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의 단단한 빗장, 희망을 갖고 열자

  • 입력 2018.12.09 17:07
  • 기자명 김순재 전 조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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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재 전 조합장
김순재 전 조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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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점을 지적해 비판하기는 쉬워도 개선하기는 힘든 법이다. 특히 문제가 있는 조직이 권력을 지녔다면 고치기는 예사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느 농협이 요청한 임원교육에서 조합장으로 출마하기를 희망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분이 지속적으로 농협의 문제점을 질문 형식으로 발언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그는 농협의 감사를 맡은 분이셨는데, 그 때 그분에게 “그 현상에 대한 대안을 혹시 갖고 계십니까?”라고 물어보며 발언을 중지시킨 적이 있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농협 전체는 대단한 힘을 가진 조직이다. 그러면서도 본래의 기능 상당부분을 방기하고 있는 조직이다. 농협의 윗물-중앙회는 협동조합 정신에 반하는 사업을 서슴지 않는 심각한 조직이며, 대단한 힘을 가진 조직이다. 이런 조직들은 절대로 스스로 개선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결코 그런 적이 없다. 이런 조직들을 공격하기는 쉬워도 개선할 대안들을 실현시키기는 매우 어렵다.

농협이라는 조직의 잘못 걸린 빗장부분을 풀어서 궁극적으로 농협이 농업·농촌·농민에게 제대로 복무하게 만들고 싶지만 농협의 중앙조직들은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이고 지금도, 앞으로도 오로지 사업을 하는 척 면피만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농협이 만들어진 이유와 진행한 사업들

1) 우리 농업에서 농업협동조합이 가져야 하는 목표는 시장의 기능에 농업을 맡기기에는 부작용이 너무 심하기 때문이다. 본래 농협은 대단위 농업경영이 이뤄지는 곳에선 사업을 하기가 힘든 조직이며 필요하지도 않다. 우리나라처럼 영세한 소농이 즐비한 곳에 꼭 맞는 조직이며 사업 필요성이 매우 중요해지는 곳이다.

2) 시장주의-자본주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폐단을 극복해 농업도 우리 사회에 올바르게 복무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농협 같은 조직을 통한 생산·유통·자금조달은 필수적이다. 시장주의 사회에서 소농들은 많은 단점이 있지만, 가장 인간적인 모양새를 갖춘 생산 체계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생산 체계가 소규모일 경우에는 자본의 영향에 쉽게 쓰러질 수도 있기에 협동조합이 이를 보강해줘야 한다. 그게 농협의 필요성이다.

3) 시장주의 사회에서 협동조합은 협동조합 본래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데 우리 사회에서는 매우 기형적인 구조로 농업협동조합이 운용되고 있다. 이것은 협동조합의 탄생과 운용이 오랫동안 기형적으로 이뤄져 왔기에 당연시 하는 경향까지 생기고 있으며 일부는 문제 개선을 위해 노력하지만 다수는 지금의 혜택을 누리며 강화시키는 경향까지 나타나고 있다.

4) 해방 이후 우리 사회는 농업의 하락세가 오랫동안 지속돼 왔다. 하락세가 오랫동안 지속되다보니 매우 중요한 문제임에도 농업은 관심사에서 멀어졌고 협동조합 운용에 정부가 개입하기에는 인적 자원이 부족했다. 1970년대에 타 산업에 비해 농업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거의 역적 취급을 받아야 하는 형편이었기에 산업 흐름의 기조에 누구도 토를 달기가 어려운 형편이었다. 농민들은 소수화 돼가는 사회에서 가장 보수적인 조직이었고 농업의 중요성은 논외였고 농업은 자기 생존에 필요한 천대받는 직업군에 불과했다.

5) 국내 농업의 하락세 지속과 농업 시장의 개방 요구가 맞물리면서 안정화시켜야 하는 산업이었음에도 농업은 우선순위에서 늘 밀렸다. 농업의 대변자는 소수였고 이단에 가까운 취급을 받았다. 그리고 소수의 대변자는 영향력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결국 농업은 안정적인 비중이 있어야 함에도 상대적으로 산업 전체에서 급격히 축소됐다.

6) 축소되는 흐름은 이제 거의 3세대에 이르렀다. 75년이 넘어가는 기간 동안 이어져 온 것이다. 그러는 사이 지역-품목농협의 주 구성원은 고령화됐고, 본질을 망각하고 이기적으로 변질된 인적 요소들에 의해서 협동조합 내에서 제대로 사업하는 정서가 뿌리내리지를 못했다. 3세대에 걸쳐 진행되다 보니 기형적인 형태가 기형으로 인식되지 못하고 당연시 됐다.

