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마을의 품격2 - 중학교 2학년
[농민칼럼] 마을의 품격2 - 중학교 2학년
  • 최용혁(충남 서천)
  • 승인 2018.11.18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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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중2가 많이 크고 예뻐지는 동안 마을과 지역은 무엇을 했을까?”
최용혁(충남 서천)
최용혁(충남 서천)

원래 변변한 것이 별로 없긴 하지만, 알곡을 다 거두어들인 들판에는 이제 변변한 것이라고는 티끌만큼도 남아 있지 않다. 가을 늦바람이 심술 맞게 불어 텃밭 모퉁이에 쌓아 놓은 깻대가 마을길을 이리저리 날려 다니면 세상 모든 것이 하찮아 보이기까지 한다. 모든 것이 하찮은 와중에 우리 마을에서 가장 하찮은 것은 무엇일까? 우리집 중학교 2학년 학생보다 더 하찮은 것은 우리 마을에 없는 것 같다. 북한군도 무서워 못 쳐들어온다는 그 중2? 맞다. 그 중학교 2학년.

아직 예쁘다고 하자니 이제 막 어미 닭 흉내 내는 중병아리 마냥 그 시건방을 두 눈 뜨고 봐 주기가 어렵고, 이제 다 컸고 하자니 어디 써 먹을 만한 데가 마땅치 않다. 하루 종일 방방 뛰고 노래 부르고 온 몸과 마음을 우주 끝까지 뻗어 보지만 아무데도 쉽게 접속되지는 않는다. 뭐든 될 것 같다는 허영과 아이돌 그룹이라는 허상만이 이 하찮은 존재를 잠깐씩 위로해 준다.

중학교 2학년에게 마을과 지역이라는 세상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학교에서 마을로 돌아온 중2는 노래 부를 때와는 사뭇 다르게 “아안녀엉하세요”의 톤으로 인사한다. 어른들 역시 적당히 인자한 웃음으로 “많이 컸구나”, “예뻐졌네” 정도의 인사를 나누지만, 많이 크고 예뻐지는 동안 마을과 지역은 무엇을 했을까? 학교로 가고 집으로 오는 버스 시간표, 목줄이 풀려 동네 회관 앞을 어슬렁거리는 도사견, 붕어철이면 마을 천변에 진을 치는 낯선 낚시꾼들을 이 하찮은 존재와 엮어서 생각하는 사람들은 흔하지 않다. 아프리카 속담에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도 아이들은 공동체의 울타리 안에서 많은 양분을 먹고 컸다. 하지만, 지금은 마을이라는 공동체에서 가장 이질적인 존재가 되었다. 학교라는 전문가 그룹에 모든 것을 떠맡기고 나서부터는 서로 해치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예의만 남고 말았나 보다. 어쩌면 마을은 구성원 다수의 이익만 최대 가치로 인정하는 닫힌 공동체가 되어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가장 희소해서 가장 하찮고 무시당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는 비일비재한 일이지 않은가!

그렇게 고등학교 졸업까지 몇 년을 더 자란 아이들은 지역에서 대부분 떠난다. 서천군 청소년 상담센터의 조사에 의하면 고등학교 졸업한 청소년의 90% 이상이 그 해 바로 지역을 떠나 생활한다고 한다. 물론 그 나이 즈음의 아이들은 다들 떠난다. 군대로, 회사로, 학교로, 더 넓은 세상으로. 감당할 정도의 큰 상처도 입고, 호연지기도 기르고 결국 돌아와서 어릴 때 자란 들판 앞에 두 팔 벌리고, 고개를 쳐들고 당당히 서게 된다면 멋있는 이야기가 되겠지만, 대부분 돌아오지 않는다. 이야기는 싱겁게 끝나버린다. 우리 마을, 우리 지역이 지금의 우리와 다른 것들에게 얼마나 닫혀 있는지 한 점 돌아보지 않고, 굽은 소나무가 고향 지킨다는 타령만 할 수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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