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사장 김경호, 공사)의 가락시장 하차거래 추진이 다시 한 번 커다란 역풍을 맞았다. 지난 9월부터 가락시장에서 양배추 하차거래가 의무화된 가운데 겨울양배추 출하를 앞둔 제주 농민 180여명이 지난 18일 서울시청을 찾아 절박한 심경을 표출했다.
가락시장에선 시장 내 환경개선과 물류효율 증대를 위해 양배추·대파·무·양파 등 차상거래 품목의 하차거래 전환이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농식품부의 외면과 공사의 밀어붙이기식 추진으로 하차거래에 따른 비용부담이 대부분 출하자에게 전가되고 있다. 해상운송을 하는 제주는 늘어나는 물류비 부담이 특히 커서 도저히 하차거래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게 현장 목소리다.
농민들이 서울시청을 찾은 18일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서울시 국정감사가 있던 날이다. 농민들은 시청 입구에 모여 국감장에 도착하는 국회의원들에게 자신들의 성난 목소리를 전한 뒤, 시청 광장 근처에서 오전 내내 규탄대회를 진행했다.
애월농협(조합장 강경남) 추산에 따르면 제주 양배추는 하차거래 시 8kg망당 1,100~1,600원의 물류비 증가가 예상된다. 양배추 12월 평년가격이 망당 5,000원 미만임을 생각하면 엄청난 비용이다. 공사가 팰릿당 3,000원을 지원한다지만 이는 단위를 환산해 보면 물류비 증가분의 2%에 불과하다. 나머지 98%의 비용부담을 고스란히 출하자가 지게 되는 것이다.
김학종 제주양배추 하차경매 비대위원장은 “제주가 겨울철 양배추·무·감귤 등을 대부분 공급하고 있음에도 서울시와 공사가 거래방법을 멋대로 바꿔서 농민들을 괴롭히고 있다. 이대로라면 유통비용 때문에 소득이 안 나 양배추를 시장에 보내고 싶어도 못 보낸다. 지금이라도 서울시장은 제주 농민들과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박행덕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은 연대사를 통해 “우리 농민들은 돈 못 벌고 빚에 허덕이며 시키는 대로 다 해왔다. 지금껏 저곡가 정책으로 그만큼 우려먹었으면서 이젠 유통비용까지 농민에게 뒤집어씌우려 한다. 당사자인 농민과 처음부터 논의해야지, 일방적으로 하는 행정은 갑질에 불과하다”고 외치며 집회 열기를 끌어올렸다.
같은시각 서울시청 안 국감장에선 제주 지역구 강창일 의원(더불어민주당)이 하차거래 문제로 시장과 공사 사장을 압박했다. 강 의원은 “법과 원칙 이전에 상식이 있고 사람이 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생산자인 농민에게 부담이 가고 가격 폭등으로 인해 서울시민들에게도 부담이 간다”며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박원순 시장은 지난달 말 제주 농민들과의 면담을 통해 서울시의 추가 지원 검토를 약속한 바 있다. 답변자로 지목받은 김경호 공사 사장은 “시장이 농민들께 말씀드린 바에 따라 서울시와 적극적으로 협의할 것”이라 다짐했다.
하지만 제주 농민들은 애당초 박 시장이 약속한 지원 수준 또한 농민들이 기대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집회로 제주 양배추농가가 상당수준의 결집력을 과시한 만큼 추가 지원책이 충분치 않을 경우 가락시장 하차거래는 계속해서 거센 저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한편 제주 양배추와 비슷한 시기에 하차거래 첫 출하를 앞둔 전남 겨울대파 농가들 사이에도 불만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적재효율 감소와 작업비 증가로 대파 농가들 또한 kg당 200원의 적지 않은 물류비 증가를 예상하고 있다. 대파의 12월 평년가격은 1,600원 정도다.
이달 초 한 차례 불만을 표출했던 중부지역 대파가 출하 마무리 시기에 접어들면서 초점은 자연스레 전남지역으로 옮겨가고 있다. 겨울대파 주산지인 신안·진도 농민들은 이달 말께 자리를 만들어 앞으로의 대응 방향을 모색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