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농민권리선언’, 인권국가 앞세우는 한국선 ‘무대접’

[국회토론회]‘농민의 권리와 유엔 농민권리선언’
비아캄페시나 18년간 ‘농민·농촌노동자 권익 투쟁’ 성과
“농업·농촌·농민 지속가능성 위기, 대안으로 급부상”

  • 입력 2018.11.03 11:19
  • 수정 2018.11.04 20:12
  • 기자명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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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원재정 기자]

지난 9월 28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UN) 인권이사회에서 ‘농민과 농촌노동자 권리선언문’이 채택됐다. 다음 단계는 12월 미국 뉴욕에서 개최되는 유엔총회로, 이 역시 무난히 채택되리라는 것이 비아캄페시나(Via Campesina)의 전망이다. ‘농민과 농촌노동자 권리선언(농민권리선언)’은 국제농민운동조직인 비아캄페시나가 지난 2000년부터 논의를 시작해 18년이란 긴 시간 공을 들이며 주도해 왔다.

농민권리선언이 유엔 총회에서 최종 승인되면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해 자본에 빼앗긴 농민의 권리를 다시 찾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선언문’이라고 가벼이 여길 게 아니다. 1948년 ‘세계인권선언’이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확고히 하는 각 국가의 기본법에 큰 영향을 줬다는 점을 되짚어 본다면, 우리는 유엔의 ‘농민권리선언’을 어떻게 국내 농업·농촌·농민을 다시 세우는 일에 적용시킬 것인지 지금부터 논의가 필요하다. 그 공론의 장이 지난달 29일 국회에서 열렸다. 
원재정 기자·사진 한승호 기자
 

·공동주최 : 황주홍 국회 농해수위원장, 송영길 의원, 위성곤 의원,
               오영훈 의원, 비아캄페시나 KOREA(전농·전여농),
               더불어민주당 전국농어민위원회
·
공동주관 : 충남연구원, 한국농정신문
·일시·장소 : 10월 29일(월) 국회 의원회관 제2간담회실

지난달 2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황주홍·송영길·위성곤·오영훈 의원과 비아캄페시나 KOREA, 더불어민주당 전국농어민위원회 공동주최로 ‘농민의 권리와 유엔 농민권리선언’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선 농민권리선언의 유엔 인권이사회 통과까지의 과정과 의미를 비롯해 유엔 총회 전망을 살펴보고 농민권리선언 채택 이후 국내 상황을 점검하는 공론의 장이 마련됐다.
지난달 2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황주홍·송영길·위성곤·오영훈 의원과 비아캄페시나 KOREA, 더불어민주당 전국농어민위원회 공동주최로 ‘농민의 권리와 유엔 농민권리선언’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선 농민권리선언의 유엔 인권이사회 통과까지의 과정과 의미를 비롯해 유엔 총회 전망을 살펴보고 농민권리선언 채택 이후 국내 상황을 점검하는 공론의 장이 마련됐다.

비아캄페시나는 지난 2001년 농민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투쟁을 본격 시작했다.

이날 토론회 주제발표를 한 김정열 비아캄페시나 동남동아시아 국제조정위원은 “지난 2009년 3월 서울에서 열린 비아 국제조정위원회 회의에서 농민권리선언문이 채택되면서 그해 4월,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농민권리와 관련된 연구를 시작하자고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2010년 유엔 인권이사회는 비아의 제안을 받아 농민들의 권리침해 문제를 조사했고, 자문위 조사 결과 “농민권리는 조직적으로 침해당하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법 문서가 마련돼야 한다”고 발표했다.

좌장_윤병선 교수
좌장_윤병선 교수

김 국제조정위원은 “2007년부터 2008년 세계적인 식량위기를 겪으면서 식량의 굶주림 문제가 국제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식량과 농민, 식량위기와 농업·농촌 문제가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인식도 확산됐다”면서 “2012년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조사보고서와 결론에 관한 내용을 채택하고, 선언문 초안 작성을 위한 각국 정부의 워킹그룹을 구성하게 됐다”고 전했다.

이후 2013년부터 올해까지 5차례 워킹그룹 회의를 하면서 농민권리선언문 수정·보완 작업이 이뤄졌으며, 지난 9월 찬성 33개국, 반대 3개국, 기권 11개국이란 표결을 통해 유엔 인권이사회 차원의 결의안이 최종 통과됐다.

박경철 충남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토론회 주제발표에서 “비아는 세계 140개 단체, 2억명이 소속돼 있다. 2010년경 비아캄페시나는 WTO와 FTA를 넘어서면서 농민 목소리를 가장 잘 대변할 단체로 유엔을 지목했다”며 “유엔에서도 세계 농민들의 권리가 심각하게 침해됐을 뿐 아니라 기후변화나 생물다양성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농업·농촌·농민 문제 해결이 동반돼야 한다는 점을 공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12월 개최예정인 유엔 총회에는 이해관계가 다른 193개국이 농민권리선언 채택에 대한 투표를 하게 된다.

‘농민권리선언’, 국가의 역할 제시

주제발표1_김정열 비아캄페시나 동남동아시아 국제조정위원
주제발표1_김정열 비아캄페시나
동남동아시아 국제조정위원

유엔 인권이사회를 통과한 농민권리선언문 서문에는 왜 농민권리선언이 필요한지 명시돼 있다. 식량을 생산하고 있지만 정작 빈곤, 기아, 영양실조, 기후변화로 가장 고통 받고 있는 것이 농민이고 농민과 농촌지역민이 위험한 착취 조건에 처해 있다는 실태도 언급한다.

