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조무래기들과의 조우

“아이들에게 맘 놓고 뛰어놀 자리를
남겨놓고 부수든지 개발을 하든지 해라.”

  • 입력 2018.11.04 07:17
  • 기자명 부석희(제주시 구좌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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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희(제주시 구좌읍)
부석희(제주시 구좌읍)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이 졸업 여행이라며 우리 동네를 찾았다. 경상북도 상주 백원초 - 상주도 촌이니까 나하고 잘 맞겠구나, 삼촌 말 잘 듣게 겁을 주려는데 웬걸, 얼굴 보는 첫 자리부터 꼬인다. “왜 할아버지는 수염도 안 깎고 시커매요”라고 시비부터 건다. 알고 보니 시내 가까운 학교에서 온 아이들이란다.

농부와 조무래기들과의 마을투어는 잘 됐을까? 타고 온 버스는 빈터에 세워두고 기사분한테는 서너시간 푹 쉬시라고 말해 놓고 아이들과 마을로 들어선다. 아무데나 높은 돌담이 보이면 기어오르고 뛰어 내리는 아이, 농사용 트럭이 보이자 꼭 뒤에 타보겠다고 떼를 쓴다. 굳이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세 명만 태우고 가니 걷는 애들은 미칠 듯이 날뛴다.

돌아보면 우리네도 그랬지. 여름이 오기도 전부터, 가을이 왔어도 바다로 들로 놀기 바빴던, 위험은 즐기라고 있는 거라고 어멍 아방 속을 얼마나 태웠는지 알 것 같다. 그래도 우리 마을엔 차가 못 지나가서 맘 놓을 수 있는 길이 골목 골목 남아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코앞의 학교에도 차를 타고 가고, 돌아오는 길에도 마중을 가야하는 동네에 자기 땅은 죽어도 못 내놓겠다고 버텨서 시멘트 포장도 없는 고마운 길. 그 길 따라 딴 동네 아이들이 떠들어 댄다.

“우리집에 진돗개 두마리가 다섯개, 여섯개 낳는데 보고 가라.” 어미개는 자기 터에 온 아이들을 못마땅한 눈초리로 보다가 “잘 있어”하고 돌아설 땐 아쉬워 하는 게 우습다.

“어디에서 온 애기들이고. 우리집에 왕 소 구경허라.” 밭에서 김을 매던 할머니가 호미를 놓고 쇠막으로 이끈다. 당근 한 뿌리씩 들고 갓난 송아지를 만난 아이들, 1톤 트럭의 아쉬움은 다 잊었는지 5,000원에 갖고 가라는 강아지, 돈 모았다가 사가라는 송아지에 꽂혀서 선생님들 눈치만 보고 있다.

소소한 모래사장에 따뜻한 해가 들고 잔잔한 바다에 들렀다. “10분만 놀고 밥먹으러 가자.” “예~.” 신발을 던져놓고 물 만난 몇 놈이 배꼽까지 적시고는 나올 생각을 않는다. 다른 아이들도 덩달아 그 모양이니 여차하면 나도 뛰어들 생각을 한다. “빨리 기어나와. 하나, 둘, 셋”을 몇 차례 하고 나서야 겨우 먹는 밥. 시골 밥상엔 거지들이 떼로 와서 작은 뱃속을 잘도 채운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아이들과 할 수 있는 일이 이런 것밖에 없었다. 어릴 적 나도 그렇게만 놀았으니 오죽하랴. 별 거 없는 마을 여행에 소소한 풍경과 얘기들, 그래, 살다보면 잊혀지겠지만 언젠가 문득 시커먼 얼굴, 할아버지네 강아지, 할머니네 송아지, 어느 바닷가였는지는 기억에 남아 있으리라.

조무래기들과 만나고 나서야 분명해진 것이 하나 있다. 아이들에게 맘 놓고 뛰어 놀 자리를 남겨놓고 부수든지 개발을 하라는 거다. 수백년 버틴 팽나무를 뭉개고, 더 오랜 돌담을 허물어서 집을 짓겠다고, 숲을 없애서 도로를 만든다고. 벌 받지. 안될 일이다.

공항이 더 생겨야 제주도를 찾는 것이 아니다. 거대한 바람개비가 돌고 있는 바다에 뛰어들 사람도 없을 것이다. 내가 본 건, 아이들은 새로운 것에 혹해 있었고 모험을 하고 싶어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들에게 새로운 것은 그냥 그 자리에 있었던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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