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에 농민은 없었다

  • 입력 2018.10.28 17:37
  • 수정 2018.10.29 09:41
  • 기자명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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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호 기자
한승호 기자

지난 24일 강원도 홍천의 어느 국도변을 지나는 길이었다. 농민 한 명이 낫으로 콩대를 베고 있었다. 2,000여 평에 달하는 넓은 콩밭에서 일하는 이는 그 뿐이었다. 다가가 물었다. 먼저 올 여름 폭염과 가뭄에 콩 작황이 별로라고 말했다. 고령화된 농촌에서 일손 구하기도 쉽지 않다고 했다.

구한다 한들 며칠씩 일해야 마칠 수 있는 상황에서 10만원 수준의 일당을 감내하기가 무척 부담스럽다고 했다. 그는 올해 콩값도 그리 좋지는 않을 것 같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하여,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베고 말리고 타작하는 작업을 홀로 하기로 했다는 그의 말에선 씁쓸함마저 진하게 묻어났다.

지난 26일 농림축산식품부 및 산하기관에 대한 종합감사를 끝으로 국회 국정감사가 마무리됐다. 올해도 어김없이 농업계의 단골소재들이 국감 이슈로 다뤄졌다. 쌀값과 직불제 개편방안, 농산물 가격불안과 농가소득 하락, 농약허용물질목록관리제도(PLS) 시행, 농촌의 고령화와 소멸 문제 등 매년 반복되는 문제들이 국감장에서 논의됐다.

특히, 향후 5년간 쌀값의 기준점이 될 쌀 목표가격 재설정을 앞두고 정부와 국회 간의 팽팽한 기 싸움도 벌어졌다. 23일엔 강원도청에 대한 현장국감이 열렸다. 평창올림픽 이후 가리왕산 복원 문제, 도의 남북협력 사업, 농가부채 증가, 친환경농업 감소 등의 사안이 거론되며 농업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최문순 강원도지사의 답변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앙코 없는 찐빵’이라고 할까. 이번 국감에선 농민의 목소리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국감 첫날 참고인으로 참석해 PLS 시행 유예를 주장하는 김제 농민의 발언이 거의 유일무이했다. 여야 의원들이 농민들을 직접 만나 현장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자리였던 강원도청 국감 현장시찰은 강원도립화목원이라는 다소 생뚱맞은 장소 선택으로 인해 시찰의 의미가 퇴색되고 말았다.

서두에 언급한 농민은 특별한 사례가 아니다. 이 시대 어느 농촌에서건 쉽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다. 농민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자 하는 여야 의원들의 의지가 못내 아쉽다. 국감에서 지적하고 논의되는 정책의 시작과 끝은 결국, 농민을 위한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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