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새 쪽박 없이 헌 쪽박을 깨지 마라

  • 입력 2018.12.01 14:48
  • 기자명 강광석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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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광석 <br>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현재 구체적인 직불제 개편방향과 개편 시기에 관해서는 정해진 바가 없다. 농업인단체·전문가 등의 폭넓은 의견수렴을 거쳐 개선방안을 마련해 나갈 것이다.” 지난 5월 8일 발표된 농식품부 보도자료 한 대목이다. 한국경제신문이 “정부는 올해 쌀 변동직불제 개편 방안 논의를 시작해 2022년부터 변경된 변동직불제를 시행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논의하고 있다”고 보도한 것에 대한 반박이었다.

지난 5월 직불제 개편 방향과 개편 시기가 정해지지 않았다는 정부와 민주당은 지난달 갑자기 개편 방향과 개편 시기까지 못 박은 농업소득의 보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박완주 농해수위 법안소위 위원장을 통해 발의했다. 농업인단체, 전문가 등과의 폭넓은 의견수렴 절차는 없었다. 어떤 농업인 단체가 변동직불제 폐지와 2020년 직불제 개편안 시행에 찬성하는가. 일정을 확정해 놓고 논의를 시작하자니 이런 억지가 없다.

추곡수매제는 국가비상식량 비축기능, 시장격리를 통한 가격안정 기능, 기준가격제시 기능 등을 수행했다. 이것을 나름 보완해서 2005년에 만든 것이 공공비축미제와 쌀소득보전 직불제였다. 쌀소득보전 직불제는 고정직불금과 변동직불금으로 구성돼 있다. 농가소득은 고정직불제로 보전하고, 급격한 쌀값 하락은 변동직불제로 보완하도록 양정제도를 개편한 것이다. 변동직불제 설계 당시 농민들이 요구한 것은 보전율 100% 유지와 고정직불금을 변동직불금 계산에서 제외하는 것이었다. 이 요구를 정부는 거부했다. 노무현정부 때 일이다.

변동직불제를 우리 정부와 WTO는 감축대상보조(AMS)로 본다. 변동직불제가 가격지지 기능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급한도가 정해져 있다. 1조4,900억원이다. 변동직불제를 정부는 눈엣가시로 본다. 울며겨자먹기로 쌀값을 정부가 그나마 유지하는 이유는 쌀값이 떨어지면 변동직불금이 과도하게 지급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변동직불제 폐지는 쌀값에 대해서 정부가 완전히 손을 떼겠다는 선언과 같다. 농업의 근본문제는 농산물가격안정을 통한 농민소득증대, 식량자급률 유지를 통한 국민식량공급체계 확립이다.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직불제 개편의 핵심은 변동직불금 폐지이며 쌀값안정 대책없는 변동직불제 폐지는 엄동설한에 옷 하나 없이 농민을 들판에 내 쫓는 것이다.

‘대농들이 직불금을 다 가져간다. 쌀농가에게만 편중 지원된다’는 것이 정부가 말하는 직불제 개편 필요성이다. 농민과 농민을 갈라치는 이른바 적진분열공작이다. 정부가 추진한 농업구조조정의 핵심은 ‘규모화’였다. 6ha 이상 7만호 육성, 전업농 육성을 부르짖더니 이제는 대농이 마치 모든 직불금을 수령해 소농이 피해를 보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이율배반이다. 중소농을 보호하기 위해 농민들은 ‘농민수당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농업의 공익적 기능을 담당하는 농민에게 소득수준과 경작면적에 상관없이 지급하면 중소농이 상대적으로 우대받는다. 또한 농민들은 일관되게 밭직불제와 논직불제를 통합한 농지직불제 도입을 주장했다. 2019년 채소가격안정제 예산을 삭감한 정부가 밭농업을 걱정하는 꼴이 우습다.

“농산물을 공공재로 인식해야 한다.” 이 말은 농정개혁 TF 성과발표 토론회 때 농식품부 핵심간부가 한 말이다. 농산물을 공공재로 인식하고 수급 전반에 정부의 역할을 키워야 한다. 농민들에겐 생산비를 보장하고 국민에겐 안정된 가격으로 농산물을 공급하는 제도를 ‘주요농산물 공공수급제’라 한다. 이것부터 도입하고 정부는 변동직불제 폐지를 논해야 한다.

‘새 쪽박 준비없이 헌 쪽박 깨지 마라’ 농민들의 지혜가 담긴 말이다. 추곡수매제가 폐지되고 농가소득은 지난 13년간 쪽박신세였다. 변동직불제 폐지를 논하기 전에 쌀값 보장의 근본대책부터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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