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동마을 새댁 일기

윤선미 경남 사천시 벽동마을

  • 입력 2008.06.08 15:55
  • 기자명 윤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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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선미 (경남 사천시)
우리 부부는 농사를 짓겠다는 꿈을 갖고 결혼한 다음달에 벽동마을에 이사왔다.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두달동안 서울과 사천을 오고가며 주말부부로 살다가 3월부터 드디어 함께 살 수 있었다. 농촌에서 그것도 둘다 타향인 사천에서 산다고 부모님과 지인들이 많이 걱정했지만 우리는 마냥 좋았다.

3월 어느날 따뜻한 팥시루떡과 함께 큼지막한 과일 몇 개를 들고 우리집 주변 이웃집에 인사를 다녔다. 서울에서는 그렇게 이웃집에 인사를 다니고 떡을 돌려도 그저 인사로 끝나지 친절한 말 한마디 없기 쉬웠다. 그런데 벽동마을 어르신들은 떡과 과일보다 훨씬 값진 선물을 들고 우리집을 찾아 주셨다. 장에 나가서 팔기만 하시고, 웬만해서는 돈 쓰고 오시는 일이 없는 할머니들께서 장에 다녀오셨다는 말에 어찌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그전에는 꼭꼭 닫아두기만 했던 현관 밖 대문을 우리는 그제서야 열어두기 시작했다.

이웃 어르신들의 “왜 이곳에서 살려고 하냐”는 물음에 우리는 주저없이 대답했다.

“농사 짓고 살려고 왔습니다∼!”

눈이 동그란 할머니, 허리가 굽은 할머니, 과묵한 할아버지 등등.. 대답을 듣는 분이시라면 누구도 그냥 넘어 가지 않으셨다.

“대학 나와서 타향까지 와서 와 농사를 짓노? 돈 안된다. 그냥 시내에서 직장 다니그라....”

“하하....하하....”

우린 씨∼익 웃기만 했다.

우리가 이사 왔을때 벽동마을은 마늘을 추수하느라 바빴다. 나도 가끔 일을 거들곤 했다. 이리 힘든 일을 정말 평생할꺼냐고 할머니들은 웃으며 물었다. 대답을 행동으로 보이겠다며, 나는 못하는 일이지만 열심히 했다. 그러다 병이 나서, 하루를 누워 있기도 했다.

농사 지을 땅을 구하려고 몇날을 알아보았지만 우리는 끝내 올해 농사를 시작하지 못했다. 농사 지을 우리 땅이 없다보니 임대를 해야했고, 무엇을 심어도 지대를 빼고 나면 남을 농사가 없는 것이었다. 빚을 몇 천만원씩 갖고 있는 선배 농민들을 만나도 그저 남일 같았었는데, 우리도 그렇게 살게 되는 거구나 싶어 겁이 났다. 대출을 받아 농사를 시작하기로 했었지만 그렇게 빚농사가 시작된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 정말 겪어봐야 아는구나 싶었다.

그때부터 뉴스 속의 농업문제는 남 일이 아니었다.

오늘 사료값 폭등으로 힘들어 하던 전남 무안의 한 농민이 운명을 달리 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부채가 너무 많아서 지원금을 받을 수 없었고, 그래서 키우던 돼지들이 죽어가자 비관하여 그리하였다고 한다. 뉴스를 보니 서울의 식당에서는 삼겹살이 1인분에 만원을 훌쩍 넘는 곳도 있다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농사를 포기하면 되는건데 그분은 농사를 포기하지 못하고 본인의 삶을 포기하였다.

지금 이땅에서는 농사를 시작하기도 포기하기도 쉽지 않다.

우리 부부는 농사꾼이 되겠다는 꿈을 접지 않았다. 농사를 짓겠다고 농촌으로 내려온 것이 시작이요, 시작은 절반의 성공이라고 했다. 우리집 흙마당에는 돌을 파내어 만든 작은 텃밭이 있다. 그곳에는 벽동마을 어느 집보다 먼저 열린 단호박과 토마토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그 녀석들이 언젠가 넓은 땅에서 또다시 자라나고 있을 날들이 올 것이라고 믿으며, 우리는 그 날을 준비하고 있고, 사천지역의 몇몇 선배 농민분들도 함께 고민하여 보자고 하셔서 다시 힘을 내어 본다.

농사를 드디어 시작했다는 일기를 적어 농정신문에 보내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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