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61] 위하여

  • 입력 2018.11.10 13:05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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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양양친환경농업연구회 주관으로 사과 따기 1일 자원봉사에 다녀왔다. 연구회에서는 매년 두세 번씩 회원농가 중 일손이 딸리는 비교적 규모가 큰 농장의 일손 돕기에 나선다. 금년에도 사과를 유기농으로 재배하는 자연사랑농원(대표 장철환·김명희)에서 실시됐다. 이 농장은 5,000여평 규모의 사과 농장인데 10여년 전에 조성됐고 처음부터 유기농 사과를 재배하고 있다.

아침 8시에 농장에 도착했다. 대여섯 분의 친환경 농사를 짓고 있는 회원농민들이 이미 도착해 있었다. 이 자연사랑농원에 두세 번 퇴비나 발효액을 얻기 위해 잠시 들른 적은 있으나 하루 종일 일하기위해서는 처음이었다.

이파리가 거의 다 떨어진 나무 마다 탐스러운 사과들이 매달려있는 과수원의 가을 풍경은 장관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과수원에는 100여마리의 닭들이 연신 떨어진 사과를 쪼아 먹으며 놀고 있고 흙은 유기물 함량이 매우 높아 거의 검은색을 띠고 있었다. 이 농장에서 나오는 모든 물질 즉 열매, 나뭇가지, 풀들은 무엇이든지 주변 미생물로 발효시켜 농장으로 환원하는 이른바 생태순환농업을 시행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밭에서 뛰놀던 닭들 중에서 재수 없는 놈 대여섯 마리가 백숙이 되어 밥상에 올랐다. 맛있게 먹고 오후에도 사과 따기를 계속했다. 산속이라 서너시가 되자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다섯시에 일을 마무리하고 사과 한 보따리씩 얻어 들고 과수원을 떠났다.

하루 종일 주인 내외분과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나눴다. 특히 왜 이렇게 힘든 유기 농사를, 돈도 크게 벌지도 못 하면서 그토록 오랜 세월을 고생하시느냐는 질문에 자연을 사랑하고 인간에게 올바른 먹거리를 제공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거창하게 국가와 민족과 농업과 농촌을 거론하지 않았다.

귀농해 3년을 보내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단상은 현장의 농민들이야말로 스러져 가는 농촌과 농업을 수십 년간 온몸으로 지키고 있는 가장 소중한 분들이라는 사실이다. 이들은 스스로 국가와 민족과 농업과 농촌을 위하여 일 한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행동은 하나도 하지 않으면서 입만 열면 국가와 민족과 농업과 농촌을 위한다고 떠들어 대는 기생충들이 우리 사회에는 너무 많다는 생각을 늘 해왔는데 오늘 또 한 번 그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한 하루였다. 묵묵히 힘든 유기농 사과밭을 일구는 자연사랑농원 부부야 말로 진정 국가와 민족과 농업과 농촌을 위하는 분들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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