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희망 만드는 농촌협동조합⑧] 충북 옥천 옥천살림협동조합

순환·공생의 지역공동체를 위해
끈질기게 살아남은 게 성과 … 농민, 지역농정의 주체로

  • 입력 2018.10.26 13:04
  • 기자명 박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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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박경철 기자]

2012년 협동조합 기본법 시행 이후 협동조합은 폭발적 증가세를 보였지만 현재 절반 가까이 사업을 하지 않고 있다. 그만큼 운영이 어려워서다. 매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협동조합의 운영원리를 지키며 지역에서 희망을 만드는 협동조합과 사회적협동조합을 찾아 농업·농촌·농민의 현주소를 조명하고자 한다.

주교종 옥천살림협동조합 상임이사(옥천국농민회 회장)가 관내 학교급식에 납품될 친환경농산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주교종 옥천살림협동조합 상임이사(옥천국농민회 회장)가 관내 학교급식에 납품될 친환경농산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땅도 살리고. 사람도 살리고, 지역도 살리고자 농사를 천명으로 삼아온 충북 옥천의 친환경 농민들이 스스로 일어섰다. 옥천살림협동조합(옥천살림)의 얘기다. 옥천살림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 친환경 학교급식 등을 기반으로 10년이라는 긴 세월을 끈질기게 버텨내며 순환과 공생의 지역공동체를 위한 씨앗을 뿌려왔다. 지난 22일 주교종 옥천살림 상임이사(옥천군농민회 회장)를 만나 자세한 얘기를 확인했다.

옥천살림의 태동엔 옥천군농민회와 친환경 농민들이 있다. 1990년대 만들어진 옥천군농민회는 다양한 활동 속에서 지역 주민들과 할 수 있는 일상적 사업을 고민하다 2002년 친환경 농민들과 옥천 흙살림이라는 친환경농업단체를 만들었다. 이후 옥천군농민회와 전교조,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학교급식운동본부를 구성해 조례 제정 운동에 나섰고, 2007년 학교급식 조례가 제정되기에 이르렀다.

조례도 만들고, 예산도 마련했지만 학교급식 사업을 맡을 조직이 없었다. 지역의 가장 큰 생산자 단체인 농협조차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고 이를 거부했다. 초·중·고 19개소와 유치원·어린이집 32개소에 납품해야 하는데 멀리 떨어진데다 학생 수가 많지 않아서다. 결국 옥천 흙살림 회원 20여명이 2008년 옥천살림영농조합법인을 세워 학교급식 사업에 뛰어들었다. 주 상임이사는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농사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나서게 됐다”고 회상했다.

학교급식 조례가 전국적인 바람을 타고 많은 지역에서 만들어졌지만 지역 생산자인 농민들이 나서 사업을 진행시킨 사례는 옥천이 유일하다. 다른 지역에선 섣불리 시작도 못했고, 일부 지역은 농협이 부분적으로 대행하는 정도였다. 만약 일정 정도의 규모나 다른 조건들이 있었다면 아예 시작도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학교급식은 특수성으로 인해 규정도 까다롭다. 사업 시작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셈이다.

농사만 짓던 이들이 벌인 일이다보니 시행착오도 겪을 수밖에 없다. 초기엔 무농약 백미만 공급했는데 학교 점심시간이 됐지만 쌀이 배달되지 않아 난리가 나기도 했다. 일하다 말고 부랴부랴 배달에 나서는 일도 있었다. 농사용 트럭을 끌고도 가고, 두부를 포장도 안한 채 판째로 들고 가기도 했다. 옥천살림은 이런 우여곡절 속에 시간은 걸렸지만 서서히 자리를 잡아갔다. 물론 한 달에 한 번 행정과 생산자, 학교가 모여 학교급식 운영위원회를 통해 서로의 형편과 사정을 이해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또 다른 배경엔 옥천군농업발전위원회(위원회)가 있다. 옥천군이 지난 2007년 조례를 통해 농민과 행정이 만나는 최초의 상향식 민관협의체를 만든 것이다. 로컬푸드로 유명한 완주가 행정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경우라면 옥천은 농민들이 적극적인 반면 행정은 더딘 편이었는데 위원회를 통해 지속적인 요구로 행정을 견인했다.

하지만 이 위원회는 2016년 해체됐다. 학교급식 외에도 지역농업의 발전에 일조했지만 길들이기라는 명목으로 옥천군의원들이 조례를 변경해 유명무실화시킨 것이다. 공들여온 주민자치의 탑이 일순간에 무너졌고 위원회의 복원은 과제로 남게 됐다.

옥천살림은 10여년의 세월동안 지역에서 생산한 친환경 농산물로 학교급식과 어린이집 급·간식, 사회복지시설·경로당 공공급식 백미공급, 우리콩두부, 순두부, 과일주스 등의 가공사업, 옥천푸드직매장, 꾸러미, 농민장터, 생산자 지원·교육, 농촌체험 등의 사업을 이어왔다. 2015년엔 옥천군에서 옥천푸드유통센터를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지난 2015년엔 영농조합법인에서 협동조합으로 조직을 변경하고 사회적기업 인증도 받았다.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하고 공공성도 높이기 위해서다.

옥천살림은 어느새 조합원이 100여명이 됐고, 연간 이용 회원도 850명이 됐다. 현재 연매출은 17억원 정도고 상근자도 11명이다.

주 상임이사는 “옥천살림이 살아남았다는 것이 성과”라고 말했다. 10년이란 기간 동안 끈질기게 살아남은 것이 농민들이 목소리를 내고 행정이 하는 사업에 의사결정권을 갖고 참여하는 배경이 돼서다.

주 상임이사는 또한 “줄어드는 인구 속에서 공장 유치 등으로 지역이 발전할 수 있음은 이미 허구로 드러났다”며 “농업의 쇠퇴 속에서 작은 지역이 살아남으려면 지역경제의 기초가 농업이라는 인식의 전환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로컬푸드직매장이 유행처럼 번지는 상황에 대해서도 “새로운 유통망과 판매장으로 접근해선 실패할 것”이라며 “농민 스스로 참여하는 일상적인 생활운동으로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주 상임이사는 특히 “농민들이 민관협치 속에서 의사결정을 늘려 지역의 농업정책을 세우는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옥천살림이 더욱 노력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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