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내 이름은 김예분

  • 입력 2018.11.02 15:11
  • 기자명 심문희(전남 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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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문희 전남 구례군 마산면
심문희 전남 구례군 마산면

“여성농민회 하면서 제일 좋은 건 뭐예요?”

“내 이름을 찾은 거야. 결혼 후 누구도 나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어. 처음엔 ‘누구누구각시’, 그러다 아이를 낳게 되면 ‘누구엄마’, 그러다 보면 마을에서 댁호를 하나씩 지어주지. 대부분 고향마을 이름을 따서 ‘누구댁’. 세월이 가면서 내 이름을 잊어버렸어. 내 이름은 김예분이야.”

느지막이 낳은 딸이 얼마나 이뻤으면 이름까지 이뿐이라 지어주었을까?

“오메 이름 이뿌게도 지어줬구만. 나는 공순이랑께. 공달에 태어났다고 공것이라 공순이랑께.”

옆에 계신 언니가 한마디 거든다. 다들 자기 이름에 얽힌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으신다. 그런 이름을 찾게 되었으니 새 세상을 얻은 것 같단다. 서로의 이름을 불러가며 하하호호 웃음꽃 활짝 핀다. 어릴 적 동무생각이 절로 나신단다. 이름 석 자 저리도 좋은 것을 잊고 살았었다니, 별것이 아닌 것이라도 큰 기쁨을 가져다 줄 수도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이름 찾은 거 빼고 두 번째로 좋은 건 뭐예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여.”

여자들 목소리가 담벼락을 넘어가면 집안이 시끄럽다거나, 여자들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거나, 왜 여자들이 자기 목소리 내는 걸 막아왔나 생각이 든답니다.

여자로 태어난 것이 죄였을까? 지금껏 말 한마디 크게 못하고 기껏 이야깃거리라 해봤자 어젯밤에 보았던 연속극이나 가족들 자랑거리나 남 흉보기 급급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세상 돌아가는 것에 관심이 생기게 됐으니 이것 또한 여성농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며 변화된 나의 모습이라며 스스로를 대견해 하십니다.

쉼 없이 일만 하고, 눈앞에 보이는 것이 세상의 전부인줄 알았는데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알게 되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선 서로 힘을 모아야 하며 행동을 해야 함을 이야기 하십니다.

농사짓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걸, 까만 얼굴 굵은 손마디가 더 이상 숨기고 싶은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해준 것이 여성농민회랍니다. ‘건강한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당신들이 세상의 주인입니다’라고 말해주는 이들을 만나게 된 것도 여성농민회를 통해서랍니다.

농촌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면서 사회생활이란 걸 처음 해본 건 ‘부녀회’를 통해 마을의 대소사를 챙기는 정도였던 게, 다양한 모임과 조직이 만들어지고 활동하지만, 우리 같은 나이든 사람을 알아주고 챙겨주는 건 당신들뿐이라네요.

내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여성농민이라고 불러준 이, 그것이 바로 여성농민회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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