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농협이 힘들어도 살아남는 사람들

  • 입력 2018.11.11 19:00
  • 수정 2018.11.11 19:25
  • 기자명 김순재 전 조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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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재 전 조합장
김순재 전 조합장

올해 필자는 과수원을 기본으로 봄에 노지 호박 농사를 지었고 후작으로 김장용 배추를 심었다. 필자가 심은 김장배추의 가격은 어찌될까? 당연히 모른다. 30년 농사를 지어 왔건만 농산물 수확 시, 가격을 알려고 노력해보지도 않았었다. 농사 초년기에 들었던 ‘내일 아침 장 시세만 알아도 농사짓지 않는다’는 선배의 이야기를 금과옥조로 여기고 나름 생산에만 노력했었다고 변명을 해본다.

농사 중에서 유일하게 낙농하는 농가들만 가격을 정해 생산하고 그 생산량을 규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유를 생산하는 농가들을 보면 각각의 농가가 생산 쿼터를 가지고 있고 그 쿼터량 내외에서 생산해 우유 가공공장으로 납품하고 있다. 쿼터량 이내에선 등급에 따라 가격을 달리하지만 정한 가격을 받고, 쿼터량을 초과할 경우 초과분에 대해서는 현저히 낮은 가격으로 팔아야 하기에 농가 대부분은 쿼터량을 초과하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우유를 제외한 농산물은 정해진 가격 없이 시장에 맡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체 시장의 흐름을 모르는 농민들이 어떤 경우에는 가격이 폭등하는 농사를 짓게 되지만 대개의 농가들은 인건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헐한 가격의 농사를 짓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농업 현실에서 오랫동안 가격 폭등락이라는 체와 얼기미(표준말로는 ‘어레미’라고 하는데 경상도에서는 얼기미라고 함)의 흔들림을 거쳐 알맹이와 쭉정이로 구분돼 어려워진 두 부류가 있는데, 한 축은 생산지 소농들이고 또 다른 한 축은 생산지 농협에 종사하는 직원들이다.

얼기미에 흔들려도 잘 버티는 농업관계자들

정부의 통계-예측을 신뢰하지 않는 농민들은 정부 예측을 비켜가는 농사를 지으면서 가격 폭등락에서 많은 위기를 맞고 있지만 여전히 정부는 신뢰할 만한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가장 기초적인 곡물에서부터 정부 예측을 농민들이 신뢰하지 못하는 가운데 농업의 알맹이를 챙기는 구성원은 따로 있는 것 같다. 농업이 워낙 자연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기도 하지만 정부가 내놓는 여러 자료 지표도 현장에서 신뢰 받지 못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농민들에게 가장 예민한 가격정보의 경우 농업관련 소식지에 나오지 않는 내용들이 훨씬 더 신뢰할 만한 경우가 많았고, 실제로 떠도는 풍문 같은 이야기들이 가격 예측에서 지금까지 거의 맞은 것으로 보였다. 그 풍문들의 근거는 대개가 전국의 농업 현황을 눈으로 보고, 감으로 느끼는 산지 수집상에게서 나온 것들이다.

농민에 비해 극히 소수인 산지 수집상들은 전국을 누비며 감으로 잡은 농업현황 정보를 흘려가며 시장의 흐름을 주무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농산물의 생산 상황에서 안전하게 살아남는 조직들이 있으니 농민들에게는 씁쓸한 일이다. 가격의 폭등락이라는 널뛰기급 흔들림에도 농업에서 생존하며 체나 얼기미에서 완벽에 가깝도록 살아남는 농업관련 조직들도 부끄러울 정도로 대단히 많이 있다. 농민들은 힘을 모아서 그런 조직들이 농업에 복무하도록 해야 함에도 사분오열돼 제대로 된 자기 몫을 가져가지 못하고 있으니 매우 안타깝다.

농업·농협을 이용해 제 잇속을 차리는 이들이 아니라 진정 농민들과 함께 일할 조합장을 선출하는 게 중요하다. 2015년 3월 11일 제1회 조합장 동시선거에서 농민들이 투표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농업·농협을 이용해 제 잇속을 차리는 이들이 아니라 진정 농민들과 함께 일할 조합장을 선출하는 게 중요하다. 2015년 3월 11일 제1회 조합장 동시선거에서 농민들이 투표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정부 역할은 농민 하기 나름

농업의 큰 흐름은 아무래도 정부 의지가 매우 중요하다. 생산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비용 부담도 정부 예산으로 정하고 있고, 주요 농산물의 수출입도 정부가 정하고 있다. 솔직히 우리나라 농산물 가운데서 정부가 지자체와 조성한 비용으로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면 수출이 가능한 농산물이 있겠는가? 거꾸로 지구상의 모든 나라가 농산물 수출과 관련된 보조금을 모두 없앤다면 지금 같은 농업의 흐름이 가능하겠는가?

