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지역, 여성농민이 행복한 삶터·평등한 일터로

  • 입력 2018.12.02 13:29
  • 기자명 오미란 젠더 & 공동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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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란 젠더 & 공동체 대표
오미란 젠더 & 공동체 대표

벌써 달력은 마지막 한 장을 남겨두고 있다. 한해가 저문다는 것은 언제나 공과 과를 생각하게 한다. 농업과 농민들에게도 공과 과가 많은 시간들이 지나고 있다. 2015년 유엔(UN)에서는 미래의 지속가능한 발전 목표(SDGs)에 농업 영역으로 식량, 기아해소, 기후변화, 지역 간 격차해소 등을 포함한 목표와 과제를 제시한 바 있다.

또한 유엔 여성지위위원회에서는 토지와 기술에 대한 여성의 접근성이 취약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생산수단의 소유, 정책에 대한 여성의 접근성을 높이는 것을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이러한 노력은 지난 11월 유엔 농민권리선언을 이끌어내 12월 최종 비준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나라는 농민권리선언 채택에 ‘찬성’이 아닌 ‘기권’을 행사했다(찬성 119, 반대 7, 기권 49). 농업정책에서 철학의 부재,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발전을 위한 방향의 부재는 이제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농업정책이 풀어야 할 가장 우선적인 숙제이다.

행복·평등에 대한 욕구, 국민의식의 성장 결과

농업정책에서 고려돼야 할 정책영역은 농업과 지역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즉 산업적(일터) 영역과 공간적(삶터) 영역이 동시에 고려돼야 한다. 이것을 고려하는데 있어서 가족농 중심의 우리 농업 구조는 여성의 농업 주체화가 필연적이라는 점이다.

오랫동안 농사일은 하지만 가시적인 농업인력에서 제외되어 온 것이 여성농민이다. 여성농민들은 이제 인내심이 바닥에 온 것 같다. 올해 들어 어느 때 보다 강력하게 여성농민을 위한 정책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일-가정 양립이라는 정책화두는 여성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핵심적 영역이기 때문에 농촌에서도 일-가정 양립을 위한 다양한 욕구들이 증가하고 있다. 가부장적인 현재의 농어촌 문화가 지속되는 한 농촌에 미래는 없다.

즉 농업에서 성평등이 농촌에서 여성 노동력의 지속적인 확보와 더불어 지역 소멸지수를 줄여 미래의 지속가능한 농업정책의 핵심적인 영역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여성농민들에 대한 정책 수요조사 결과(농림축산식품부에서 5년마다 1번씩 조사, 2013년 통계, 2018년 통계는 올해 조사 실시로 아직 발표 안 됨)에서 여성농민들은 농사일에서 가장 어려운 점으로 과중한 노동이라고 응답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5년이 지난 지금 이러한 문제가 얼마나 해결됐고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이 무엇이 있었을까?

여성농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정책은 농업과 여성 두 영역에서 모두 추진되고 정책 간 조정과 협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농업엔 여성이 없고, 여성엔 농업이 없다. 여성농민들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여성농민들의 농업에서 지위를 설정하는 핵심으로 농가경영체에 공동경영주로 등록하는 정책은 남편의 동의하에서 진행되다가 2018년부터 남편 동의 조항이 폐지됐다.

그러나 문제는 여성농민 스스로도 그런 정책이 있는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고, 심지어 농산물품질관리원 정책 담당자가 이것을 중요한 정책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 기막힌 것은 여성농민들의 일-가정 양립을 위한 대부분의 지원제도(농번기 공동급식, 행복바우처, 농번기 계절 탁아소, 여성농업인센터 등)는 지자체에 맡겨져 있는 실정이고, 이로 인해 지자체별로 정책이 천차만별을 보이고 있다(지원금, 지원대상 등). 여성친화형 농기계 50% 지원 정책은 정작 무엇이 여성친화적인 것인지 조차 불분명하다.

철학이 없는 농정, 방향이 없는 정책은 지역의 미래를 지속하고 농업의 미래 성장을 가능케 할 여성의 지역기피 현상을 가속화 할 뿐이다.

단언컨대 ‘여성이 없는 지역의 미래, 농업의 성장은 불가능 하다.’

