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은 비뚤어졌어도 장구는 바로 쳐야…
마당은 비뚤어졌어도 장구는 바로 쳐야…
  • 한도숙 전농 고문
  • 승인 2018.11.02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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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도숙 전농 고문.
한도숙 전농 고문.

지난 9월 중순 일단의 농민들이 청와대 앞 나들목에 농성장을 꾸렸다. 이들은 농업적폐를 청산하고 농업패러다임의 전환을 약속한 문재인 대통령의 대안제시가 늦어지자 조급해진 것이다. 이들의 생각에는 촛불정부를 자임하는 정부인만큼 농업적폐를 청산할 가장 적절한 정부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간을 끌면 적폐청산이 어려워지니 이른바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라는 대통령에 대한 압박이었다. 이들은 농민단체장도 아닌 일반 농민들로서 남양주의 유영훈, 군산의 채성석, 부산의 진헌극, 홍성의 김영규 등 네 명이었다.

이들의 요구는 단순했다. 대통령을 면담하겠다는 것이다. 대통령을 만나 직접 의사전달을 하겠다는 것인데 단식 한 달이 경과하는 동안 면담은 없었다. 필자를 비롯한 서너 명이 단식농성에 가세하고 각 단체들과 일반농민들이 관심을 보이며 농성장을 찾는데도 대통령은 이들과의 직접 면담은 허용하지 않았다.

결국 농민단체들과 소비자단체들이 농성장을 유지하고 대통령의 빠른 농업적폐청산을 요구하기로 합의하며 단식농성은 한 발 뒤로 물러섰다.

필자가 지켜본 단식농성은 어느 때 보다 절박해 보였다. 관심을 보이는 농민들이 너도 나도 몰려들었고 후원금과 응원의 목소리가 SNS를 통해 전달됐다. 그만큼 촛불로 세운 정부에 대한 농민들과 소비자들의 기대가 높은 것으로 보였다. 그럴 만도 했다.

지난 ‘이명박근혜’정부의 농업에 대한 발상은 치워버려야 할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취급됐다. 이명박의 미국산 소고기 수입과 강소농이 그렇고 박근혜의 쌀값 21만원 공약으로 인한 백남기 사망 사건에 대한 대응은 너무 치졸하고 천박했던 것이다. 결국 밀릴 대로 밀렸다고 생각한 농민들의 요구는 촛불정부로 넘어와 바른 청산을 빗발치게 했던 것일 게다.

어느 때 보다 절박했던 단식농성

‘농업’, 이 말은 사전적으론 토지를 이용하여 인류에게 유용한 동식물을 길러내는 직업이다 라고 정리돼 있다. 그렇다면 이 말은 언제부터 사용됐는가? 추정컨대 1881년 구미의 실험농학을 내용으로 하는 ‘농정신편’이라는 책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고종이 1904년 뚝섬에 설치한 근대식 교육기관인 농상공학교와 1906년 일본이 수원에 세운 권업모범장에서 농업이라는 말을 엿볼 수 있다.

따라서 그 이전엔 토지를 이용해 인간에 유용한 동식물을 기르는 일을 ‘농사’라고 했다. 농사와 농업 무엇이 다른가? 사전적 의미의 농업은 사실상 농사를 설명하고 있다. 농업은 농사를 산업으로 편입시켜 서비스 등 모든 재화를 경쟁체제로 변화시킨 것이다. 우리는 농사를 일반적으로 농업이라고 하지만 농사짓는 농부의 순수한 생산만을 가지고는 농사라고 해야 옳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농업은 일제의 수탈기지였고 수탈에 필요한 총독부의 농정으로서 시작됐다. 해방이후 정부수립과 더불어 농업 정책이 시작됐고 토지개혁은 그 중심에 있었다.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들이 농지를 갖는 것이 불법이 된 것이다. 이 후의 농업정책의 중심에는 강력한 탈농정책이 있었다.

