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300!

“밥 한 공기 300원에 농민들이 명품을 구입할 것인가? 아파트를 투기할 것인가?”

  • 입력 2018.10.21 11:40
  • 기자명 김훈규(경남 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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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규(경남 거창)
김훈규(경남 거창)

300원짜리 풍등(風燈) 하나가 43억 원을 집어삼켰다는 뉴스가 있었다. 고양시 저유소 화재의 원인을 한 외국인이 날린 풍등에 의한 실화(失火)로 결론을 내렸고, 스리랑카인은 체포되어 조사를 받고 풀려났다.

실화라는 속보에 실소(失笑)를 금치 못하고 더 자세한 뉴스를 뒤적거리는데, 문득 ‘300’이라는 제목의 영화가 생각이 났다. 기원전 그리스에서 벌어졌던 페르시아군과 스파르타 용사들 간의 전투를 마치 만화영화처럼 그렸던, 보는 내내 실제 역사를 어찌하면 저렇게 허구적으로 미국사람들은 잘도 만들어낼까 싶었던 영화였다. 최근에 해전을 소재로 다시 만들어졌다는데 두어 시간 박진감 넘치게 웃어볼라치면 억지로라도 찾아봐야할지도 모르겠다.

300원짜리 풍등 사건과 더불어 영화 300의 시대적 내면에 깔린 주인공이 처한 현실을 두고 웃을 수 없는 터이나, 또 다른 화두 ‘300’이 주는 웃지 못 할 현실이 자주 뉴스거리로 올라온다.

300원. 쌀밥 한 그릇 값 이야기이다. 정권이 4번이나 바뀌는 동안에도 농민들은 밥 한 공기 값 200원으로 버텼는데, 이즈음에서 최소한 300원은 해달라는 요구가 그렇게 무리한 것인가에 대해서 소위 ‘논쟁’이 붙었는데, 뜨거우니 응당 여러 인터넷 검색 공간에서 전면에 다뤄지기도 한다.

80kg 한 가마 19만원도 안 되는 쌀값을 24만원 정도는 책정해야 밥 한 공기값이 300원 된다는 농민들이 내는 목소리를 단순한 숫자놀음으로 치부하고 있고, 심지어 쌀값을 바라보는 여러 매체의 언급은 단순히 가격에만 머물지 않고 있다. 남아돌아서 굳이 값을 올리지 않아도 될 것을 ‘친북정권’이 북한에 다 퍼주는 바람에 이 난리통이 났다는 이야기, 그리하여 나라의 곳간에 쌀이 동이 나기 시작했으니 민생의 혼란이 극에 달하고 있다는 이야기, 쌀값 뛰는 폭이 집값보다 더하니 비정상적인 국가로 가고 있다는 이야기마저 횡행한다.

대단한 쌀값의 위력이다. 농산물 가격의 인상으로 인한 ‘서민생활 불안’에 대한 기사가 일찍이 언론사들이 가장 선정적으로 만들 수 있는 제목으로 갖다 붙이는 특출한 재주가 있다는 것은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이번 쌀값에 대한 자극은 목표가격 결정 기한을 앞두고 유독 요란하다. 밥 한 공기 원가 300원으로 오르면 온 나라가 난리통이 될 심산이요, 300원으로 농민들은 전체 국민의 저항을 받게 될 시대적 전변 앞에 놓일 참이다. 급격한 쌀값 인상이 도리어 농민들에게는 독이 될 수 있다고도 조언하는 전문가가 있는데, 곧 죽을 농민들은 그런 독이라도 마셔보고 죽자는 심경 아니던가.

300원으로 오른 쌀값으로 보편적 농민들이 명품을 구입할 것인가, 서울에 아파트를 사서 투기를 할 것인가. 그래봤자 도시 노동자의 평균 소득수준에 따라갈 이 얼마나 있겠는가. 늙어가는 농민들이 좀 더 벌어서 좀 더 질 좋은 삶을 추구하면 되지 않을 이유는 뭔가. ‘서민경제! 서민경제!’ 유독 떠드는데, 그렇다면 농민들은 서민의 축이던가!

농민이 고마워 할 것 하나 없는 이 시대의 농정 앞에 진정 궁금하다. 300원 짜리 풍등 하나 날린 죄로 조사를 받고 풀려나던 스리랑카인은 연신 “고맙습니다!”를 외쳤다 하는데, 그는 도대체 무엇이 그리도 고마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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