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남편 통장 내 통장

  • 입력 2018.10.14 07:27
  • 기자명 김정열(경북 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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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열(경북 상주)
김정열(경북 상주)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내 이야기이기도 하고, 내가 직접 보고 들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언니네텃밭 공동체 활동을 하면서 제일 많이 받는 질문 중의 하나가 “언니네텃밭 활동을 하면서 참여한 여성농민들에게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이다. 나는 웃으며 말한다. “권력관계요.” 농담조로 대답하지만 사실이다.

9년 전, 처음 시작할 때는 공동작업 하기가 쉽지 않았다. 매주 화요일 꾸러미 보내는 날에는 같이 작업을 해야 하는데 남편들이 “오늘은 밭에 무슨 일을 해야 한다, 논에 무슨 일을 해야 한다”면서 꾸러미 작업에 못 나가게 했다. 그래서 나온 회원들끼리만 힘들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꾸러미 공동작업이 있는 화요일은 당연히 집의 농사일은 남편 혼자 하는 날이다. 꾸러미 작업은 오전 11시부터 시작해서 오후 3~4시까지는 해야 하기 때문에 점심시간에 집에 갈 시간이 없다. 굶지 않으려면 점심은 남편이 혼자 찾아 먹어야 한다. 그래도 남편은 불만이 없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갑자기 남편에게 바다와 같은 깊은 이해심이 생겨서일까? 나는 경제적인 관계, 경제적인 변화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매달 부인의 통장으로 돈이 들어오고 자기보다 부인의 경제적인 수입이 오히려 높고, 그 돈으로 가정에서 요긴하게 쓰니 자연히 남편이 협조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노동으로 경제적인 수입을 얻는 여성농민 자신은 어떨까? 일흔이 넘으신 우리 회원 한 분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다달이 돈이 들어오니 좋아. 이 돈으로 내 살 것도 사고 화장품도 사. 모아놨던 돈으로 이번에 남편 이도 해 주었고, 며느리한테 김치냉장고도 사 줬어.” 이러니 자연히 당당해지지 않겠는가?

요즘 농촌에서는 어디 할 것 없이 ‘농민수당’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어느 지역에서 이미 했다더라, 어디는 한다더라 등등. 그런데 거기에 여성농민이 없다. 농민수당이라고 해 놓고 농가별로 지급한단다. 왜? 여성농민은 어디에 있는가?

기본소득 측면에서 봐도 그렇고 농업의 공익적 기능을 수행하는 보상 차원에서 봐도 그렇고 여성농민이 배제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여성농민도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고, 농업의 기여도로 말하자면 오히려 여성농민이 더 높다.

노인수당도 대상 어르신들 모두에게 개별적으로 지급되고, 아동수당도 대상 아동 모두에게 개별적으로 지급되는데 왜 농민수당은 개별농민이 아닌 농가단위로 지급돼야 하는가? 왜 정부와 지자체는 우리 여성농민에게만 줄 돈이 없는가?

이는 뿌리 깊은 가부장제, 아직도 여성농민을 농업의 보조자로 밖에 보지 않는 인식 때문이다. 농산물 판매대금이든 농민수당이든 남편 통장으로 들어오는 돈과 여성농민 자신의 통장으로 들어온 돈은 분명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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