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재촌탈농

  • 입력 2018.10.21 20:31
  • 기자명 구점숙(경남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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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점숙(경남 남해)
구점숙(경남 남해)

계절이 바뀌는 이 즈음이면 여기저기서 부고문자가 날아듭니다. 소식을 접하게 되면 상주와의 관계 정도에 따라 마음속으로 고인의 명복을 빌기만 할 때도 있고, 조의금만 보낼 때도 있다만 아무리 바빠도 직접 조문해서 상주를 위로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며칠 전에도 그랬네요. 이 바쁜 가을 일철에 아는 언니가 친정아버님이 운명하셨다는 연통을 해서 일 끝나자마자 한걸음에 장례식장으로 갔습니다.

눈자위가 빨개진 상주언니를 잠시 위로하고는 조문객들끼리 장례식에서나 만나지는 바쁨에 대해, 서로의 일상에 대해 얘기를 나눴습니다. 그 자리에서 아주 오랜만에 어떤 언니를 만났습니다. 한 때는 단체 활동도 같이하며 일상을 나눴는데 요즈음에는 얼굴 마주치는 일이 없어 궁금하던 차에 그리 만났으니 물어 볼 것이 많았습니다.

농사일 대신 요양보호사 일을 하고, 주말에도 파트타임으로 일을 한다 했으며 그 많은 농사도 남편이 알아서 한다 했습니다. 수도작 농사이니 기계화율 91%에 맞게 알아한다는 것이겠지요. 대신 기계값이 만만찮을 것도 추측가능하지요.

더 궁금한 것, 언니네 정도의 농사규모이면 굳이 바깥으로 경제활동을 나가지 않아도 되지 않나요?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더 솔직하게 답변을 해줍니다.

너, 촌 실정 모르나? 그래 너 말처럼 남편이 돈을 제법 번다. 200마지기가 넘는 쌀농사이니까. 그런데 그게 우습게도 가을에만 돈이 나오다보니 새 기계 사고 이자 넣고 농비 갚고 하면 다달이 들어가는 생활비나 애들한테 쓸 돈이 내게 안 주어진다, 라고 합니다. 맙소사, 갖가지 생각이 스치고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여성농민을 재촌탈농하게 만드는 것이 이것이기도 하구나. 농사를 늘려도 돈이 안 되니까 바깥일을 택하기도 하고, 설령 농사를 많이 짓더라도 경제주권이 안 주어지니 실리를 쫓아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지요.

기 1,000만원을 손에 쥐고 있으면서도 매달 생활비를 나눠주지 못 하는 이유도 눈에 선합니다. 큰 기계들이 고장 나면 새 기계로 바꾸거나 괜찮은 농지를 장만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 앞서겠지요.

농민들은 자본주의적 이윤을 더 남기는 일보다 세습자산을 늘여 다음세대에도 농사가 수월하도록 한다고 어느 학자가 말하더니 그 훌륭한 장점도 한국사회의 가부장성과 맞물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네요. 여성농민이 직업인으로 서기 어려운 이유도 참 여러 가지입니다.

그나저나 농사가 있는데도 다른 일을 할 경우, 주말이나 휴일도 없이 틈틈이 농사일을 도와가며 일을 해야 할 텐데 그 고단함을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그렇게도 사네요. 이 훌륭한 언니들이 말이지요. 어디서든 멋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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