7) 위와 같은 기형적인 우리 사회의 농업협동조합에서 권력을 틀어쥐게 된 농협중앙회가 근시안적으로 전횡을 일삼아 왔다. 중앙회장의 다수는 비리로 감옥을 갔고, 그에 따른 책임 추궁은 개인에 그치고 일시적으로 농협은 중앙조직이 정치적인 공세를 받기도 했지만 농민들의 삶의 질과 협동조합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삶의 질은 현저히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8) 농협중앙회는 오랫동안 자기 조직 중심으로의 사업 강화를 위해 로비를 해왔으며 그 내용들은 방대하고 치졸했었던 것으로 보인다. 로비의 주 대상은 국회의원과 농업부분의 관료들이었다. 농협중앙회는 엄연히 지역농협과 별개의 법인임에도 농업에 던져지는 정부의 주요 혜택은 다수가 그들의 몫이었다. 정부는 이에 관심을 가지는 인적 자원을 갖지 못했고 외부의 인력을 운용할 생각도 없었다. 이는 농협중앙회의 치졸하고도 치밀한 로비 덕분으로 보였다.

9) 협동조합 사업들을 바르게 세웠어야 하는 사람들은 농업이 어려워지는 상황 속에서도 자기 몫을 충실히 챙겨가며 매우 부패한 상태였다. 농협중앙회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 특히 농업 관련조직들의 대다수가 그러했다. 어떤 자료에는 정부가 설립한 공사들 중에서 한국농어촌공사가 청렴도 꼴찌로 나타나기도 했었다. 그래도 농민들은 집단화해 그 책임을 묻지 않았다.

농협이 바로 서기 위해선

1) 법을 통해 지역-품목농협들을 중심으로 하는 연합회의 길을 열어 나가야 한다. 지역-품목농협들이 연합회로 가는 것은 법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고, 법은 이미 허용하고 있는 것이지만 인적 자원의 부재로 인해 기안 자체가 안 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살펴본 바로는 지역농협은 필요에 따라 연합체를 얼마든지 만들 수가 있다. 이는 정부가 길을 열어 줘야 한다.

2) 지금의 농협중앙회와 관련법인들은 전부 지역농협의 연합회로 넘기는 절차를 거쳐야 하며 지금의 중앙회는 축소 후, 해체시켜야 한다. 농협중앙회는 지역농협 연합회로 바꿔야 하고 그 명칭부터 떼버려야 한다. 농협중앙회는 이미 농협이라고 떠들지만 농협이 아닌지가 오래된 조직이다.

3) 연합회 조직을 꾸리면서 지역농협은 연합회를 통해 금융과 경제사업들에 대한 과부족은 보완되도록 해야 한다. 중앙회 역할이 지역농협들의 과부족 부분들을 조절하는 기능이었어야 하는데 그 역할이 도를 넘어서 전횡을 휘두르고 있는 것이다.

대다수 지역농협들의 구조적인 실책들은 농협중앙회가 가장 먼저 파악하고 있다. 과거 20년 전에 비해 거의 완벽에 가까운 전산화가 이뤄진 지금은 중앙회가 지역의 문제점들을 엄폐하는데 가장 앞장서고 있는 실정이다.

4) 농협사업이 사업 본질에 복무하는지에 대한 감사가 실질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감사관련 기관과 구성원에 대해서는 독립성의 보장과 그 책임도 동시에 물어야 한다. 농협 사업은 법에 명시된 사업이 있고, 처벌 규정 없이 법에 명시한 본질이 있다. 법을 제정함에 있어 그 법의 제정 취지를 먼저 표기하는데 그 내용은 대개 도덕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

도덕은 비난-비판의 대상이지 처벌의 대상은 아니니 비난을 받을지라도 제 몫은 챙기겠다는 이기심이 궁극적으로 농협을 이 지경이 되도록 만든 것이다. 그러니 농협의 감사기능을 실질화 시켜야 하고 감사 기능의 실질화를 통해 조직을 정상화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한다.

5) 횡령·배임과 관련이 있는 지역-품목농협들은 파산시켜야 하고 그 책임을 매우 엄중히 물어야한다. 지난 20년 동안 많은 지역농협들이 부실화돼 통폐합됐다. 통폐합의 면면을 살펴보면 농업의 축소와는 상관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인근에 통폐합된 농협 대부분의 부실 원인은 횡령과 배임이었다. 그런데도 책임지는 경우는 매우 희박했다. 지역농협 하나가 망해도 인근농협에 통합돼 지속적으로 부실화된 상태를 유지시켜 나갔고 책임을 제대로 묻지 않았다.

농협중앙회 회장으로 출마하고자 하는 지역농협의 조합장이 있었는데 살펴본 바로는 그 농협의 연체율이 10%가 넘는 상태였다. 그런데도 지역농협에 대한 감사권을 가진 농협중앙회는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그 뒤에 해당 농협은 인근의 더 부실한 농협과 합병했다. 책임을 물었어야 했는데 그 부실한 지역농협의 조합장은 재임 중에 조합장을 사직하고 농협중앙회의 자회사급에 해당하는 곳의 사장으로 갔다. 이게 현실이다. 농협중앙회가 자행한 것이다.

