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바다에서 마을을 볼 수 있기를

"돌아오시라. 남아있는 터에서 먹고 살 일 왜 없겠는가.
나머지는 자기가 난 마을에서 숨겨왔던 꿈들 꾸시게."

  • 입력 2018.12.02 18:00
  • 기자명 부석희(제주시 구좌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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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희(제주시 구좌읍)
부석희(제주시 구좌읍)

사람들은 자기가 별거 없는 곳에 살고 있다고 입버릇으로 늘 말하고 나도 그런 줄 알고 살았다. 물때가 되면 고무옷을 챙기고 나서는 바닷일. 힘들다고만 하다는 밭일로 늘 바쁘게 살았으니 그저 바다를 건너 섬을 떠나야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자식들을 내몰았던 제주섬이다.

우리 할아버지는 뱃속에 아버지를 남기고 쫓기듯 일본으로 도망을 가고 아버지가 마흔 일곱 되던 해에 겨우 찾아 우리에게 할아버지 손을 잡고 걸어 볼 수 있는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아버지도 군대 간다는 핑계로 한참 육지에서 떠돌다가 아프다는 할머니 엄살에 못 이겨 하나밖에 없는 아들 노릇을 하며 살았다.

다섯 형제 중에 이 마을에 남아있는 식구라곤 나 혼자 뿐이다. 여자는 나면 물질이라도 해서 먹을 거라도 구해 오며 살림을 꾸리지만 남자는 나면 고깃밥이 되거나 세상밥이 된다 하고 섬을 나가지 못하면 죽거나 사람 노릇 못한다는 말만 들었으니, 떠난다는 건 살아남는 일이고 떠나보내는 건 살리는 길이었단다.

마을로 들어오는 소나무 언덕 아래 쉬어 갈만한 동산, 번듯하게 세워진 비석에 쓰여진 글 ‘同年回甲(동년회갑) 기념비.’ 60살까지 살아남은 친구들 이름을 돌에 새기고 자축하는 글이 쓰여진 섬의 비석이다. 거기에는 어려서 떠나지 못했던 작은 할아버지 이름도 볼 수 있다. 뭐라 굳이 덧붙이지 않아도 뭐 때문에 죽고 살아남았는지 그려진다.

뭐니 뭐니 해도 우리 마을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은 바닷가 선창가다. 한 눈에 다 들어오는 마을에 집집들, “나는 자식들을 다 뭍으로 보냈어.” 안심하듯 홀로 남은 어머니만 사는 집들이 티나게 예쁘다.

아흔이 넘은 할머니 집은 매일 작은 가위로 잔디를 깎으며 언제고 돌아올 한 사람을 맞이할 채비를 다 해 놓았다. 소소한 모래사장이 있는 곳에 서른 배는 족히 오른 집을 팔지 않고 지키고 있는 것은 언제든 어려워지면 돌아오라는 약속인 걸 안다. 별거 없다고 너무 소소하다고 등 돌린 곳에 사람들이 모여 들고 있다. 바뀌지 않은 풍경들이 새롭다고 남겨두시라고 마을을 본 이들은 똑같은 말을 한다.

돌아오시라. 남아 있는 터에서 먹고 살일 왜 없겠는가. 선창가에 나가서 마을을 보다보면 보물 같은 일들이 있어왔고 쭉 이어갈 일들이 보인다네. 나가서 오래 살았으니 나머지는 자기가 난 마을에서 숨겨 왔던 꿈들 꾸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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