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자판기 커피 한 잔도 못 마시는 230원

  • 입력 2018.11.03 13:24
  • 기자명 김은진 원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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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진 원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 해 보면 의외로 놀라운 것 중 하나가 아직도 우리나라가 밥쌀을 수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특히 먹거리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조차도 우리가 밥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하기 시작한 것이 이미 13년을 넘어서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상상도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어쨌든 사람들이 밥을 위한 쌀을 살 때는 적어도 수입산 쌀을 사는 것이 아니라 국산 쌀을 사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들이 소비한 적이 없으니 그런 쌀이 유통될 것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이다.

밥쌀 수입은 1994년 쌀 수입 협상에서 쌀 시장개방을 10년간 유예하는 조건으로 의무 수입량이 정해졌다. 10년 후인 2004년 또다시 10년간 유예하면서 의무 수입량은 2배로 늘었고 그 가운데 일정량은 반드시 밥쌀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2014년 또다시 쌀 재협상이 시작돼야 할 무렵, 농민들의 요구는 2004년의 조건을 현상유지하자는 것이었다. 사실 농민들이 진짜 원하는 것은 쌀부터 각종 농산물을 수입하지 않고 국내 자급률을 높이는 것이었겠으나 과거의 경험에 비춰 더 늘어날 것을 우려해 현상유지를 선택한 것이었음은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러나 2014년 농민들과 국민들은 지난 1994년이나 2004년과 같은 거센 항의 또는 시위를 하지 못했다. 2014년은 우리에게 쌀 시장 개방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절실한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짐작이 가능하겠지만 그해 봄, 수학여행을 떠났던 300여 명의 고등학생들이 배가 침몰하면서 세상을 떠났고, 그 진상을 파헤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온 국민이 세월호의 진실을 요구하던 때 박근혜정권은 쌀 시장 전면개방을 위한 서류를 제출했다. 그렇게 우리나라는 2015년 쌀 시장 전면개방 국가가 된 것이다.

2015년, 농민들이 주장했던 것은 단 하나였다. 이제 시장을 개방했으니 그동안 유예조건이었던 것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즉, 밥쌀 수입을 중단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또다시 밥쌀 수입을 강행했고 그해 겨울 그렇게 우리는 백남기농민을 또 떠나보냈다.

이런 마당에 새롭게 들어선 촛불정부에 대해 농민들이 기대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적어도 밥쌀만큼은 수입하지 않을 배짱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농민들은 2017년 대통령선거가 끝나자마자 그 전에 이뤄진 밥쌀 수입공고를 내려달라고 요구했다. 2018년 지방선거가 끝나자마자 올라온 밥쌀 수입 공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언제나 그랬듯이 농민들의 이런 요구는 이뤄지지 않았고 그렇게 수입이 결정된 밥쌀을 보니 대략 가격이 100g당 50원에서 65원으로 낙찰됐다.

이 가격이 그리 매력적이었는지 가을 본격적인 햅쌀이 나오는 시기에 언론들은 ‘쌀값 폭등’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뽑기 시작했다. 아무리 계산을 해봐도 지금 국산쌀 100g의 값이 230원 남짓인데, 그것도 몇 년 새 계속 떨어지던 쌀값이 겨우 5년 전 쌀값으로 회복됐을 뿐인데 그것을 폭등이라고 표현하는 심리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수입산 밥쌀이 60원 남짓인데 그 4배에 가까운 국산쌀값이 억울했던 것일까?

농산물 수입개방 이후 우리나라는 밥상에 올라오는 농산물의 대부분에서 ‘국산’이 가지는 프리미엄은 사라진 지 오래이다. 그나마 그것을 유지하는 유일한 것이 쌀이었다. 고기를 먹으면서 국산이 수입보다 비싼 것에 대해 이렇게 요란하게 문제 삼은 적이 있었던가? 오히려 국산이니까 값을 더 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 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국산이니까 당연하다’는 그 목록에 농산물로서는 겨우 자리를 보전하고 있던 ‘쌀’에 대해 왜 이리들 난리인가?

급기야 정부가 이 난리판에 화답을 했다. 폭등은 말도 안 된다는 화답이 아니라 정부재고미를 풀어 값을 내리게 하겠단다.

지금 청와대 앞에서는 약 2달째 농민들과 소비자들이 단식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단 하나이다. 농민들이 안심하고 농사짓고, 그래서 국민들이 안심하고 밥상을 차리는 것. 그리고 그 농사와 밥상에서 가장 중심은 역시 밥이고 그 밥을 지을 쌀이다. 지금 정부는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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