보통 농민들은 이를 두고 ‘살농정책’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그대로 정확한 말이다. 저곡가 저농산물 정책으로 살 수 없는 농민들이 농촌을 떠나도록 하는 구조조정은 거의 성공적이었고 이제 와서는 더 이상 농촌에 남아있을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지난 70년의 농업정책을 실패한 정책이라고 농민들은 나무라지만 실은 농민에겐 가혹하지만 대단히 성공적인 정책을 시행한 것이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부터 시작된 농업의 구조조정은 서강학파의 시초이자 대부인 남덕우가 1974년 경제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지내며 수출드라이브 정책을 쓰는 한편 농민인구를 전체인구 대비 6%로 잡고 강력한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지금 와서 보면 그 목표는 정확하게 달성하지 않았는가.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는 충주비료공장을 비롯한 비료공장 3곳이 가동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이는 농업생산력 증강과 더불어 농가소득 증대라는 측면을 강조했지만, 반면에 이농과 탈농을 심화시키는 구조조정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80년대 이후 농업정책은 ‘경쟁력’에 방점을 찍었다. 무한경쟁의 신자유주의 아래 살아남을 농민은 정해져 있는 듯 보였고 사실상 고령농가만이 농촌을 지탱하게 되었다.

이런 배경에는 성장지상주의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제2의 한강의 기적이니 뭐니 하는 사람들이 대다수고 성장이 없는 사회는 죽은 사회라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성장신화에 목마른 사람들은 GDP 0.01%상승에 목을 매고 있다. GDP가 사람들의 행복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

작년에 100원을 번 사람이 올해도 100원을 벌면 성장률은 0%다. 그래도 100원 벌었으니 작년처럼 살면 된다. 그런데 성장을 해야 한다는 것은 인구가 더 늘어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우린 이제 인구감소로 접어들었는데도 말이다.

현재 세계적 흐름을 보면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으론 지속가능한 사회가 되긴 어렵다는 기조로 흐르고 있다. 이에 따라서 유럽의 각국들은 성장패러다임에서 빠져나오는 정책들을 펴고 있다.

특히 농업에서의 지속가능한 정책들이 여러 가지로 실험되며 기본소득 등으로 소득 불균형을 해소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유럽의 농가소득이 직접지불형식으로 이미 36%에 달함에도 도농간 격차를 메우기 위한 여러 가지 정책들이 펼쳐지고 있다.

그래서 문재인정부는 농업의 패러다임을 바꿔 보겠다고 했다. 정책기조를 농업의 공공적 가치를 중심에 두고 과거 농업정책을 뒤집어 보겠노라 장담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대통령 취임 1년 하고도 6개월이 지났는데 아무런 소식이 없다.

없는 정도가 아니라 청와대 농어업비서관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까지도 5개월이나 공석이다가 자리를 채웠으니 농민들이 분노해서 청와대 앞에서 단식농성을 오늘도 진행하고 있지 않는가. 더욱이 주무장관이 자신의 임기를 다음 총선까지라고 선언하며 장관자리에 오르니 농민들로선 이 정부가 농업개혁을 할 것이라고 믿기 어려워하고 있는 것 아닌가.

지난달 30일 서울 청와대 앞 ‘농업 밥상 살리는 농정대개혁 촉구 단식농성장’에서 충남친농연 대표자들이 연대단체 릴레이단식에 동참한 가운데 한살림연합 회원들이 농성장을 지지방문하고 있다. 연대단체 릴레이단식은 이날로 22일차를 맞았다. 앞서 ‘국민 먹거리 위기, 농업적폐 청산과 농정대개혁 촉구 국민농성단’은 문재인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29일 동안 단식농성을 진행한 바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달 30일 서울 청와대 앞 ‘농업 밥상 살리는 농정대개혁 촉구 단식농성장’에서 충남친농연 대표자들이 연대단체 릴레이단식에 동참한 가운데 한살림연합 회원들이 농성장을 지지방문하고 있다. 연대단체 릴레이단식은 이날로 22일차를 맞았다. 앞서 ‘국민 먹거리 위기, 농업적폐 청산과 농정대개혁 촉구 국민농성단’은 문재인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29일 동안 단식농성을 진행한 바 있다. 한승호 기자

농정개혁, 하긴 할 것인가

올 초 문재인정부는 헌법개정안을 제출했다가 국회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되고 말았다. 농민들은 헌법개정이 문재인정부의 농업개혁의 시금석으로 보고 농민헌법 투쟁본부를 결성하고 농업의 다양한 가치를 헌법에 반영하고자 했으나 제출된 개정안의 농업관련 부분은 너무나 초라한 것이었다.