농촌을 성평등한 지역으로, 농업을 성평등한 직업으로, 여성을 미래사회의 소중한 인력으로 육성하지 않으면 지역의 미래도, 농업의 지속가능성도 보장하기 어렵다. 여성농민을 위한 적극적인 정책마련이 필요한 이유다. 지난달 15일 전북 고창의 한 양파밭에서 여성농민들이 오전 작업을 마친 뒤 삼삼오오 모여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농촌을 성평등한 지역으로, 농업을 성평등한 직업으로, 여성을 미래사회의 소중한 인력으로 육성하지 않으면 지역의 미래도, 농업의 지속가능성도 보장하기 어렵다. 여성농민을 위한 적극적인 정책마련이 필요한 이유다. 지난달 15일 전북 고창의 한 양파밭에서 여성농민들이 오전 작업을 마친 뒤 삼삼오오 모여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농촌에서 포용적 성장이란? 소득, 복지, 생태 … 철학이 있는 농업정책이 핵심

기본에 충실하라. 이 말은 우리가 삶에서 어려운 일을 만날 때 종종 듣는 충고이다. 곱씹을수록 핵심적인 진리이다. 시간이 갈수록 쪼그라드는 농업지표들을 볼 때 마다, 공동화되는 지역을 직면할 때마다, 수십년이 지나도록 변치 않는 여성농민의 지위 현실에 직면할 때마다 무엇이 문제인지를 생각해본다.

농업과 농민을 둘러싸고 수많은 정책들과 논의들이 오고간다. 그러나 변화는 더디다. 정부도(중앙이든 지방이든), 농민도 이제는 철학이 있는 농업정책을 고민해야 한다. 모든 정책에는 철학이 녹아있다. 그 철학은 다름 아닌 미래 지속가능성과 당사자의 행복한 삶이라는 전략이 핵심 고리이다.

그런데 이 철학에 여성농민을 위해 하나 더 추가돼야 할 사항이 있다. 평등한 삶의 중요성이다. 노동에 대한 정당한 가치, 삶에 대한 존중을 기반으로 한 성평등한 철학이 반영돼야 한다.

여성들의 농업노동 참여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지만 그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는다. 출산 이후 노동을 위해서 출산도우미를 시행하지만 심지어 시·군 담당자가 정책을 홍보하지 않거나 대상자가 몇 안 되니 폐지하겠다는 발언을 하기도 하고, 예산집행이 0인 곳도 있다.

이래놓고 저출산 해소에 수십조원를 허비하고, 아이를 낳으면 1,000만원을 주겠다고 하니 이것이 도대체 정책인지 흥정인지 묻고 싶다. 농림축산식품부가 2017년부터 여성농민의 교육 참여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교육과정에 농사일을 돕도록 교육도우미 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나 정작 정책대상자인 여성농민은 물론, 지방정부에서는 정책 담당자가 그런 제도가 있는지 조차도 모르는 실정이다.

농업협동조합의 임원은 여전히 여성비율이 8%를 넘지 못하고 있고 여성농민들은 자신을 위한 정책이 무엇이 있는지, 어느 부서가 그 정책을 추진하는지 논의할 전담부서, 전담자조차도 없는 실정이다.

포용이 무엇인가? 성장이 무엇인가? 농업·농촌의 지속가능성이 무엇인가?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소득과 복지와 생태를 지키는 농업철학이 답이다. 소득은 농사규모만 늘린다고 가능한 것이 아니다. 소득을 높이는 방안에 농업의 가치를 나누고 그것을 인정하는 철학을 담아야 한다.

유럽이나 타 국가에서 직불제가 농업소득을 보전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원리이다. 복지도 마찬가지이다. 복지대상자와 복지참여자 모두의 복지가 반영돼야 한다.

복지는 시설이 아니라 편안하게 돌봄을 받고 살아갈 권리이다. 이는 생활단위로 시행돼야 한다. 특히 일반적인 복지는 보건복지부가 실행하고 농업에서의 복지는 생산적인 영역을 포함해야 한다.

예를 들면 중노동으로부터 노동경감을 강화하는 복지정책이 필요하다. 이러한 복지 영역이 농작업 편이장비, 농번기 공동급식, 농번기 계절탁아 등 많은 영역과 연계돼 있다. 생태를 지키는 노력은 생태농업, 토종씨앗 등의 농업정책 안에 녹아들어가야 한다.

농업의 지속가능한 성장, 지역의 지속가능성은 단편적인 것으로 부터가 아니라 근본적인 농업철학이 세세한 정책 속에 제대로 녹아있을 때 가능한 일일 것이다. 따라서 구체적인 정책영역에 중앙과 지방, 농업과 농촌, 성평등성 등이 녹아든 성인지적 정책이 핵심이다.

