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여자가 뭐 해요?

  • 입력 2018.11.11 18:49
  • 기자명 김정열(경북 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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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열(경북 상주)
김정열(경북 상주)

지역에 로컬푸드직매장을 만들고 나서 더 바빠졌다. 농번기고 뭐고 간에 매장문은 매일매일 열어야 하고 매일매일 팔 농산물은 있어야 하니 아무리 농사일이 바빠도 틈틈이 쌈채소 몇 봉, 무 몇 개, 배추 몇 포기 들고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든다.

그 날은 나락 베던 날이었다. 아침부터 이것저것 할 일이 많았지만 로컬푸드직매장에 구색이라도 갖춰주자 싶어서 텃밭에서 재배한 채소 몇 가지를 들고 나갔다. 빨리 진열해놓고 와야 하는데 다른 생산자들도 있고 하니 마음처럼 빨리 일처리를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이구, 큰일났네. 오늘은 나락 베는 날이어서 빨리 집에 가 봐야 하는데!” 했더니 귀농해서 이웃마을에 사는 우리 여성조합원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벼 수확하는데 여자가 뭐 해요?”

‘여자는’ 뭐 해요? 도 아니고 ‘여자가’ 뭐 해요? 라니….

그 물음에 내가 더 놀랐다.

“예? 여자가 뭐 하다니요?”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보니 웃음이 난다. 아직 농촌현실을 모르는 순진한 그대여! 몇 년 뒤 누가 그 질문을 당신에게 똑같이 하거든 화나 내지 마시라.

어떤 사람은 나에게 이런 질문도 했다.

“나락은 콤바인이 베는 것 아닌가요?”

예, 맞습니다. 맞고요. 그래도 사람이 할 일이 더 많고요, 여자가 할 일은 더 많답니다.

여성이 하는 일들이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연구보고서에 쓰는 내용이다. 여성농민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는 것에 대해서도 많은 사람들이 알고는 있다.

그러나 실제로 여성농민들이 얼마나 많은 노동을 하는지 여성농민들의 노동이 얼마나 무시되고 있는지 그 현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대부분 기계화가 돼 있고, 여성보다는 남성들의 역할이 더 크다는 논농사의 경우도 여성들의 노동은 눈에 보이게, 눈에 보이지 않게 끝이 없다. 일을 다른 집 기계로 하던 자기 집 기계로 하던 물, 술, 밥이 담긴 바구니를 준비하고 들고 따라다녀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기계가 하지 못하는 논 귀퉁이에 모를 심는다던지, 귀퉁이 벼를 베는 일, 수확한 벼를 건조하고 운반하는 일 등 여성이 하지 않는 일이 없다.

요즘은 모심기도 보통 부부-남성과 여성이 2인 1조, 벼를 벨 때도 보통 부부-남성과 여성이 2인 1조로 일을 한다. 그런데도 일은 남자만 하는 것처럼 알고들 있으니 참….

열흘, 보름씩 가을걷이를 하고 나면 온몸이 안 아픈 곳이 없다. 몸을 갉아먹는 그 노동으로 쌀이 나오고 밥이 나오건만 그 노동을 한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고 비싸니 어쩌니 가격만 오고간다.

씁쓸한 일이다. 허전한 일이다. 그런 이 일도 이제 마무리 되어간다. 그러나 아직 가을걷이를 채 못한 이웃도 있는데 아침부터 추적추적 비가 내리니 내 마음이 다 심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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