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들이는 사람 따로, 이득 보는 사람 따로

가락시장 하차거래 전환사업
가장 혜택 없는 출하자들이
물류비 부담 가장 많이 져

  • 입력 2018.11.10 21:35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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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오랫동안 유지해온 제도를 바꾸고자 한다면 누군가는 득을 보고 누군가는 실을 떠안는 게 정한 이치다. 득을 보는 쪽에서 충분한 양보나 희생이 나오지 않는다면 제도는 끊임없이 갈등에 휩싸이게 된다. 가락시장 하차거래의 경우는 어떨까. 차상거래품목 하차거래 전환에 따른 가락시장 내외 각 주체들의 득실을 살펴봤다.


산지는 득보다 실이 뚜렷

명백한 희생자는 산지 출하자들이다. 그동안 사용하지 않아도 됐던 포장재와 팰릿을 사용해야 하고 지게차는 물론 래핑기·제함기 등 시설을 갖춰야 한다. 인력과 작업과정이 추가되는가 하면, 적재효율 감소로 한 번에 출하할 물량을 두 번에 나눠 출하하는 경우도 생긴다. 물류효율화를 위한 하차거래 전환이 적어도 출하자에겐 엄청난 물류비효율을 초래하는 것이다.

상품성 보호로 인해 수취가격이 상승할 것이라지만 아직 그 실체는 불명확하다. 지금까지 하차거래 전환 품목들의 가격상승엔 수급상황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고, 설사 수취가격 상승효과가 있다 하더라도 물류비용 증가분을 상쇄하기엔 태부족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갈등이 한창 격화돼 있는 총각무·양배추 등의 품목이라면 더욱 그렇다.

직접 출하를 하지 않는 영세농들도 피해는 마찬가지다. 농협이나 산지수집상들의 물류비 부담은 자연스레 계약단가에 반영되고, 경우에 따라선 산지수집상들이 하차거래를 빌미로 필요이상 가격을 후려치는 사례도 발생한다.

 

하차거래 전환으로 인한 혜택은 산지보다 시장에 집중돼 있지만 비용은 출하자들이 대거 부담하고 있다. 책임있게 사업을 이끌어야 할 공사와 농식품부의 예산 투입은 매우 제한적이다. 사진은 서울 가락시장에서 팰릿적재된 총각무를 하역하는 모습.한승호 기자
하차거래 전환으로 인한 혜택은 산지보다 시장에 집중돼 있지만 비용은 출하자들이 대거 부담하고 있다. 책임있게 사업을 이끌어야 할 공사와 농식품부의 예산 투입은 매우 제한적이다. 사진은 서울 가락시장에서 팰릿적재된 총각무를 하역하는 모습.한승호 기자

 

시장 안은 ‘중립’

시장 내의 유통주체들은 하차거래로 인한 득실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 인력이 지게차로 대체되는 만큼 하역노조의 일자리 축소 문제가 불거질 법도 하지만, 조합원 상당수가 고령화돼 인력작업이 버거워지고 있던 터라 이들도 하차거래를 마냥 꺼려하진 않는 분위기다. 하차거래와 고령화가 맞물려 하역노조에 자연스런 구조조정이 이뤄지리란 전망도 많다.

중도매인들도 일부에서 가벼운 불만 제기가 있을 뿐 주목할 만한 반대기류는 보이지 않는다. 품목에 따라 산지에서 주는 ‘덤’을 포기해야 하는 단점도 있지만, 비품 속박이가 근절되면서 재가공에 드는 인건비, 쓰레기 처리비 등을 절약할 수 있다. ‘포장출하가 완벽하게 이뤄진다’는 가정하에 하차거래를 반기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도매법인들은 ‘우려’를 안고 있는 상황이다. 하차거래 추진이 가락시장에서만 이뤄지는 만큼 물량이탈로 인해 수수료수익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아직까지 하차거래 전환 품목 중 총각무 외엔 반입량이 눈에 띄게 감소한 품목은 없지만, 전국 도매시장 및 유사도매시장 반입량을 모두 조사하지 않는 이상 하차거래로 인한 자세한 영향을 산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승자는 행정, 그러나…

하차거래로 인해 명백하게 득을 보는 것은 시행주체인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공사)다. 하차거래로 인한 시장 내 공간효율 증대와 환경개선은 오롯이 공사의 업적이 된다. 공사 스스로의 목적을 달성함과 동시에 시설현대화라는 새로운 목적을 향해 아갈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또한 파렛타이징 물류효율화는 공사 이전에 애당초 농식품부가 유도한 정책과제이기도 하다. 농식품부 역시 본인들 스스로 농안법에 새겨 넣은 ‘하역체제 개선’과 ‘하역 기계화’라는 정책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비용부담 주체를 따져 보면 모양새가 퍽 이상하다. 제주양배추를 비닐랩핑·팰릿적재 형태로 하차거래한다 했을 때 8kg 망당 물류비 증가분은 공사 추산 158원, 산지 추산 1,116원이다. 공사는 도매법인과 함께 이 가운데 46원을 지원하고, 농식품부는 25원을 지원한다. 지원금을 제외한 최소 87원에서 최대 1,045원을 출하자가 부담해야 한다. 연간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하차거래의 명백한 수혜자는 공사와 농식품부다. 반사적 수혜자가 있다면 개선된 시장 환경을 누리게 될 시장 내부의 유통주체들이다. 그런데 혜택과 가장 거리가 먼 출하자들이 가장 많은 비용부담을 떠안고 있다. 가락시장 하차거래 전환에 갈등이 끊이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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