농업의 공공적 가치를 인정한다는 단 한 줄의 헌법으로는 농민들의 요구가 반영된 것으로 보기 어려웠다. 적어도 촛불정부라면 ‘식량주권’이라는 한마디쯤은 헌법에 명토박아야 되는 것으로 농민들은 생각했다. 이는 앞으로 남아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분노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은 또 있다. 지난 9월 28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농민권리선언문’ 채택 결의안이 통과됐다. 농민과 농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광범위한 권리를 지킬 수 있는 이 선언문이 정식 채택되기까지 12월 ‘유엔총회’라는 고비가 남아있다.

하지만 한국정부는 여기에 기권을 하고 말았다. 2008년 비아캄페시나가 채택하고 유엔에 상정한지 10년만의 일로 그간 세계는 많은 변화가 있었고 그 변화의 한 가닥으로 ‘농민권리선언’이 인권이사회를 통과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부는 이런저런 핑계로 기권을 했다는 사실에 분노하는 것이다.

사실 촛불혁명도 세계정세의 변화와 함께 하는 일이었다. 2011년 이미 미국에서 벌어진 월가를 점령하라(Occupy)는 운동은 신자유주의 체계의 불평등에 대한 반발이며 이로 인한 공정하고 평등한 새로운 대안세계에 대한 출발이었다.

이러한 세계적 흐름은 촛불로 나타났고 문재인은 촛불정부를 자임함으로서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그런 대통령이 세계사의 흐름을 모를 리 없건만 농업에서의 답답함은 계속 이어진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농정패러다임, ‘농업’에서 ‘농사’로 바꿔야

오늘(30일) 드디어 ‘문재인정부의 농정개혁 방향과 실천전략’이라는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보고회가 있었다. 아마도 청와대 앞 농성장의 압박 때문인지 보고회를 성대하게 진행했다.

새로운 농정기조와 개혁 과제는 ‘지속가능 농정으로의 새로운 농정비전 설정과 농정패러다임 전환’으로 설정했다. 농정이념은 생산주의와 효율성 강조보다는 다기능성, 지속가능성에 방점을 두었고 농정목표는 경쟁력에서 국민의 삶의 질 향상으로 전환했다.

농정의 대상은 농업, 농민을 비롯해 국민과 미래세대 그리고 먹거리까지 확대했다. 또한 추진방식을 과거 중앙정부가 설계하고 시행한 것을 지방과 민간에게 넘기도록 하고 있다. 이를 통해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농촌의 지속가능한 방향설정이 가능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대통령직속 농어촌특별위원회를 둔다고 한다.

TF팀의 제안대로 될 것인지도 의문이지만 TF팀의 정책 제안들에서 어쩌면 생산의 주역인 농민들은 빠져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대통령직속 농어촌특별위원회에서 어떤 조정들이 더 있을지는 모를 일이지만 가장 중요한 생산의 지속성과 안정성에 대한 정책 제안이 빠진 듯 여겨지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인가?

그동안 진보적 농민단체들이 줄기차게 주장했던 것이 ‘식량주권’이며 ‘식량자급률 법제화’ 그리고 ‘통일농업’이었다. 식량주권은 이미 12월에 통과될 유엔 농민권리선언에 주요하게 포함돼 있으며 세계 여러 나라가 헌법으로 보장하고 있는 터이다.

기왕에 농정을 확 바꿔보겠다고 TF팀이 몇 달 동안 애쓴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이번 발표에서 뭔가 중심을 놓친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농정패러다임의 변화는 ‘농업’에서 ‘농사’로 바꿔 내야한다. 생산과 서비스라는 재화에 대한 잉여가치가 아닌, 생산을 통해 이뤄지는 모든 무형의 가치를 인정하는 ‘농사’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여기에 식량주권이 중심인 것이다. 식량주권이 곧 농민주권이고 농민의 행복을 확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 70여년을 분단된 땅에서 살았다. 이미 분단이 가져온 농업적폐는 이 땅에서 농업을 말살하는 일이었다. “마당은 비뚤어졌어도 장구는 바로 치라”고 했다. 함부로 쳐댄 장구는 선무당이 농민 잡는 불행한 일로 귀결됐다.

70년 동안의 농정을 바꿔 내려면 그동안 농정을 책임졌던 사람들이 생각을 바꾸든지 물러나든지 해야 한다. 이제 제 풀에 고꾸라지려는 농사를 살려내는 것은 문재인정부에 달렸다. 또한 농정을 바꿔 내겠다, 라는 각오로 애쓰는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도 장구채를 똑바로 잡길 주문한다.

우리 농정에 대한 속시원한 돌직구, ‘농사직썰’을 매월 1회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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