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한라산 테우리② 빈 마구간에 망아지 들여오다

  • 입력 2018.12.02 13:25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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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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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래리는 한라산의 산간 마을이라 밭농사의 소출이 시원찮으면 주민들은 끼니걱정을 달고 살아야 했다. 하지만 그 오지마을에서도 비할 바 없이 풍족한 것이 하나는 있었다. 사방에 지천으로 널린 땔감이었다. 사람들은 산에서 나무를 해다가 수십 리 떨어진 오일장 터로 가져가서 일용할 양식이며 생활용품들을 바꿔 왔다.

물론 그 시절엔 육지의 산간마을 사람들도 땔나무를 장에 내다 팔아서 먹을거리며 고무신 따위를 구했으나, 고작 지게 등짐으로 운반을 했기 때문에, 한 짐 지고 가봤자 막걸리 한 사발 들이켜고 나면 변변하게 구해올 수 있는 물품이 없었다.

그런데 한라산 중턱의 촌락 주민들은 달랐다. 집집마다 말을 키우고 있는 탓으로, 마차 가득 땔감을 싣고 장 나들이를 했으니, 파장 뒤에 챙겨오는 장바구니가 상대적으로 넉넉했다.

하지만 교래리 사람들은, 사립만 나가면 나무가 지천인데도, 정작 땔감으로는 나무보다는 다른 연료를 구해다 썼다. 왕년의 말 테우리 송종오 씨의 얘기를 들어보자.

“학교 파하고 돌아와서 점심 숟가락 놓자마자, 가마니 들고 산에 들어가서 마른 똥을 주워 와야 했어요. 무슨 똥이냐고요? 허허, 말똥이에요, 말똥. 아궁이에 때면 화력이 장작보다 훨씬 좋아요. 때고 나서 남은 재는 퍼서 뫄 뒀다가, 봄이 되면 지슬 밭에 거름으로도 주고….”

‘지슬’은 감자의 제주 말이다. 송종오 씨의 증언이 아니더라도, 마른 말똥이 화력이 좋다는 얘긴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내 경험에 비춰 봐도 그렇다. 어린 시절 마을 뒷산에 불이 나서 주민들이 총 출동했다. 간신히 불을 다 껐다 싶었는데, 사흘 뒤에 바람이 세게 불자, 다시 잔불이 일어나서 또 다시 비상출동을 해야 했다. 사흘 동안이나 불씨를 간직하고 있다가 다시 타오르게 만든 문제의 ‘범인’은 마른 쇠똥이었다.

그 산간마을에서는 말이 곧 재산이었다. 부잣집의 경우 아예 테우리(목동)를 따로 고용해서 많게는 300여 마리의 말을 기르기도 했지만, 반대로 단 한 마리의 말도 들여올 형편이 못 되는 빈한한 집도 있었다. 하지만 그 마을에 살려면 말을 기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별 수 있나요? 병작을 해야지요. 하지만 너무 어린놈은 못 가져옵니다. 우리가 ‘2수매’라고 부르는 두 살짜리를 갖다가 기르지요. 첫 번으로 낳은 새끼는 가져온 사람이 갖고, 두 번째 부터는 쥔하고 꼭 같이 반띠기로 갈르고…그렇게 해서 구르마 끌 말을 장만했지요.”

본시 병작(竝作)은 소작인이 땅주인과 수확물을 똑같이 나누어 가지는 방식으로 짓는 농사를 일컫는 말이다. 부잣집에 찾아가서는, 태어난 지 2년쯤 되는 암말 한 마리를 분양 받아 와서 열심히 먹여 기른다. 고놈이 어른이 되어서 새끼를 낳으면 첫 번째 낳은 새끼는 기른 사람이 차지하고 두 번째 새끼부터는 주인과 ‘반띠기(반반씩 나누는 것)’ 한다는 얘기다. 수확에 대한 분배 방식이 농사에서의 병작과 같다 해서 그렇게 불렀던 모양이다.

육지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이 소를 그런 방식으로 장만하기도 했는데, 지역에 따라서는 병작 말고도 ‘그루사육’이라 부르기도 했다. 내 고향 마을에서는 ‘반엣소’라고 했다. 힘써 길러봤자 어미 소는 주인에게 되돌려주고 새끼만 차지하니까, 사육에 들인 노고의 절반만을 기른 사람이 인정받는다는 의미에서 그리 불렀을 터.

자, 이제 그 가난한 집에서 새끼 말 한 마리를 얻어 길렀었으니, 장차 밀밭이나 보리밭도 볼리고(밟히고) 마차도 끌게 하려면 우선 길을 들여야 한다. 거친 야생마를 길들이려다 낭패를 당하는 모습은 존 웨인이 나오는 서부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제주 말이라고 해서 태생부터 고분고분할 리가 없다. 그래서 노련한 전문가에게 찾아가서 품삯을 따로 주고 조련을 시켜야 한다.

“우리 집 말이 시방 세 살 하고도 넉 달이 지났으니, 이제 요놈을 부려먹어야 하겠는데….”

가난한 농부가 어렵게 얻어 기른 말을 끌고 찾아간 사람은, 나이가 지긋한 퇴역 테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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