필자는 기본적으로 농산물의 수출 보조금을 반대하는 입장이다. 이는 다른 나라들도 어떤 방식이건 보조금을 지원 받아서 수출하고 있기에 그러하다. 보조금만의 문제는 아니고 정부가 가지는 입장이 지금은 농업에서 매우 중요한 사항이 됐다. 그런 정부의 자료는 신뢰하기 힘들고, 민간 유통업자가 가지는 정보를 농민들이 신뢰하고 따라간다면 매우 불행한 일이다.

우리 정부의 여러 시행 사업 중에서 농민들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산업 생산성의 겨우 4%도 되지 않는 것이 농업이다.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겐 정부 방침이 농업 생산에 끼치는 영향을 수치로 표시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기에 정부의 입장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농협은, 특히 생산지 농협은 다르다. 앞의 글에서 언급했듯이 농업과 농협은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정부와 농업, 농협과 농업의 관계는 전혀 다른 것이다. 농민들은 스스로 규합의 강도를 올려 정부에 여러 요구들을 해야 하지만 지금의 여러 현황으로는 불가능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농협은 다르다. 농민들에게 농협의 여러 사업에 많은 기회를 주고 있지만 농민들이 제 역할을 다하지 않아서 제 몫을 찾지 못하고 농협 탓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 정부는 시혜적으로 농민들에게 농협을 만들어 주었고, 추가로 협동조합의 경영책임자 선출 방식과 내용까지도 상당히 바꿔 주었음에도 농민들은 그 유익함을 챙기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기 살림은 자기가 챙겨야

농협 직원들에게 미안한 이야기지만 필자가 보기에 생산지 농협 직원들은 어느 부서에 근무를 하건 좀 후지게 보인다. 사실 그게 현재의 실태이다. 농업관련 조직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그 직급-신분에 따라 여러 차별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농협중앙회 관련조직에 근무하는 직원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한국농어촌공사, 농촌진흥청 등의 관련기관 종사자들, 도시지역에 있는 지역-품목농협의 간부직원들은 현재의 농업상황에 거의 고민이 없는 듯하다. 농업의 애로가 현재 자기의 위치를 위협할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어려워져도 농업 부분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자기의 위치에서 까딱도 없는 사람들은 학계에 종사하는 농업 관련자들이다. 대개 그런 경우의 사람들은 농업이 어려워질수록 ‘사업에 대한 용역’ 같은 부수 사업들이 생겨서 더 좋은 듯하다. 농민이 어려워지면 그 후폭풍은 앞에서 언급한 농업의 많은 관련 조직들 중에서 생산지 지역농협 정도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지역농협 종사자들과 농민들은 똘똘 뭉쳐야 하는데, 가장 시끄러운 곳이 지역농협들이다. 꼭 없는 집에 제사만 많아서 지지고 볶고 싸우면서 분열되는 꼴이다. 스스로의 처지를 살피며 밖으로 눈을 돌려 대책을 마련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조건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농민들에게 정부가 어려움을 강요한 적도 많지만 많은 기회를 주었음에도 농민들이 놓쳐버린 경우도 많았던 것으로 봐야 한다.

뻔한 변화도 싫다면

농민들에게 엄청난 이익이 되고 농산물을 소비하는 소비자들에게 그리 부담되지 않는 사업들이 많이 있었음에도 농민들이 스스로 걷어 차버린 경우도 많았다고 봐야 한다. 필자가 조합장으로 재직하면서 농가소득 증대와 농산물의 효율적인 유통을 위해 농민들 손실 없이 협조만 해줘도 될 사안들에서 협조를 받지 못한 경우가 많았고 엄청난 비난까지 받았던 경우가 있었다.

스스로가 주인이 아니라 농협도 관공서로 생각하는 농민들의 정서는 이해하면서도 협조를 했었어야 함에도 사소한 불편으로 인해 엄청난 욕설과 더불어 협조하지 않는 일들을 겪었었다. 그러한 일들에 대해 ‘조합장이 밀고 나가지 않으면 어느 직원들이 이런 일들을 기안해서 실행하려고 하겠는가?’하는 고민도 많이 했었다.

한 예로 조합장을 하던 시기에 우리 지역에서 주력으로 서울로 출하하던 단감들은 대부분 15kg 박스였다. 여러 검토 끝에 소포장이 농가소득과 노동에 유리하다는 판단으로 10kg 박스로 전환을 시도했다. 우리 농협 같은 경우 초기부터 사업 정착을 위해 15kg 박스의 농가 재고분을 회수해 가면서까지 사업을 강행했다. 그러한 과정에서 필자는 일부 농민들에게 ‘박스회사와 결탁해서 박스를 더 팔아먹으려고 그런다’는 비난과 ‘운송회사와 결탁해서 운송비를 늘리려고 그런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그 일을 함께 하기로 한 주변 농협들은 결국 농민들의 말도 안 되는 저항에 밀려 사업의 일부를 퇴보시켜 다시 15kg 박스를 제작해 농가에 공급하기에 이를 지경이었다. 필자는 숱하게 비난을 받으면서도 아예 15kg 박스를 기준으로 하는 운송비도 책정하지도 않고, 저온 저장도 15kg은 비용을 정하지 않았다. 이사회에서 일부 반대도 있었지만 소포장이 시장에서 유리하다는 확신이 섰기에 끝까지 밀고나갔다.

