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정부가 비축미를 공매할 움직임을 보이자 농민단체들이 발 빠르게 사전차단 움직임에 나섰다. 정부가 논의를 시작하기도 전에 목소리를 내는 농민들에게선 겨우 회복된 쌀값을 다시 내려가게 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내비쳤다. 그러나 결국 공매 결정을 막지는 못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의장 박행덕, 전농)과 사단법인 전국쌀생산자협회(회장 김영동, 쌀협회)의 주요 간부 30여명은 지난 1일 청와대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공매계획을 맹비난했다. 정부는 지난 7월에도 쌀값의 상승세에 놀라 공매를 계획한 적이 있었지만 결국 실행하지는 않은 바 있다.
박행덕 전농 의장은 “쌀값이 약간 올라가니까, 아니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제자리를 잡아가니 비축미를 풀려고 한다”라며 “대통령은 대통령답게 약속을 지켜라. 또 이 나라의 농식품부 장관, 서면으로 한 약속까지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성공하겠나?”고 질타했다. 전농은 앞으로 추이를 지켜보며 철저한 투쟁에 나설 것이라 선언했다.
정학철 쌀협회 정책위원장은 “올해 쌀 생산량이 개인적으로는 15% 줄었다. 주변에도 최소 5%에서 30%까지 적게 수확한 사람이 태반”이라며 “우리 농민들에게는 생산량이 많다고 다른 농사지으라면서 실제로는 쌀이 부족한 상황에 이르렀다”라고 정부의 양곡 정책 실패를 꼬집었다.
그는 “수확기 구곡방출은 처음 있는 일이다. 수확기에는 쌀 가격이 떨어져야 하는데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그렇다 해도 쌀값은 농민들이 요구하는 300원이 아니라 240원 정도 된다. 15년 전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하면 1년 농사비는 어떻게 보장받으라는 건지 모르겠다”고 호소했다.
한편 이날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이개호)는 향후 5년간 적용될 쌀 목표가격을 80kg당 18만8,192원으로 잠정 결정하고 국회에 제출했다. 농업계와 정치권이 주장한 21~24만원대는 물론이고 국정감사 기간 내내 이개호 장관이 주장한 ‘19만4,000원 이상’에도 못 미치는 가격이어서 큰 파장이 예상된다.
김기형 전농 사무총장은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협의한다고는 하지만 농민들의 주장인 밥 한 공기 300원(24만원)에는 한참 못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라며 “농민들이 원하는 목표가격이 나올 수 있도록 투쟁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농민단체가 먼저 기선제압에 나서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2일 예정된 물가관계차관회의에서 공매 계획이 논의 대상에 올랐다고만 알고 있다”고 밝혔다.
농민들은 “세금이 오르고, 물가가 오르고, 막된 세상 혈압이 올라도 쌀 가격은 항상 아래에 있다”며 ‘밥 한 공기 300원’을 지지해 줄 것을 요청하는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했다. 전농과 쌀협회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각 지역 국회의원 면담에 이어 회의가 열리는 것으로 알려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노숙투쟁을 이어갔다.
2일 오전 회의 시작 시간에 맞춰 전농과 쌀협회는 다시금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강력한 규탄과 함께 공매계획 철회를 요청했으나, 결국 정부는 회의 종료 뒤 제11차 물가관계차관회의에서 쌀값 안정화를 위한 비축미 5만톤을 방출하고 영세자영업자를 대상으로 한 가공용 쌀 1만톤도 추가공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