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수당, 입법화까지 무엇이 남았나

전여농 “농민수당 아닌, 여성농민 배제하는 농가수당”
개별농민 대상으로 지정하기엔 현실적 어려움 산재
“최저가격 보장 등 근본적 소득보전 뒤따라야” 지적도

  • 입력 2018.10.20 11:10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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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린 ‘농민수당의 올바른 실현을 위한 국회 토론회’에서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원들이 토론회를 주최한 의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여성농민들은 “여성농민을 배제시키는 현재의 농민수당이 그대로 확산돼서는 안 된다”고 의견을 모았다. 한승호 기자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린 ‘농민수당의 올바른 실현을 위한 국회 토론회’에서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원들이 토론회를 주최한 의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여성농민들은 “여성농민을 배제시키는 현재의 농민수당이 그대로 확산돼서는 안 된다”고 의견을 모았다. 한승호 기자

 

전남 해남군이 최초로 ‘농민수당’이라는 이름의 농가지원책을 결정한 뒤 각지의 호응이 이어지면서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농민수당은 확산이 기정사실화 됐다. 이제 입법화를 통한 전국적 시행을 추진할 동력은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현재 추진되고 있는 농민수당이 모든 농민을 감싸지 못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15일 본지 주관으로 열린 ‘농민수당 확산 및 입법 추진을 위한 토론회’에서 발표자로 나선 정영이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회장 김순애, 전여농) 사무총장은 “여성농민을 배제하는 형태로 농민수당이 확산돼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발표를 통해 깊은 우려를 표했다. 불과 이틀 뒤 전여농은 ‘농민수당의 올바른 실현을 위한 국회토론회’를 스스로 열어 여성농민들이 이 사안을 얼마나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는지 드러냈다. 그러나 한편으론 모든 농민이 지급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만을 앞세우기 어려운 녹록지 않은 현실도 보인다. 두 토론회의 내용을 토대로 핵심 쟁점과 입법화 추진에 관한 이야기를 정리했다.

농민수당? 농가수당?

농가인구의 구성 성비는 5:5에 가까운 반면 ‘농가주’인 농업경영체 경영주의 비율은 남성이 압도적으로 높다(73.6%). 전여농의 활동으로 농가에 속한 여성농민이 스스로 공동경영주가 되는 것이 가능해졌지만, 공동경영주로 등록된 사람 모두가 남편과 함께 농사짓는 여성농민이라고 가정해도 그 비율은 전체의 1.4%에 불과하다. 남편과 함께 가구에 속해 있는 여성농민이 농가 중심의 정책에서 소외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 ‘공동경영주’라는 위치마저도 ‘농가주’의 지위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지 않아, 여성농민들 입장에선 가장 성불평등적인 모습을 보인 농정 중 하나였던 농업경영체 등록제가 또 하나의 불평등을 낳는 꼴을 지켜보고 있는 셈이다. 또 경영체 등록을 기준으로 지급할 경우 비록 기여 수준은 낮으나 엄연히 농업에 헌신하고 있는 고령농·은퇴농이 배제되는 문제가 있다.

여성농민들 사이에선 농민수당이 사실상 ‘농가수당’으로 확산되고 정책화 돼버릴 경우 이를 바로잡기 위해 또 다시 수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갈 투쟁과 입법 활동을 겪어야만 한다는 위기감이 고조돼 있다. 이춘선 전여농 정책위원장은 “국민과함께하는농민의길(상임대표 김영재)의 농민단체들이 정책화를 처음 논의할 때 여러 이름이 거론됐는데 농가 단위로 지급된다면 여성농민이 배제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농민수당으로 정해졌음에도, 이후 여성농민들과 깊이 논의되지 않아 실질적인 정책은 농가수당으로 흘렀다”며 “농민수당은 그 목적에 나와 있듯이 공익적 가치를 보상하는 수당이고, 그 가치를 실현하는 것은 개별농민”이라고 강조했다.

 

‘농민’수당 하려고 보니…

그런데 대상을 ‘개별농민’으로 확대하려고 보니 여러 가지 문제점이 드러난다. 우선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불어나는 예산이 발목을 잡는다.