6) 농협도 선거를 거쳐야 하는 조직이니, 오래된 농협 선거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서는 선거법을 적극 적용해 선거운동 방식과 그 내용을 양성화해야 한다. 현재와 같은 농협 조합장 선거의 흐름의 배후엔 농협중앙회가 있겠지만 우리 사회의 선거법 기조는 ‘돈과 거짓은 묶고, 발과 입은 푼다’이다. 그럼에도 농협 조합장 선거를 보면 발과 입 대부분을 묶고 있다. 발과 입을 묶으니 당연히 음성적으로 돈과 거짓이 돌아다니게 됐다. 이는 오랫동안 조장돼 온 일이다.

그럼에도 이 일을 개선하기 위해 국회·선거관리위원회·농림축산식품부·농협중앙회가 움직이지 않고 있다. 전부가 따로 놀고 있는 형국이다. 국회는 관심도 없고, 선거관리위원회는 의견을 제시하지만 늘 계류의 상태이고, 농림부는 관료화된 까닭에 농협중앙회의 동향을 살피고, 농협중앙회는 스스로가 부도덕하니 개선할 생각이 아예 없다.

빗장풀기를 마무리하며

우리 속담에 ‘답답한 놈이 우물 판다’고 했다. 우리 농민들이 많이 답답하기는 하지만 우물을 파기에는 늙은 사람들의 비중이 너무 많다. 필자가 농사를 시작했던 20대 후반에 팔팔했던 동네 형님들도 지금은 60대 후반이나 70대가 됐다. 이러한 현실에서 나이든 농민들이 목말라 쓰러질 지경이어도 스스로 우물을 파기에는 이미 불가능해 보인다.

농협을 바르게 하기 위해서 농민들이 나설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이고, 농협중앙회는 절대로 나서지 않을 것이고, 문재인정부에서 발탁한 농업 인사들도 자기들의 이익을 찾아 떠났거나 일하기 힘든 조건이 돼버린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서양 옛 이야기에 나오는 판도라상자의 맨 밑바탕에는 ‘희망’이 남아 있었다고 하니 희망을 찾고 가져 볼 일이다.

빗장은 안에서 풀기는 쉬워도 밖에서 풀기는 어려운 것이다. 지난해 1월부터 올해 12월까지 글을 기고하는 가운데서도 필자는 꾸준히 농사를 지었고 힘든 시간을 가지면서 고민도 많이 했다. 지금까지 농사를 해오며 일도 힘들었지만, 시장에 나가서 좌절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래도 농사를 지어왔다. 그리고 지은 농사로 먹고 살았다.

정부-지방정부의 거지같은 지원을 거절하며 농사를 지어왔고, 잘 버텨왔다. 그리고 강요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아들 둘도 농사를 짓고 있고 딸도 농과대학을 갔다. 농업은 내 삶이다. 아들과 주고받으며 필자가 울었던 이야기로 ‘김순재의 농협 빗장풀기’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이번호를 끝으로 ‘김순재의 농협 빗장풀기’ 연재를 종료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이번호를 끝으로 ‘김순재의 농협 빗장풀기’ 연재를 종료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그랬다 왜 임마!”

며칠 전, 같이 일하던 둘째 아들과 의견이 맞지 않아 사소한 충돌이 있었다. 농사 7년차가 된 큰 아들은 필수적인 노동을 상호지원하는 것을 빼고는 사실상 독립경영을 하고 있고, 4년차인 둘째 아들은 예상하기를 독립경영 3년 정도를 앞두고 있다. 절임배추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수치에 대한 이해가 서로 틀려서 이야기를 하는 중에 둘째 아들은 정확히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는 왜 일을 허덕허덕거리며 하십니까? 그게 행복한 겁니까?”

필자는 자리를 박차고 이야기 하던 창고에서 나갔고, 배추밭에 가서 일하며 울었다. 아들 말은 맞는 말이었다. 필자는 늘 허덕거리며 일했었다. 지나온 과정을 살펴보니 그렇게 허덕거리며 일해 온 내 자신이 불쌍해서 울었다.

농과대학을 나와서 반나절도 머뭇거리지 않고 농사를 짓기 위해 들어왔고, 지난 30년 동안 생존하기 위해 일하고, 부당하다 싶은 것에 대해 싸우고, 몸이 아파야 뻗어 쉬고, 밥 먹고, 잠 잔 일 밖에 없었던 것 같다. 외국은 고사하고 국내 여행조차도 다닌 적이 없는 것 같다. 사람이니까 잠을 잔 것 같기도 하고, 사람이니까 끼니때가 되면 먹었고, 몸이 아프니 뻗어 쉴 수밖에 없었고, 부당한 것은 고쳐야 하는데 스스로 고치지 않으니 싸워서 고치기 위해 나름 노력했던 것 같다.

먹거나 자거나 쉬거나 싸우려면 비용이 필요했으니까 일을 했던 것 같다. 배추밭에서 일하며 혼자 눈물이 그렁하고 코를 훌쩍이면서 창고에서 일하고 있었을 둘째 아들에게 들리지도 않았겠지만 말했다. “그래 임마. 그랬다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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