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한라산 테우리① 「테우리」를 아십니까

  • 입력 2018.11.25 20:47
  • 수정 2018.11.25 21:52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상락 소설가
이상락 소설가

옛 주소로 제주도 북제주군 조천읍 교래리.

한라산의 북동쪽에 위치한 이 산간마을 일대는 광활한 초원이 펼쳐져 있어서 일찍부터 가축의 방목지로 이용되어 왔다.

이 마을에 있는 대규모 분화구 터인 산굼부리는 신혼여행이나 수학여행 차 제주에 온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필수 관광코스로 각광을 받아 왔다. 마을 여기저기에 자리를 잡고 있는 승마장들은 모처럼 말을 타보려는 관광객들로 북적거린다.

물론 그 말들은 울타리가 둘러쳐진 목장에 갇혀서 사료를 먹으며 사육되고 밤이면 축사로 들어가 잠을 잔다. 그렇다면 오륙십 년 전에, 그 산간마을 사람들은 말들을 어떻게 길렀을까? 이 마을의 터줏대감 격인 송종오 할아버지(1941년생)의 얘기를 들어보자.

“축사도 뭣도 없이 말을 그냥 한라산에 올렸다가, 밭 볼릴 시기에만 몰고 내려와서 볼리고 또 산에 올리고 했지요. 지금은 사료로 말을 키우지만 옛날에는 순 야초만 먹고 살았어요.”

목장이니 축사니 하는 것들이 애당초 없었고, 말들을 한라산의 초원으로 내몰았다가 밭 볼릴 시기에만 끌고 내려왔다는 얘기다. ‘밭을 볼린다’라는 제주 토속어를 굳이 어법에 맞게 바꾸자면 ‘밭을 밟힌다’가 될 터인데, 이른 봄에 보리밭(혹은 밀밭)을 밟아줌으로써 뿌리가 제대로 내리게 하는 그 작업을 말한다.

봄철의 보리밭 밟기는 제주 뿐 아니라 타 지역에서도 했다. 그럼에도 ‘밭을 밟는다’가 아니라 ‘밟힌다(볼린다)’라고 사역(使役)의 형태로 표현한 것은, 육지에서와는 달리 보리밭이나 밀밭을 밟는 주체가 사람이 아니라 말이기 때문이다. 봄철에 한라산에 방목하던 말들을 몰고 내려와서 보리밭을 ‘밟게 한다’는 뜻이다.

제주도의 밭은 그 토양이 화산재가 쌓여 형성된 화산회토(火山灰土)여서 세게, 자근자근, 잘 밟지 않으면 작물의 뿌리가 땅속의 공간에 떠서 이내 말라죽는다. 그래서 한라산에 방목했던 말들을 떼로 몰고 내려와서, 보리밭을 밟게 하는 작업을 연례행사로 했던 것이다.

바다 건너 떠나버린 첫사랑이 그리워 / 말 테우리는 깊은 계곡을 추억 찾아 헤맨다 / 정만 주고 떠나버린 말 테우리 첫사랑…

박춘석이 곡을 짓고 김지애가 불렀던 ‘말 테우리’라는 유행가다. 사랑하는 여인을 바다 건너 육지로 떠나보내고서 혼자 가슴 태우는 제주도 총각의 애절한 마음을 읊은 노랜데, 노랫말에 등장하는 주인공을 제주도 총각으로 단정한 이유는, ‘테우리’라는 말 자체가, 가축을 산으로 몰고 다니면서 보살폈던 ‘목동’을 지칭하는, 순수한 제주도 사투리이기 때문이다.

제주 출신 소설가인 현기영의 작품 중에도 ‘마지막 테우리’라는 단편소설이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 노인은 소를 모는, 소 테우리다.

그렇다면 반세기쯤 전에, 한라산 산간 마을 사람들은 어떻게 말을 키웠고, 또 무슨 목적으로 사육을 했을까?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말을 도맡아서 몰고 다녔다는 테우리들의 생활은 어떠했을까?

“조천장 함덕장이 삼십리 길인디 옛날에는 걸어가서 식량 같은 걸 받아오고 물물 교환을 해서 짐으로 지엉 댕겨마심. 그런데 짐으로 지엉댐김 뻐치기 때문에 마차를 끗엉, 갈 때 실렁가고, 올 때 실렁가고, 옛날에는 구르마가 지금 차 대용품이라마심. 내려갈 때는 뭐 걷다가 다리 아프면 그냥 구르마에 올라타서 그냥 몰만 딱 운전만 하면…”

어렵다, 제주 사투리.

교래리에서 조천장과 함덕장까지는 삼십 리 길이어서, 물건을 지게에 지고 다니면 너무 고되기(뻐치기) 때문에 집집마다 마차가 있어야 했다, 그래서 말을 길렀다…왕년의 말 테우리 송종오 할아버지의 얘기가 그런 뜻이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