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안해서 우리가 한다” 끝장토론 나선 청년농민들

스스로 토론회 열고 청년농민 대상 농정 개혁 방향 제시
“농촌소멸에 위기의식 갖고 있는지 의문 … 시각 바꿔야”

  • 입력 2018.12.01 17:35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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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지난달 27일 서울 안국동 상생상회에서 열린 ‘청년농업인이 진단하는 청년사업농 지원사업 끝장토론’의 참가자들이 토론회를 기획한 청년농민 박푸른들(충남 홍성)·이종혁(경남 산청), 헬로파머 이아롬 기자의 기획 의도 소개를 듣고 있다.
지난달 27일 서울 안국동 상생상회에서 열린 ‘청년농업인이 진단하는 청년사업농 지원사업 끝장토론’의 참가자들이 토론회를 기획한 청년농민 박푸른들(충남 홍성)·이종혁(경남 산청), 헬로파머 이아롬 기자의 기획 의도 소개를 듣고 있다.

 

“당사자의 말하기가 필요한 시점”

얼마 전 한 국회의원이 이번 정부 청년농민 육성사업인 ‘청년창업농 지원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영농정착과 생활비에 쓰라고 준 돈으로 일부 청년농민들이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고, 외제차를 수리했다는 것이었다.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는 황급히 백화점, 면세점 등을 카드사용처에서 제외하는 것으로 수습했다.

사실 청년들에게 바우처 카드를 처음 건넬 때 유흥업소 등 제한 업종은 이미 명시돼 있었다. 이 사업에서 문제삼아야 할 본질은 ‘규정상 써도 되는 곳에 돈을 쓴’ 일탈 행위가 아니라는 것을 당사자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지만, 어찌됐건, 언론은 청년농민들을 싸잡아 ‘싹수가 노란 사람들’로 만드는데 집중했다. 청년들은 지원사업 시행 이후 더 나은 정책을 위한 심도있는 소통은커녕 어처구니없는 소동 때문에 사업의 본질적 문제가 묻혀가는 것을 경계했다.

청년농민 박푸른들(충남 홍성)·이종혁(경남 산청), 그리고 <헬로파머>의 이아롬 기자는 한 때 각기 다른 농민단체에서 활동하며 농업에 대해 고민했던 청년농민운동가였다. 각자의 고향과 현장에서 농사짓고 글 쓰던 이들은 이번 사태를 접한 뒤, ‘청년농민’들이 직접 나서서 목소리를 내고 당사자가 원하는 정책의 방향을 제시해야겠다는 공감대를 형성한다. 지난 가을, 세 사람은 청년농민들이 주체가 되는 토론회를 열기로 결심하고, 올해 지원 대상으로 선정된 청년과 그렇지 못한 청년농민들 중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생각하는 청년들을 한데 모아 ‘장’을 여는 준비에 들어갔다.

평소 쓰던 기사를 토대로 발제를 권유 받은 나는 기획에도 조금씩 참여하며 이들의 ‘안간힘’을 지켜볼 수 있었다. 기획팀은 설문을 통해 사업에 대한 의견들을 수집하고, 3차에 걸친 실시간 카카오톡 토론회를 열어 최대한 많은 생각과 제안을 모았다. 본 토론회에서 모든 참여자가 공감하고 참여할 수 있는 주제를 제시하기 위한 준비였다. 그렇게 지난달 27일, 30여명의 청년이 모인 가운데 ‘아무도 안 해서 우리가 한다, 청년농업인이 진단하는 청년창업농 지원사업 끝장토론’이 서울 안국동 상생상회에서 열렸다.

푸드시스템 연구자 허남혁 박사가 국내외 청년농 지원사업 동향을 발제했고, 나는 <한국농정>의 기사내용을 바탕으로 프랑스의 사례를 보충했다(사실 이 내용들은, 응당 사업주체인 농식품부나 농정원에서 나와 설명했어야 하는 부분이었다. 공교롭게도 농정원은 이 토론회의 공지가 올라간 뒤 따로 지역순회간담회를 열었다). 이어 청년농민 이하연(사업선정자), 최지웅(미선정자)씨가 각자의 입장에서 사업에 대한 생각을 풀어놓고, 마지막으로 이아롬 기자가 주제를 던지는 것으로 끝장토론의 시작을 알렸다.

 

‘일을 하려면 제대로 해라’

청년농민 참석자들은 지원사업 선정자·미선정자 두 그룹으로 나눠 각각 1차 토론을 진행했다. 선정자 그룹의 1차 토론 주제는 ‘사업 운영이 내게 주는 불편함’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선정자들은 기존의 농정과 열악한 농촌 환경이 사업내용을 전혀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어 ‘준비 없이 시작된 느낌이 매우 강하다’고 평했다. 특히 가장 큰 문제는 토지에 대한 접근성이었다. 그밖에도 정책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다양하게 지적됐다. 선정자 그룹은 이 내용을 한 문장으로 정리해달라는 제안에 ‘일을 하려면 제대로 해라’는 문구로 답했다. ‘독(농촌현실)을 고치고 물(정책)을 부어라’도 득표가 만만찮았다. 근거는 다음과 같았다(참가자들의 발언은 모두 익명으로 담았다).

