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매법인 간 경쟁, 한계 드러났다

공정위 담합 제재받자 오히려 위탁수수료 상향조정
수수료 단독 인상해도 기존 출하자 이탈 크지 않아
“거래제도 다변화 통한 경쟁 촉진” 필요성 재확인

  • 입력 2018.12.02 18:00
  • 수정 2018.12.04 09:24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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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지난달 26일 서울 가락시장 내 한국청과에서 경매가 이뤄지고 있다.
지난달 26일 서울 가락시장 내 한국청과에서 경매가 이뤄지고 있다.

가락시장 한국청과 수수료인상 사태로 인해 도매시장 경매제의 모순이 그늘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현 경매체제 내에선 시장논리에 의한 건전한 경쟁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에 진보 성향 인사들을 중심으로 도매시장 거래제도 다변화 요구가 다시 한 번 쏟아지고 있다.

가락시장엔 특수품목 전문법인인 대아청과를 제외하면 총 5개의 청과도매법인이 있다. 5개 도매법인의 위탁수수료는 ‘4%+표준하역비’, 즉 약 5% 수준으로 한 치의 오차 없이 동일하다. 한국청과가 수수료를 7%로 인상하려 한 건 지난 20년간 유지돼온 이 단일 수수료체계를 깬 것이었다.

상식적인 관점에서 매우 이상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시장경제 하에서 이같은 단일 수수료체계를 벗어나고자 한다면 수수료를 낮추는 게 정상이다. 다른 법인들의 수수료가 모두 5%인데 홀로 7% 수수료를 받겠다는 건 자멸하겠다는 얘기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도매시장 구조를 아는 사람들은 아무도 한국청과의 몰락을 점치지 않았다. 가락시장은 서울과 수도권, 넓게는 전국을 소비지로 가진 독보적 도매시장으로, 설계물량 대비 1.5배의 물량이 상시 출하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A법인은 과일, B법인은 과채 식으로 각 도매법인들이 주력 품목에 특화돼 있는데다 법인마다 처리할 수 있는 물량 자체에도 한계가 있다. 가령 한국청과로 출하되던 채소가 다른 법인으로 이탈한다 했을 때, 그 품목을 취급하는 중도매인 수가 적거나 물량이 과다 집중됨으로 인해 가격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또한 7% 수수료를 받게 된다면 한국청과는 어떤 식으로든 출하자들을 우대할 수 있는 여력이 커지게 된다. 수수료 인상은 다수 영세농이나 소규모 출하자들에겐 부담으로 작용할 개연성이 크지만, 반대로 소수의 대형 출하자들은 기존보다 나은 대우를 받게 될 수도 있다.

시장논리에 역행하는 한국청과의 수수료 인상 시도엔 이같은 배경이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도매법인 수수료 담합 판결은 출하자의 이익을 위해 수수료를 하향경쟁시키려는 의도였지만, 도리어 상향경쟁이 이뤄질 수도 있다는 게 이번 사건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도매법인들의 수탁독점체제다. 도매시장 전문가들은 현 경매시스템 하에선 도매법인 간 경쟁에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김윤두 건국대 농식품경제학과 교수는 “공영경매사가 참여하는 통합경매를 한다든지, 중도매인들의 도매법인 소속제를 실질적으로 폐지하기 위해 통합정산을 도입한다면 도매법인 간에도 경쟁의 여지가 생길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근본적인 개선방안은 역시 지속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거래제도 다변화다. 시장도매인제나 상장예외품목 등 경매제 이외의 거래제도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태성 서울시의원(더불어민주당, 송파구)은 “수집활동에 소극적인 도매법인과 달리 비상장 중도매인들은 치열하게 수집활동을 해야 생존할 수 있다. 수집을 하려는 주체가 많아지면 경쟁이 촉발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윤두 교수도 “시장도매인제나 상장예외 확대는 (경매제와) 시스템 간 경쟁을 일으킨다. 이는 도매법인 간 경쟁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나용원 서울농수산물도매시장정산㈜ 상무는 최근 가락시장에서 추진 중인 시장도매인제 도입에 대해 “시장도매인은 숫자가 충분히 확보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몇 개 안되는 시장도매인으론 경쟁이 제한돼 또 다른 기득권 구조를 고착시킬 것”이라고 경계의 목소리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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