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누구 위한 농업인의 날?

  • 입력 2018.11.18 13:59
  • 기자명 구점숙(경남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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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점숙(경남 남해)
구점숙(경남 남해)

해마다 11월 11일을 즈음하여 각 지자체별로 농업인의 날 기념식을 합니다. 행사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수농산물을 전시하고 선진적(기준은 다르지만) 농민들을 시상하며 농업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농민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더불어 이 어려운 경제상황에 농업인들이 더욱 증진해줄 것을 부탁하며 준비한 음식을 나누는 자리를 갖습니다.

암요, 이런 행사를 잘 기획해서 이 어려운 농업환경에서도 농업을 지켜가는 농민들을 위로하고 또 농업의 발전방향을 나누는 일은 지역사회에서 중요한 일이지요. 다만 농업정책과 같은 박자가 돼야 하는데 정작 정책적으로다가 외면하면서 형식적으로만 위로하려니 그야말로 행사에 불과한 것이고 농민들은 위로받기는커녕 가슴에 더 큰 구멍이 뚫린 채로 행사장을 빠져나옵니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보니 농민들도 으레 그래왔던 것처럼 별다른 기대 없이 밥 한 끼 먹고 오는 자리라 여기고 행사에 참여합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집에서도 그렇듯이 밥을 먹으려면 준비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상차림에도 손이 필요합니다. 여러 사람이 밥을 한꺼번에 먹을라 치면 더 많은 손이 필요한 것이지요. 그럴 때 가장 손쉽게 동원되는 사람들은? 의심의 여지없이 여성농민들입니다.

며칠 전 우리 지역에서도 농업인의 날 기념식이 있었고, 나도 참석하라는 얘기를 전해 들었지만 아직 가을일 마무리가 끝나지 않아서 굳이 참석하려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다 돼서 다시 연락이 와서는 배식봉사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여성농업인단체가 맡아서 하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이럴 수가, 이래도 되는 것인가요? 하필 농업인의 날에, 하필 여성농민들에게 또 누군가의 밥상을 차리게 하는 것이 말이 되냔 말이지요. 그 생각의 시작은 누가 한 것일까요? 어쩌면 여성농업인단체 회장님들이 나서서 이런 일 쯤은 우리가 할 수 있다고 했을 수 있습니다. 숱하게 그래왔으니까요.

그럴 때는 농업기술센터 직원분들이 말했어야지요. 안 된다고, 오늘만큼은 우리가 하거나 외주로 돌리겠다고, 늘 뒷자리를 지켜주는 당신들 때문에 감사했으니 오늘 만큼은 내빈석이나 주빈석에 자리하셔서 차려주는 밥상을 드시라고 강력하게 주장했어야 하는 것이지요.

우리지역만의 사례일까요? 모르긴 해도 전국의 농업인의 날 기념식 행사를 전수조사 해볼라치면 상당수 이런 형태로 진행됐을 것입니다. 차라리 우리지역만의 문제라면 바꾸기는 쉽습니다. 이 개명된 세상에 이와 같이 부당한 일들이 일어난다며 지역언론에 고하고, 군청홈페이지에 게재할라치면 자성의 계기, 혹은 토론의 장이 열릴 것입니다.

하지만 여성농민들에게 강요된 헌신과 그것을 당연시 여기는 사회풍토는 가정에서부터 지자체나 온 사회 영역에서 만연돼 있으니 울분을 토할 수밖에요.

경찰의 날 기념식에 여성경찰더러 배식하라고 하는 경우 없고 스승의 날에 여선생님들께 요구 않듯이 농업인의 날에 여성농민에게 배식하라는 것은 경우가 안 맞는 일입니다. 일이 이치에 맞는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감수성을 키워야 합니다.

특히 여성농민 문제에 관한 감수성을 키우는 건 향후 우리사회 농업발전의 또 하나의 과제입니다. 몰랐더라면 깨닫고 아닌 길이면 고쳐야겠지요, 차제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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