 

“이 사업은 월 100만원 주는 게 전부가 아니다. 농지 취득이나 교육이 함께 들어있는데 유난히 100만원 주는 것·쓰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다. 공무원도 그것 말고는 딱히 관심이 없다. 왜냐면 책임소재와 관련 있는 게 돈뿐이기 때문. 한국에선 특별한 계층에 현금을 지급한다는 것에 부정적인 인식이 많아서 (여론도) 그쪽에 집중하는데, 사실 생활비 지원은 일부고 핵심은 청년농의 정착을 지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돈을 받음으로써 공무원들은 시혜적 태도를 가진다. 그러느니 굳이 돈 말고 농촌 인프라를 정비하든가 공무원 체계를 바꿨으면 좋겠다.”

 

“땅 가진 어르신들이 정식 임차계약을 하지 않으려 한다. 계약을 써주면 자기가 받을 직불금이 넘어가니까. 사실 직불금은 1,000평 해봐야 1년에 몇십만원 수준인데, 더 큰 문제는 세금이다. 8년 자경을 해야 양도소득세가 0이 되는데 임대하는 순간 제동이 걸린다. 계약하러 가면 자녀들이 와서 안 된다고 한다. ‘농사만 지어라, 소득은 너희가 가지니 상관없지 않느냐.’ 하지만 그러면 우리는 농민 신분을 얻을 수 없다.”

 

“불법 임차가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다. 두 번 다 그런 식으로 땅을 구했다. 세 번째엔 하지 않겠다고 했다. 농지은행에서 주는 땅이 맘에 안 들지만 경영체 등록이 돼야 사업을 받을 수 있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사업은 좋은데 유관기관이 너무 준비가 안됐다. 1년동안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농업경영체 자격, 농민 자격을 얻는 과정도 이 사업에서 맡아줘야만 한다.”

 

농지은행에라도 땅이 있으면 그나마 나은 경우다. 여기선 아파트 들어선다고 땅값이 3배 이상 뛰었고 농지은행은 아예 농지가 없어 다른 군으로 가라고 한다. 여기서 1,000평이면 벌써 3억이다. 3억을 2%에 빌리면 4년차부터는 자기 생활비 제외 4,000만원씩 7년 동안 갚아야하는데 그게 가능한가. 이 거치기간으로 지속적 영농이 가능한지 의심이 된다.”

 

“농지 구해서 시설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지원금 매달 100만원에서 분야별 지출할 수 있는 항목을 보면 황당하다. 지원금 사용처는 도시의 소비 성향에 따라 짜였다. 우리는 우리가 먹는 거 줄여서 농사 할 수 있다. 그런데 농지구입은 50% 이상 쓰면 안 된다고 하고, 트랙터 임대는 25% 이상 할 수 없다고 한다. 현장성이 없는 사람들이 지침을 만든 거다. 정말 소비 중심의 사업을 진행하는 건데 농촌에 살지 않는 사람의 기준에서 만든 정책이다.”

 

“교육의 질도 문제다. 보편적으로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온라인 컨텐츠화가 필요하다. 교육이 각 지역별로 이뤄지면 강사에 따라 편차가 있을 수밖에 없다. 선정된 강사진으로 구성된 온라인 컨텐츠는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다.”

 

“교육시간과 구성도 행정 편의적이다. 이미 수백시간 교육을 받고 또 받았는데, 농사에 전념해서 살아보려는 사람에게 또 160시간이나 쓰라고 한다. 선정 과정에서 이미 교육을 얼마나 받았는가를 본다. 그래놓고 교육을 또 받으라고 하는 건 불합리하다. 이전 교육을 인정해 줘야하고, 여기서는 이 사업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교육 정도면 충분하다.”

 

지원사업에 선정된 그룹은 농업의 많은 문제점을 그대로 둔 채 성급하게 사업을 시행한 것이 잘못됐다고 입을 모았다.
지원사업에 선정된 그룹은 "우리 농업의 많은 문제점을 그대로 둔 채 성급하게 사업을 시행한 것부터가 잘못됐다"고 입을 모았다.

 

 

“기준은 일관, 과정은 투명, 대상은 다양해야”

미선정자 그룹은 지원 대상 선발과정과 그 준비의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지원사업에 도전했다가 떨어진 이들은 공통적으로 ‘탈락 이유’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었으며 정보에 목말라 있었다. 그저 새어나온 이야기들과 합격자들의 조건을 종합해 ‘정부가 원하는 청년농민상’을 추측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들은 이 농사도, 저 사업도 농업이라고 부를 수 있는 ‘다양성’을 인정받고 싶어 했다.

