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는 어떤 모임에 나가지 않을 핑계를 만드느라고 허둥거렸다. 저녁 8시에 약속이 잡혀 있는데 나는 애초부터 나갈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어제, 과거에는 자기들도 ‘농민운동’을 했다고 자부(? 바쁠 때는 비행기를 타고 다녔단다)하는 어떤 모임에서 느닷없이 전화를 걸어와 좀 만나자는 것이었다. 가봐야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밖에 안 할 사람들에게 발품을 팔 이유는 없었다. 딱 잘라 시간이 안 된다고 할 수도 있었지만 체면 좀 세워달라는 후배의 말을 차마 거절할 수 없어 ‘특별한 일이 없으면 참석은 해 보마’ 라고 미지근한 대답을 해 주었던 터라 어떤 ‘특별한 일’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었다.
복숭아 씨 두 벌 솎기를 하면서 여기저기 치솟아 올라오는 쑥대를 뽑으랴, 개망초를 뽑으랴, 새들이 옮겨 놓은 찔레며 뽕나무를 캐내느라고 땀을 흘리는데, 경적소리가 들리더니 경용이 형님이 밭으로 들어선다.
“아따, 이 사람아, 그만 따라. 이만큼이나 솎아뿌면 나중에는 머 따노.”
나는 이맛살을 구기면서도 체면을 생각해 퍼질러 앉아 담배를 꺼내 문다.
“이 복상은 함자가 우예 되노?”
“그 어른 함자가 장 자, 택 자, 장택백봉이구마.”
“장택? 이 물건 이거는 꽃 피는 거는 다 결실이 되더라. 가당차이 열리는기라.”
경용이 형님은 모르는 것 빼고는 다 아는 사람이다. 언제 어느 때라도 얘기 할 상대만 있으면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하염없이 신명나게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요새는 데모하러 안 가나? 아직도 시 쓰나? 인자 농민회는 그만 하제? 하기사 자네도 할 만큼 안 했나. 그러이 인자는 농사 열심히 지어야제.”
또 그 소리. 경용이 형님은 내가 엎어 놓고 올라서서 일하던 상자에 걸터앉으며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만 툭, 툭 던진다. 나는 쓴 미소만 날리며 바닥을 내려다본다. 거기에서도 쑥대가 자옥하게 올라오고 있다. 이대로 두었다간 머잖아 ‘쑥대밭’이 되고 말 것 같다.
“요새는 서울 시민이 효자더라. 참 가당찮더라. 우예 맨 날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동, 정부가 꼼짝을 몬 하더마는. 내사 소 키우는 사람들이 소라도 수백 마리 잡아다가 멕여야 안 되겠나 시푸더라. 촌놈들이야 한창 바쁠 때, 그게 얼매나 반갑노.”
수백 마리를 갖다 먹여? 그것 참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나는 그 말에 얼른 핑계거리를 만들었고, 놓칠세라 촛불을 꽉 움켜잡는다. 달게 담배연기를 흠씬 빨아들인다. 나는 요즘 밤마다 인터넷 동영상으로 촛불집회를 보면서 살 떨리는 짜릿함을 만끽하고 있는 중이다. 소 잡는 칼로 닭을 잡을 수는 없는 법인데 공권력은 그 짓거리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민들은 선지자였고, 촛불은 푸른 경전이었다. 경전을 펼쳐 설법을 하는 ‘선지자’의 일갈은 사자후였다. 역류하던 강물인들 어찌 흐름을 되찾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엉덩이가 질긴 경용이 형님은 예상보다 일찍 자리를 떴다. 그런데 고민이다. 대구백화점 앞으로 촛불집회에 가버려? 그런 고민으로 속을 끓이다가 조금 일찍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손발만 대충 씻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서울광장은 오늘도 만원이었다.
8시 반이 지나 기다리던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볼륨을 한껏 올리자 방안은 영락없이 촛불집회장이 되고 만다. 어머니가 깜짝 놀라 방문을 열고 뜨악해 하신다. 나는 손짓으로 어머니를 안심시킨 뒤 전화를 받는다.
“형님, 어덴기요? 그란데 거, 와 그래 시끄럽은기요?”
“니는 이 소리가 무신 소리로 들리노?”
“지금, 데모하는기요?”
“무신 소린지 잘 안 들리는데, 여기는, 지금, 촛불, 집회한다.”
“서울은 또 언제 갔는기요? 그라믄 알았구마. 형님, 몸 조심하이소.”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되었다. 그런데 전화를 끊고 볼륨을 줄이자 마음이 착잡해진다. 나는 단 한번의 자성도 없이 촛불집회를 팔아먹고 만 것이었다. 저 ‘선지자’들을, ‘푸른 경전’을 팔아 일신의 편함을 얻은 후안무치였다. 서울광장의 사자후가 내 귀싸대기를 후려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