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빈 강정 - 2018 농해수위 국정감사

  • 입력 2018.11.03 22:56
  • 수정 2018.11.03 23:12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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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국민과 함께하는 농민의길’ 소속 농민단체 대표단이 지난달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회의실 앞에서 농림축산식품부 및 소관기관에 대한 종합국정감사가 열리기 전 ‘밥 한 공기 300원 보장, 농특위법 조속 처리’ 등을 요구하는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다. 올해 국감은 산적한 농업현안에도 불구하고 여야 입장이 뒤바뀐 탓인지 예년에 비해 긴장감이 떨어졌다. 한승호 기자
‘국민과 함께하는 농민의길’ 소속 농민단체 대표단이 지난달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회의실 앞에서 농림축산식품부 및 소관기관에 대한 종합국정감사가 열리기 전 ‘밥 한 공기 300원 보장, 농특위법 조속 처리’ 등을 요구하는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다. 올해 국감은 산적한 농업현안에도 불구하고 여야 입장이 뒤바뀐 탓인지 예년에 비해 긴장감이 떨어졌다. 한승호 기자

어느 강정이든 윤기는 자르르하게 돌겠지만 식감은 천차만별이다. 바삭 쫄깃한 식감에 고소한 향내가 입안을 즐겁게 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퍼석 하고 그냥 으스러져버리는 것도 있고, 이가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딱딱한 것이 있는가 하면, 기름 쩐내가 심해 입에 대기조차 역한 것도 있다.

국정감사도 마찬가지다. 번듯하게 차려져 각종 매체에 대대적으로 중계되는 국감은 언제나 국민들의 이목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모든 국감이 국민들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 주진 못한다. 느슨하고 밋밋한 국감은 지켜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답답하게 만든다.

올해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 국감은 기본적으로 두 개의 위원석을 비운 상태에서 진행됐다. 국회의원과 장관직을 겸임해 타 상임위의 감사를 받아야 했던 김부겸(행정안전부 장관)·김현미(국토교통부 장관) 위원의 자리였다. 가뜩이나 위원 수가 전체 상임위 평균에 미달하는 농해수위에서 피감기관들이 두 장의 ‘프리패스 카드’까지 제공받은 셈이다. 국회 상임위의 수는 총 17개, 장관 겸임 국회의원 수는 7명(전원 여당)이다. 1개의 위원회에 2명의 장관 겸임 위원을 배정한 건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와 농해수위 뿐으로, 집권여당의 농업 경시 풍조를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례였다.

자유한국당 위원들은 모든 상임위를 막론하고 정부부처·기관의 ‘일자리 억지 창출’을 합동 저격했다. 농해수위 국감에서도 농식품부와 산하기관들에 일자리 관련 지적이 집중적으로 쏟아졌다. 의미가 없는 지적은 아니었지만, 농업과 직접적으로 관련있는 시급한 현안이 산적한 가운데 정당 차원의 전략적 이슈가 국감을 지배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정작 현장의 목소리는 충분히 전달되지 못했다. PLS 시행이나 여성농민 권익에 관한 단편적 의견개진 외엔 선도 축산농가 같은 특별한 농민만이 참고인으로 국감장을 밟았다. 그나마 야당 위원들이 최대 현안인 쌀 목표가격 상향조정을 요구했지만 현장과의 연계나 논리의 정교함이 아쉬웠고, 여당 위원들은 쌀 목표가격 이슈에서 아예 등을 돌렸다.

가축전염병이 뜸하자 축산분야 질의는 국감에서 거의 자취를 감췄다. 이따금씩 미허가축사 문제에 대한 질타가 등장했지만 PLS의 곁가지 성격으로 간단하게 다뤄졌고 보름여일간의 감사 동안 이렇다 할 다른 이슈는 없었다. 축산업이 국감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대해 고민케 하는 대목이다.

또 하나 특기할 만할 건 피감기관장들의 이력이다. 이개호 농식품부 장관은 농해수위 간사를 지낸 현직 국회의원이며, 최규성 한국농어촌공사 사장은 농해수위 위원장까지 지낸 전직 국회의원이다. 기관장이 쌀 목표가격에 대한 거듭된 질책에 “19만4,000원 +α”를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등 좌중을 실소케 해도 예년 같은 불호령이 떨어지진 않았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선배 의원에 대한 위원들의 예우가 국감을 더욱 느슨케 만든 요인이 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올해 농해수위 국감을 참관한 이들은 하나같이 “재미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전체적으로 예년에 비해 긴장감이나 몰입도가 떨어진 것이 사실이다. 근래 들어 부쩍 높아진 국민들의 눈높이를 충족하기엔 부족함이 많았다. 농민들의 눈으로 본 농해수위 국정감사는, 비유하자면 씹을 것도 없이 부스러져버리는 속 빈 강정에 가까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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