이수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상임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농업경영체에 속한 전국 240여만 명에게 월 20만원의 농민수당을 지급한다고 가정할 경우 6조원에 가까운 예산이 소요된다. 현재 약 14조원 규모인 농식품부 전체 예산의 절반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박경철 충남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다수의 농업직불금 중 친환경농업직불금만 남기고 기본소득으로 통합하면 농가 기준으로는 월 50만원까지 지급할 수 있다”고 봤다. 총 비용은 6조5,400억원으로 개별농민 기준으로는 역시 월 20만원 대 수준이 된다. 생산성 향상 등을 목적으로 하는 간접지불 예산까지 전부 통합해 직불제 전체를 농민수당으로 개편해야만 실현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한편 농민수당 도입운동을 주도했던 전농에선 면적에 기초한 현재의 논·밭 직불금은 소득보전을 목적으로 하는 만큼 그대로 두고, 농민수당은 농업예산을 증액해 공익적 가치 실현에 대한 추가적 보상의 개념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직불제 개편이든, 대규모 증액이든 이를 바탕으로 개별농민 모두에게 농민수당을 지급하는 건 천지개벽 수준의 농정개혁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임은 분명하다. 때문에 일단 속도를 내 농가 단위로 도입을 확정 지은 후 개별 농민을 대상으로 확대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두 번째는 수혜 대상을 과연 ‘진짜 농민’에만 한정할 수 있겠는가하는 문제다. 강진군 출신인 강광석 전농 정책위원장은 “강진군농민회가 처음으로 논밭경영안정자금을 추진할 때 여성농민에 대해선 전혀 생각을 못했다”고 인정하며 “농민수당은 그 취지에 맞게 여성농민을 포함한 전 농민이 받아야 한다는데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도 “전 농민을 대상으로 하고자 할 경우 실제로 농사짓지 않는 사람이 농민수당을 받는 사례가 굉장히 많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경영체를 등록하고 논·밭 직불금을 받는 ‘농가’로 대상범위를 정한 이유가 있었다는 얘기다.

현재의 법률은 △1,000㎡ 이상 농지를 경영·경작하거나 △수확물의 연 판매액이 120만원 이상이거나 △1년 중 90일 이상 농업에 종사하거나 △영농조합법인·농업회사법인에 1년 이상 고용된 사람을 한데 묶어 ‘농업인’으로 분류하고 있다. 김은진 원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 가운데 마지막 조항을 예로 들며 “이 법률을 적용할 경우 모든 농업인을 현재 농민수당의 취지에 맞는 (직접 농사짓는) 농민으로 분류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여러가지 제안들

개별농민 단위의 지급을 전제로 법제화 방안을 준비한 김 교수는 “법이 제정된다면 그 시행을 위한 위원회가 실질적인 결정권을 가지도록 하고 농민의 참여가 보장돼야 한다”라며 “지급 대상 결정에 대한 재량권을 주고 구체적인 지급 대상을 매년 정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강 위원장은 “개별농민 단위 지급을 위해서는 농업활동을 하는 농민을 특정하기 위한 법률적 장치 마련과 실제 농업실태가 어떤 정도인지 판단하는 현장 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견해를 보였다. 또 전국에서 리 단위로 ‘농민수당 집행위원회’를 운영, 공무원의 감독 하에 마을 주민들이 자치적으로 지급 대상을 정하게 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또 농민수당은 그 정의와 성격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소득격차 해소를 위한 기본소득의 범주에서 벗어나기 어렵고, 따라서 그 한계 또한 명확한 만큼 실질적으로 농민의 소득을 보전할 수 있는 정책 실현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이무진 전농 광주전남연맹 정책위원장은 “농민수당 실시를 이끈 전남 농민들은 이와 더불어 가격안정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마찬가지로 지자체에서부터 시행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은진 교수 또한 “농민수당이 국가가 농업을 위해 엄청나게 배려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데 이는 시혜적 조치이고 직불제와 별로 차별성이 보이지 않는다”며 “국가가 농산물의 최저가격을 보장하고 일정량을 수매해 기본적인 소득이 보장된 후에야 농민수당이 제 가치를 발휘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앞서 15일엔 본지 주관으로 ‘농민수당 확산 및 입법추진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김은진 원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앞서 15일엔 본지 주관으로 ‘농민수당 확산 및 입법추진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김은진 원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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