김 국제조정위원은 “농민을 말하고 있으면서도 그 속에 여성농민, 청년, 아동과 농촌 노동자 등 많은 사람들이 인간다운 삶조차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는 것을 공감하고 있다. 아울러 비아캄페시나는 이 선언문이 농민들의 권리 뿐 아니라 식량주권, 기후변화, 생물다양성 보호 강화와 토지수탈, 종자에 대한 권리문제, 농산물에 대한 적절한 가격 보장, 여성농민 권리인정까지 가치를 두고 있다는 점에 의의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농민권리선언은 총 28조로 구성돼 있다. 특히 2조 국가의 일반적 의무, 4조 여성농민과 농촌노동자의 권리, 15조 적절한 먹거리에 대한 권리, 16조 적절한 수입과 생계·생산수단에 대한 권리, 17조 토지와 기타 천연자원에 대한 권리, 19조 종자에 대한 권리, 20조 생물다양성에 대한 권리를 비롯해 적절한 주거에 대한 권리, 교육과 훈련에 대한 권리 까지 촘촘함을 갖추고 있다.

농민권리선언으로 비춰본 한국 농민권리 실태

주제발표2_박경철 충남연구원 책임연구원
주제발표2_박경철 충남연구원 책임연구원

 

박경철 충남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유엔이 농민권리선언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에 대해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사무소 요티 상게라의 말을 인용해 두 가지로 설명했다. 하나는 전 지구적 기후변화 문제 대응에 농민권리선언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유엔의 지속가능한 개발 목표를 실현하는 데에도 이 선언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박 책임연구원은 충남도에서 2013년 기준 농민권리선언 항목을 토대로 국내 농민인권 실태를 파악해 보는 연구결과를 설명하면서 “식량주권, 적절한 소득보장, 농산물의 공정한 가격, 초국가적 기업이 만든 인증제를 거부할 권리 등이 현재 실태 점수는 낮고 향후 중요도는 큰 권리들”이라고 정리했다.

농식품부, 농민권리선언 왜 ‘기권’하나

토론_박승민 농식품부 농업통상과 사무관
토론_박승민 농식품부 농업통상과 사무관

우리 정부는 유엔 인권이사회 최종 결의안에 끝내 ‘기권’ 했다. 정부측의 입장을 듣기 위해 농림축산식품부 농업통상과와 외교부 인권사회과에서 이날 토론회에 참석하는 것이 중요했다. 행사 당일까지 참석이 불투명했지만 어렵사리 두 부처에서 자리를 함께 했다.

박승민 농식품부 농업통상과 사무관은 “농민인권선언 담당자는 아니지만 간략히 설명 드리자면, 외교부에서 이 선언에 대해 검토의견 달라고 하면 우리부처 내 관련 과들과 의견을 수렴한다. 종자권 중에서 국내 실정법에 부합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는 의견이 있고, 수정되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출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좌장을 맡은 윤병선 건국대 교수는 “농민권리선언이 자본주의를 무시하고 농민 중심을 주장하는 게 아니다. 농민들이 원래 갖고 있었으나 박탈당한 것들 중 최소한을 보호막으로 만들자는 것”이라며 “농민권리선언에 찬성했다고 종자법과 관련한 국내법을 당장 고쳐야 하는 것도 아니다. 스위스가 왜 찬성을 했겠나. 중국, 멕시코, 파키스탄 등이 찬성한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겠나. 결국 농민권리는 농민만을 위한 것이 아닌 우리 모두의 권리를 지키자는 것의 출발”이라며 정부의 전향적 자세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토론_유예나 외교부 인권사회과 사무관
토론_유예나 외교부 인권사회과 사무관

유예나 외교부 인권사회과 사무관은 “공부 많이 하는 자리였다”면서 “농민선언관련 동향은 주시해 오고 있었다. 오늘 토론내용을 감안해서 관계부처와 협의해 나가겠다. 우리 정부가 기권을 한 것과 관련해서 농촌 인권 개선의 취지와 필요성에는 적극 공감하지만 일부조항이 국내법과 저촉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에 따라 관계부처와 협의 하에 기권 결정을 한 것이다. 오늘 논의 내용을 통해 전향의 필요성과 우려 의견 잘 이해했다”고 말했다.

지정토론자인 이무진 전농 광전연맹 정책위원장은 “지난 농정개혁위 전국순회토론회 때 김종훈 농식품부 차관보가 농민권리선언에 대해 몰랐다면서 부처 내 논의를 하겠다고 했는데, 오늘 토론회까지 변화된 것은 하나도 없다”면서 “농식품부의 무대책·무관심에 화가 난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정은주 한국국제협력단(KOICA) 인권경영전문가도 토론자 의견을 통해 “이 선언은 국제인권조약과 달리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향후 국제 시민사회의 보편

토론_정은주 KOICA 인권경영 전문가
토론_정은주 KOICA 인권경영 전문가

적 정서로 자리매김하는 강력한 인권담론이다”며 “농민, 농촌노동자 권리 실현을 위해 국내적 이행이 필요하고 이는 곧 국가의 의무이자 책무다”고 설명했다.

유엔 농민권리선언 채택, 그 이후

김정열 국제조정위원은 “우리 정부가 기권하더라도 유엔 총회는 통과된다. 다만 문 대통령이 인권변호사 출신이면서 인권대통령으로 상징되는데 왜 신자유주의 농정관점이 반복되는 것인가가 문제다” 지적하며 “앞으로 농민권리선언을 국내의 농업·농촌·농민 문제를 풀어나가는 효과적인 지렛대로 삼아야 한다. 공식 협의체를 만들어 국제정세와 국제규범에 대응해 나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토론_이무진 전농 광전연맹 정책위원장
토론_이무진 전농 광전연맹 정책위원장

 

 

박경철 책임연구원도 “농민인권 증진을 논의할 협의체를 구성하고, 농민인권센터 설립 등 적극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농민단체 등의 인권교육도 힘써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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