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는 좋은데 축산은 싫다?

  • 입력 2018.10.14 10:42
  • 수정 2018.10.14 10:45
  • 기자명 홍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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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홍기원 기자]

전남 보성군 노동면의 한 마을 진입로엔 축사 신축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군데군데 붙어 있다. 이제 농촌지역에서 축사를 반대하는 현수막을 찾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지방자치단체들은 축사를 둘러싼 민원이 증가하자 제각각 가축사육 제한조례를 강화하고 있다. 주거지로부터 일정 거리만큼 떨어져야 축사를 지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축사는 축산업의 생산근거로 논밭과 성격이 다를 게 없다. 그렇다고 어느 지자체가 논밭 경작을 제한하는 조례를 만들었다는 사례는 없다.

이 마을에 한우축사를 신축하려는 축산농가 A씨는 요행히 보성군 가축사육 제한지역에 관한 조례가 정한 제한범위를 벗어나 부지를 확보했다고 한다. 이 조례는 일부개정돼 지난 7월 1일부터 시행됐는데 A씨는 4월에 축사 신축 허가를 보성군에 제출했다. 해당 조례는 부칙에서 조례 시행 전에 허가서를 접수한 시설에 대해서는 조례에 따른 가축사육 제한지역 적용을 받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단지 조례가 적용하는 제한에서 벗어난다고 축사 신축 허가가 나는 건 아니다. 민원과, 건축과, 환경과 등 대개 군청 내 5~6개 부서를 거쳐야 최종 허가를 받을 수 있다. A씨는 7월 최종적으로 신축 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일부 주민들의 반대는 피하지 못했다. 이들은 자체적으로 주민회를 꾸려 반대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축사반대 주민들은 4월 보성군에 축사신축 허가를 고려해달라는 탄원을 제출했고 신축 허가가 나오자 광주지방법원에 건축허가처분 취소·공사중지가처분 등의 소송도 제기했다.

A씨는 “내 고향이 거석리고 여기서 농사를 50년, 축산은 40년을 했다. 기존 축사가 무허가축사인데 적법화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축사를 이전하려 했던 것이다”라며 “신축한 축사에 한우 70마리, 많아야 100마리 들어갈텐데 반대하는 주민들은 ‘축산업자가 기업형축사를 지으려 한다’고 말하더라”며 답답해했다. A씨는 “지금까지 축사에서 나오는 거름은 퇴비로 인근 들녘에 보내고 대신 들에선 볏짚을 수거하며 나름 지역에서 순환농업을 이뤘다고 자부한다”면서 “조례상 하자가 없고 군청도 종합적으로 심사해 허가를 냈다. 만약 소송에서 진다면 축사를 안 짓겠다”고 덧붙였다.

주민회에 참여한 B씨는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주민의 편의를 저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개발행위를 허해야 한다. 축사 신축은 개발행위에 해당하니 환경오염 등 주민의 편의를 저해하는지 따져야 한다”며 “군청의 심사가 적정했는지, 주민들의 의견수렴은 제대로 했는지 짚기 위해 법적 소송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B씨는 “축사가 들어서면 인근 주민들은 분뇨로 인한 오염과 냄새 문제, 소가 울면 소음도 겪어야 한다. 주변에 학교도 있고 주거환경을 저해해 집값 하락의 위험도 있다”면서 “사육규모 150마리면 10억원 이상의 자산가다. 기업형 축산업자가 금도를 넘었다”고 쏘아붙이기도 했다.

평행선을 달리는 양쪽의 입장이 유일하게 일치한 건 주민들의 여론이 분열됐다는 점이다. 원주민과 귀촌인의 이해가 다르고, 축사와 가까운 주민과 먼 주민의 견해가 엇갈린다. 거석리 주민인 C씨는 “우리 마을은 할머니들이 텃밭을 가꾸면 청년들이 로터리작업도 하고 비닐도 씌운다. 명절엔 학교 운동장에서 잔치도 열어 노인을 공경하는 문화가 있다. 그런데 이런 문화가 어느샌가 깨져 있더라”라며 “서로가 신뢰를 못하니 마을 공동체가 무너지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정부와 지자체는 사회갈등을 해소하고자 정책을 수립해 추진할 책무가 있다. 각종 규제로 축산업을 억제한다고 갈등이 풀리지 않는다. 거리제한을 200m로 규정한들 210m 밖의 축사는 반대가 없겠나. 고기는 좋은데 축산은 싫은 이 모순된 상황은 사회적 합의로 풀어야 할 사안 아닐까.

 

기존의 무허가축사를 적법화하는 과정에서 축사 신축을 준비 중이던 한 농민이 인근마을 일부주민들의 반대로 갈등을 겪고 있다. 한승호 기자
기존의 무허가축사를 적법화하는 과정에서 축사 신축을 준비 중이던 한 농민이 인근마을 일부주민들의 반대로 갈등을 겪고 있다. 한승호 기자
마을과 200여m 떨어진 논을 매립한 뒤 공사를 진행하지 못한 채 방치된 부지와 반대 측 주민들이 마을 입구에 내건 대형 걸개그림(작은 사진).한승호 기자
마을과 200여m 떨어진 논을 매립한 뒤 공사를 진행하지 못한 채 방치된 부지와 반대 측 주민들이 마을 입구에 내건 대형 걸개그림(작은 사진).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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