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원비어천가

  • 입력 2018.11.02 11:16
  • 기자명 박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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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박경철 기자]

올해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 국정감사는 마무리됐지만 기억에 남는 장면이 별로 없을 정도로 밋밋했다. 불호령이 떨어지고, 갈 곳 잃은 피감기관 증인의 눈동자가 허공을 헤맬 정도의 긴장감은 찾기가 힘들었다.

대부분의 농해수위 피감기관 국감이 그랬지만 농협 국정감사는 한술 더 떴다. 긴장감보다는 오히려 ‘원비어천가’가 눈에 뗬다. 다수의 의원이 본격적 질의에 앞서 ‘잘하고 있으니 더 잘하라’는 식으로 김병원 농협중앙회장을 칭송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평소에 개인적으로 존경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피감기관 대표증인을 이렇게 치켜세우는 것도 보기 드문 경우다.

의원들이야 인사치레라고 생각했겠지만 이를 지켜보는 농민조합원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공룡처럼 커져버린 농협의 막강한 영향력으로 인해 의원들도 설설 기는 것으로 보진 않았을까? 물론 김 회장이 협동조합 정신, 농심을 앞세운 경영과 농가소득 5,000만원 달성 등의 목표 제시 등 앞선 회장들보다 눈에 띄는 행보를 보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농협 조합장이 지역에서 소통령으로 군림하고, 농협중앙회장이 농민대통령으로 불리는 것이 농민들이 느끼는 현실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야 김 회장과 의원들이 형님, 아우 한들 알 도리가 없지만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 신분으로 국정감사장에서 친분을 드러내거나 인사치레를 하는 것이 농민들 입장에서 그리 달가울 리 없다.

분위기가 이렇다보니 살얼음이 껴있어야 할 국감장이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호언장담했던 김 회장의 발언을 문제 삼아 “군자의 덕목은 언행일치”라고 꼬집는 한 의원의 질의에 김 회장은 “군자가 못됐나 보다”라고 웃으며 받아쳤다. 회초리를 호되게 들어야 할 국정감사장이 유머일번지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현행 4년 단임제인 농협중앙회장 임기의 연임제 변경 필요성을 묻는 의원 질의에 허식 농협중앙회 부회장은 “현 회장의 임기 동안 괄목할만한 성과로 농업인 실익사업의 토대를 마련했다. 임기 4년은 굉장히 짧기에 연임으로 가는 게 좋겠다”며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있는데, 강산이 바뀌려면 10년이 필요하다. 김 회장의 연임 관련해서 이 속담으로 대신하겠다”고 진술했다. 우회적으로 표현했지만, 국정감사라는 공개석상에서 농협이 김 회장의 임기 연장을 추진하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앞서 김 회장은 4년을 8년처럼 일하겠다며 결코 연임 생각이 없음을 단언해왔다.

원비어천가와 대표증인의 농담식진술, 김 회장의 연임에 대한 우회적 표현까지, 긴장감이 사라진 농협 국정감사는 농민들에겐 물음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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