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희망 만드는 농촌협동조합⑨] 강원 홍천 용오름맥주마을협동조합

‘홉’ 부활로 맥주의 고장 꿈꾼다
청년귀촌가 뚝심이 만든 변화의 바람 … 홉 계약재배 통한 수제맥주 생산이 관건

  • 입력 2018.11.23 15:45
  • 기자명 박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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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박경철 기자]

2012년 협동조합 기본법 시행 이후 협동조합은 폭발적 증가세를 보였지만 현재 절반 가까이 사업을 하지 않고 있다. 그만큼 운영이 어려워서다. 매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협동조합의 운영원리를 지키며 지역에서 희망을 만드는 협동조합과 사회적협동조합을 찾아 농업·농촌·농민의 현주소를 조명하고자 한다.

20년 전 홍천에서 재배되던 홉을 되살려 맥주마을로의 변화의 가능성을 만든 정운희(35) 용오름맥주마을협동조합 대표. 정 대표가 지난 여름 시험재배 중인 홉 밭을 둘러보고 있다. 용오름맥주마을협동조합 제공
20년 전 홍천에서 재배되던 홉을 되살려 맥주마을로의 변화의 가능성을 만든 정운희(35) 용오름맥주마을협동조합 대표. 정 대표가 지난 여름 시험재배 중인 홉 밭을 둘러보고 있다. 용오름맥주마을협동조합 제공

강원도에 명맥이 끊긴 ‘홉’을 되살려 맥주마을로 거듭난 마을이 있다. 홍천군 서석면 검산리 용오름마을이다. 홍천강 상류에 자리한 이 마을은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는 계곡과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한다. 마을에서도 이를 활용한 휴양마을을 만들었지만 여름철을 제외하곤 한산한 편이었다.

이런 가운데 지난 2014년 한 청년이 귀촌하며 좌충우돌을 겪는 과정에서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고 한다. 용오름맥주마을협동조합의 대표 정운희(35)씨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 19일 정 대표를 만나 용오름마을의 변화를 확인했다.

세계 40개국을 돌 정도로 여행이 좋았다는 정 대표. 그는 여행지에서 관광지보단 농촌마을에서 주민들과 어울리는 게 더 즐거웠다고 한다. 여행보다는 이사를 다녔다고 표현했을 정도다. 현지에서 사업도 해 좋은 결과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여행만 하고 살 순 없는 노릇이었다. 정 대표는 결국 우리나라 농촌에 터를 잡기로 마음을 먹고, 용오름마을에 왔다.

처음엔 게스트하우스와 캠핑장을 짓고 주특기인 여행을 살려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사업을 하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내 고민에 빠졌다. 이런저런 민원이 빗발친 까닭이다. 이른바 텃새였다. 이에 정 대표는 ‘내’가 아닌 ‘우리’, ‘마을’이 잘되는 방법을 고민했다고 한다. 장고 속에 찾아낸 건 ‘홉’이다.

수제맥주시장의 성장에 주목한 그는 주원료가 되는 홉을 재배하면 마을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요즘말로 홉에 꽂힌 그는 발품을 팔며 논문까지 팠다고 한다. 결국 홍천이 20년 전까진 국내 홉 주산지라는 것을 알게 됐다. 홍천의 토질이나 기후가 홉 재배에 안성맞춤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북의 홉도 우수한 품질로 각광받고 있다.

당시 홍천에서 재배한 홉은 이름만 들으면 알 수 있는 맥주회사에서 모두 매입했지만, 농산물 수입 개방에 따라 비용절감이라는 이름으로 수입홉을 들여오며 일순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우선은 홉 종자부터 찾아야 했다. 다행히도 마을에서 농업전문가로 소문난 연충흠씨가 어렸을 적 기억을 더듬어 자신의 밭 인근 산비탈에서 20여년의 세월을 견뎌낸 3뿌리의 홉을 발견했다. 이 소식을 전달받은 정 대표는 쾌재를 불렀다고 한다. 게다가 1년에 3배까지 번식할 수 있다는 연씨의 얘기에 홍천 홉 재배의 서광이 비추는 듯 했다.

그러면서 용오름맥주마을협동조합을 설립하고 본격적 행보에 나섰다. 하지만 순탄치 않았다. 일일이 주민들을 만나며 참여 의사를 물었지만 대부분 거절했다. 판로 확보 등이 불투명해서다.

우선 정 대표는 연씨와 함께 지난 2015년 100평 규모의 밭에서 시험재배에 돌입했다. 3주에서 시작한 홉 재배는 올해엔 300평 규모 100주로 늘었다. 내년이면 300주, 이듬해엔 1,000주가 예상된다는 게 정 대표의 얘기다.

정 대표는 본격적인 홉 재배를 위한 시험재배와 더불어 외주업체를 통해 지역명이 들어간 수제맥주 생산·유통, 홉을 이용한 차와 샴푸, 마스크팩 등 상품 개발과 판로 개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여곡절 속에서도 일정 부분 성과는 있었다. 2014년부터 지역 관광의 문제를 주민 스스로 해결한다는 목표로 출발한 문화체육관광부의 관광두레 사업에 선정됐고, 내년부턴 홍천군에서 홉 시험재배를 위한 예산도 책정했다고 한다.

정 대표는 “매해 조금씩 성과가 생기다 보니 긍정적으로 보는 분들이 많아졌다. 한두 분씩 홉 농사를 짓고 싶다는 분들이 찾아오고 있다”며 “마을 203가구 중 대다수가 농가인 상황에서 홉 계약재배를 통해 여기서 생산한 홉으로 수제맥주를 생산하면 마을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용오름마을이 지역에서 재배한 홉으로 제대로 된 수제맥주를 만들어 진짜 맥주마을이 될 수 있을지 아직은 미지수다. 대규모 홉 재배 등 넘어야 할 산들이 남아 있어서다. 하지만 갈수록 어려워져만 가는 농촌에서 청년귀촌가가 고군분투하며 변화의 바람을 만들어낸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마을에서 뿌리를 내리겠다고 다짐했다는 정 대표의 일성이 용오름마을의 앞날을 더욱 기대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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