그 이듬해, 일 년이 지나고서야 사업은 안착됐고 다수의 농민들에게 중요한 시행이었다는 칭찬을 들었다. 그 때 이미 직원들의 표정은 많이 지쳐 있는 느낌이었다. 직원들이야 그냥 농민들이 하자는 데로 따라가는 것이 민원도 적고 몸도 편할 수도 있다.

실용적인 대안에도 농민들은 깊이 고민하지 않고 가야할 흐름에 매우 늦게 반응하는 것을 여러 가지에서 절실하게 느꼈다. 그건 생산을 위한 교육에서, 선별의 방식에서, 포장의 방식에서, 운송의 방식에서, 위탁-수탁의 판매방식 같은 숱한 사업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났다. 심한 경우에는 사업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의 비난들을 받았었다. 시간이 지나서 많은 농민들에게 칭찬도 받고 사과도 일부는 받았지만 그때의 상처는 지금도 남아있다.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

지금 농민들에게는 처지를 개선할 또 한 번의 기회가 다가오고 있다. 농민들에게 농업관련 조직 중에서 생산지 농협 개혁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지고 있는 것이다. 뭐 개혁이라는 게 대단한 것은 아니고 기존의 사업에서 연간 3%~5% 정도씩만 고쳐 나가면 되는 것이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2010년 7월쯤에 조합장 동시선거가 확정된 듯하다. 덕분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필자도 그 법이 개정되면서 4년 임기의 조합장을 중간에 선거 없이 5년하고도 5일을 했었다. 4년 임기였으면 또 출마했을 수도 있지만 5년을 하고나니 여러 아이디어들이 상당히 소진되고 피로도가 높은 상태였기에 불출마를 결정했었다. 그 시기에 법이 개정돼 2015년 3월 11일 조합장들을 동시에 뽑았고, 다가오는 2019년 3월 13일에 두 번째 동시선거를 한다.

지난 2015년에 동시선거를 했다고는 하나 실제로 현장에서 달라진 게 있는지, 농협이 왜 동시선거를 할 지경에 이르렀는지를 심각히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전국의 여러 선거의 흐름과 올해 지방선거에서도 가장 변화가 없었던 지역은 농촌지역이었다. 각 투표소별로 나타난 투표 민심에서 농촌지역의 변화는 거의 없었다고 봐야 할 것으로 느껴졌다.

고령화된 다수의 우리 농민들은 사소한 정서에 끌려 대부분 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고 젊은 조합원들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토대를 바꿀 노력을 하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흔들리는 얼기미에서 농민과 같이 살아가야하는 농업관련 조직은 유일하게 생산지 지역의 농협 직원들이라는 것이고 그 직원들과 제대로 어울려 일할 경영책임자를 뽑는 일에 농민들이 적극 나서야 함에도 현장에서는 현재 감감무소식이라는 것이다.

가장 보수화돼 있고 바람을 안 타는 곳이 농촌이라고는 하지만 자신들의 생존권과 관련된 일에는 관심을 좀 가져야하는데 우리 농민들이 안타까울 만치 조용한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누가 내 편인지 확실히 해야

시기적으로 지금은 농민들이 조금이라도 입장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전국적으로 거의 1,100여명의 조합장들을 뽑아야 하는 시기이다. 정부와 사회가 우리 농민에게 시혜로 베푼 제도를 충분히 활용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농업이라는 틀 위에서 자신들의 삶을 향유하고 잇속 차리는 지를 면밀히 살펴, 조용히 실천만 해도 되는 일인데 그것조차도 실천하지 않는다면 농민들은 농업의 여러 문제에 대해 정부를 탓할 이유가 조금도 없다.

농협 조합장 선거를 보면 각 농협별로 바른 입장을 견지하는 조합원들이 30명 내외만 뭉치면 충분히 농협을 개혁해 낼 수 있다고 본다. 우리 농민들이 사소한 인연에 끌리지 말고, 누가 농민들과 조금이라도 잘 어울려 일을 하겠는지를 살펴보고, 주변의 여론들을 잠시라도 듣고 자신의 양심에 따라 비밀이 보장되는 투표소 안에서 투표를 하는 일은 전혀 위험하지도 부담스럽지도 않은 일인데 그것조차도 못한다면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김순재의 농협 빗장풀기’를 매월 1회 연재합니다. 창원 동읍농협 조합장을 역임했던 김 전 조합장이 들려주는, 늘 곁에 있으나 잘 알지 못했던 농협 이야기에 함께 귀 기울여 볼까요.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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