 된다. 의지가 있어도 제대로 훈련이 안 되다보니 점점 사유화돼 간다. 인사권을 들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면서 누구누구 조합장 공화국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이사 등의 임원과 대의원도 마찬가지다. 제 역할을 해야 하는데 거수기 역할을 할 뿐이다. 이들도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다.

또한 농협은 기업이 아니라 협동조합이다. 농협이 제 역할을 하면 조합원의 삶이나 경제수준이 달라진다. 시대가 변하고 조합원 요구는 높아지는데 직원들은 지금까지의 습성을 못 벗어나고 있다. 많은 직원들이 직장 개념으로 생각한다. 실무만이 아니라 협동조합 이념이나 운영원리 교육도 필요하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결국 조합원이다. 농협의 주인이라는 조합원이 교육을 요구하고 농협의 운영을 바꾸려고 해야 하지만 안 하는 것이다.

- 감사로서 어려움은 없었나.

아무리 뜻이 좋아도 현실의 벽은 견고했다. 욕을 먹을 각오로 나섰지만 문제를 제기하면 농협에서 어떡해서든 흠을 잡아 손발을 묶고 여론몰이를 한다. 농협을 넘어 지역 차원에서 왕따가 되는 것이다. 무서울 정도로 집요하다.

물론 성과도 있었다. 어려운 과정 속에서도 완전히 고쳐내진 못했어도 농협 내부에 일련의 문제가 있음을 공론화시켰다. 예를 들어 하나로마트 직원들이 손님들이 안챙긴 포인트를 챙겼다거나 승진시험에서 80점을 받아야 갈 수 있는 일반직의 자리를 40점만 받아도 되는 여성복지직으로 변경해 편의를 제공한 건 등이 있다.

- 지역농협이 바꿔야 할 점은.

지금의 구조로선 농협 개혁이 쉽지 않다는 생각이다. 협동조합 관련 시험을 만들어 통과한 사람이 조합장이나 임원을 할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그러면 최소한 농협법이라도 한 번 읽어보지 않을까.

또 품목이 다양하게 세분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지역농협 이사를 품목별대표에 분배해 다양한 목소리를 보장해야 한다. 그리고 사업계획에 대한 조합원 설명과 함께 지도사업비도 조합원들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줄 필요가 있다.

- 마지막으로 한 마디.

농협 개혁은 사실 농민운동의 흥망성쇠와 맞물려 있다. 농협 개혁이 중앙에서부터 지역까지 화두가 되고 힘 있게 추진된 시점은 2000년대 초중반으로 당시만 해도 지역에서 농민회가 왕성하게 활동했다. 이후 농민운동이 침체기에 들어서며 농협 개혁으로 변화된 부분들이 이전으로 회귀하고 있는 형국이다. 농협 개혁 주체역량 발굴 및 활성화를 위해 농민회의 역할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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