 

“신청기준으로 영농 기간이나 나이, 경력, 영농계획서의 적합성 등이 있었다. 이런 구성에 동의하나? 나의 농업 형태는 스마트팜 등으로 발전할 여지가 없어 대상에서 사실상 배제가 되는 상황이다. 정부가 농업을 산업으로서 육성하고자 하는 가운데 정말 농사를 짓고 싶어 하는 청년들이 배제되는 경우가 생기는 것 같아 안타깝다. 농업엔 다양한 방향이 있는데 그러한 다양성을 무시하는 경향이 존재한다.”

 

“귀농 이전에 소규모로 도시농업을 했고, 이를 토대로 계획서를 썼다. 면접에 갔는데 옆 사람이 시설수경재배 이런 이야기를 하길래 ‘아 나는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초기 진입하는 청년농민을 위한 지원사업이어야 하는데, 제목이 ‘창업농’ 지원사업이다 보니까, ‘창업투자’의 측면이 지나치게 강조된다. 그래서 굉장한 오해의 소지가 있다. 공무원, 심사위원들도 혼란스러워한다. 농업 자체를 ‘사업’으로 보는 시선이 있다.”

 

“두 번 지원했다. 어떻게 하면 붙을 수 있을까에 대해 조언도 구하고, 지침서도 꼼꼼히 봤다. 기반 없는 사람들 우선이라기에 희망을 갖고 준비를 했다. 수치화·계량화할 수 있는 부분도 했고. 일단 열심히 써서 1차를 붙었는데, 결과적으로는 기반이 있고 배경이 있는 친구들이 다 뽑혔더라. 농업경영체 운영 여부에 달려 있는 느낌이 강했다. 결국 2차 심사에서 떨어졌는데 나중에 듣고 보니 면접은 딱히 의미가 없다고 하더라. 추가 모집에선 정말 기반이 없는 사람들을 뽑는다고 해 또 열심히 준비했는데 서류도 떨어졌다. 담당 공무원·평가기관은 왜 떨어졌는지 알려주지 않아서 답답했다. 실패 이후 다음엔 어떻게 준비해야 한다는 도움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런 정보가 없어서 많이 답답했다.”

 

“한농대 나온 오빠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빠가 경영체 준비를 해줬는데도 안됐다. 임업 쪽은 안 된다고 들은 것 같기도 하다. 그들이 원하는 농업의 이미지가 있는 것 같았다. 농업이라기보다는 사업마인드의 이야기가 많았다. 불투명한 과정이 문제다. 농사와 사업을 분리시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사업에 선정되지 못한 청년농민들은 합리적인 선정 기준 제시와 과정의 투명성, 피드백 제공 등을 원했다.
사업에 선정되지 못한 청년농민들은 합리적인 선정 기준 제시와 과정의 투명성, 피드백 제공 등을 원했다.

 

 

농촌청년을 보는 시각부터 바꿨으면

청년농민들은 마지막으로 이 사업에 관해 중앙·지방정부가 해야 할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두 그룹은 공통적으로 농업·농촌과 청년을 바라보는 정부의 시각의 변화를 주문했다.

이미 지원을 받고 있는 청년들은 정부의 ‘농촌소멸에 대한 위기의식’ 부족이 문제의 근원이 됐다고 파악했다. 내실 있는 정책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결국 충분한 고민을 할 수 있는 규모 있는 전담조직이 필요하고, 행정편의주의를 줄이는 한편 정책결정구조에 청년농민들을 적극 참여시켜야 한다고 분석했다. 또 스스로는 청년농민들끼리 외부 간섭이 없는 울타리를 형성하고 조직화된 목소리를 내 정책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힘을 가질 필요성을 느꼈다.

한편 지원사업에서 떨어진 청년들은 ‘창업’에만 너무 집중하고 있는 태도가 문제의 핵심이라는 공감대를 이뤘다. 성공만을 강조하다보니 결국 농업과 농촌살이의 본질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사실상 ‘농촌 청년의 가치를 인정해 지급하는 직불금’이 핵심인 사업이지만 동시에 창농만 추구하다 보니, 이들은 정책의 목표가 단기적 창업농 육성인지 청년인구의 농촌 유입인지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청년들은 다양한 형태로 귀농할 수 있으며 그 모습들을 존중받고 싶다는 의견이 잇따랐다.

모든 토론이 끝난 뒤, 참가자들은 앞으로 청년농민으로써 지역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이야기했다. ‘공부하겠다’, ‘살아남겠다’, ‘고민하겠다’는 다짐들과 함께 앞으로도 언제든 다시 모여 토론하고 힘을 합칠 뜻을 내비치며 각자의 지역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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