포용적 성장이 지역의 성장 없이 가능할까? 국가균형발전이 지역의 발전 없이 가능할까? 이러한 성장과정에 절반의 사람들이 배제된다면 그것이 온전한 성장일까?

좀 더 적극적이고 확장된 정책패러다임의 전환을 주문해 본다. 농민의 권리, 농촌의 성평등,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인력육성 등에 소득과 복지와 생태가 포괄되는 정책에 대한 적극적인 추진과 검토가 필요하다.

평등한 일터가 행복한 일터 만든다

2015년부터 일본에서는 기존의 영농, 복지, 돌봄 등을 포괄하던 여성농민 정책 영역을 농업정책의 중요한 대상으로 여성인력의 성장을 중심으로 재편했다. 특히 65세 미만의 젊은 여성들에 대한 투자, 20~30대 여성들을 농업인력으로 연계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중앙정부는 전담부서를 설치하고, 국가는 남녀공동참획본부를 두어 이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즉 후계인력으로서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면 농업의 미래를 이끌어 나갈 수 없다는 정책 결론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들은 소득과 복지, 생태적인 지속가능성을 위해 소득은 철저히 농업의 12차 산업화 영역으로, 복지는 복지관련 부서의 전담업무로, 생태적인 영역은 직불제 등 농업의 공익성과 생산관리 과정으로 구분한다.

각 지자체 마다 ‘청년이 돌아오는 00’이라고 정책 슬로건을 내건다. 그럴 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여성이 살고 싶은 00’을 만들면 청년도 살 수 있다고. 그만큼 정책 철학에 성평등의 중요성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성평등 지수가 높은 북유럽은 여성들의 90%가 임금을 받는 일을 하고, 1인당 국민소득은 우리보다 2~5배 높은 수준이고, 출산율은 1.8명 정도, 국민행복지수 역시 15위 이내로 높게 나타난다(한국은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 50%, 남녀임금격차 33.7%-농업은 거의 40% 이상임, 합계출산율 0.98명).

최근 농민수당 논란을 보면서 농민=농가로 대표되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인식은 여성농민을 여전히 농업의 주체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아직 평등한 삶을 위한 여성농민의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든다. 여성과 청년(혹은 다른 가족)은 딸린 식구 취급되는 이 불합리한 구조가 극복되지 않는 한 한국 농업의 미래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전국 대부분 지자체에 다문화가족 지원센터는 있지만 여성농업인센터는 15년 동안 40개에 불과한 대한민국에 여성농민은 없다. 농사일도, 집안일도 여전히 여성이 전담해야 하는 대한민국에 여성의 행복은 없다.

행복하게 일하고, 평등하게 대접받는 여성농민의 삶은 농민의 권리, 농업에 대한 공익적 가치, 삶의 과정에 대한 기여도(성별 불평등 해소)와 참여를 제대로 평가받는 평등한 일터가 실현돼야 한다.

성평등 농업정책 가시화·유엔 농민권리선언 찬성으로 12월 대미가 마무리되길

농촌을 성평등한 지역으로, 농업을 성평등한 직업으로, 여성을 미래사회의 소중한 인력으로 육성하지 않는다면 지역의 미래도, 농업의 지속가능성도 보장하기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이다. 필요성만 인정해서는 아무것도 변화하지 않는다. 구체적인 실천과 인식개선을 위한 적극적 정책의 추진이 필요하다. 구호만 요란한 정책은 더 이상 국민을 감동시킬 수 없다.

농업·농촌, 여성농민에게 포용적 성장이 뭘 의미할까? 소득을 높이고, 형평성 있는 복지정책을 강화하고, 생태적인 환경을 유지하는 공익성에 대한 가치와 보상체계가 제대로 주어진다면 그것이 포용적 성장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최근 높아지는 여성농민들의 정책요구에 귀 기울이는 농업정책을 위해서 타부서와 협력과 조정, 선택과 집중을 통한 성평등한 일터를 만드는 것이 행복한 농민, 농업을 자부심 있는 직업으로 만들어 농업과 농촌이 지속가능할 수 있음을 다시금 새겨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성농민 전담부서 설치를 위한 적극적인 정책추진, 12월 유엔총회 농민권리선언 비준에 적극 동참하고 실천하는 대한민국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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