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수십년 간 고압송전탑을 머리에 이며 참고 살았는데, 마을 코앞에 고속도로 터널이 또 생긴다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안성시의 한 부락 전 주민이 ‘제발 마을을 살려달라’며 호소에 나섰다.
지난 8일 방문한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금광리는 매우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마을회관에서는 고속도로 건설을 규탄하는 방송이 확성기를 통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마을 앞 도로에는 현수막 수십 개가 붙어 장관을 이뤘다. 관계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기체 양쪽에 완전 무장을 한 공격용 군용헬기가 마을 위를 오전 내내 빙빙 맴돌아 위기감을 고조시켰다.
주로 논농사를 짓는 이곳 마을 주민들은 34.5kV 고압송전선로를 두 개씩이나 머리에 이고 살아왔다. 각각 34만5,000볼트의 두 고압송전선로 간 거리는 불과 150여m. 서로 스치듯 만나는 교차점 바로 밑에 금광리의 마을회관과 민가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양새다.
주민들은 “첫번째 철탑은 박정희 정권 때, 두 번째 철탑은 전두환 정권 때 세워졌는데, 그 때는 쥐도 새도 모르게 어디로 잡혀 갈지 몰라 말 한마디 못하던 시절이었다”라며 “그래서 철탑이 세워질 당시 그 누구하나 나서지도 못하고 숨죽이며 여태까지 살아왔다”라고 말한다. 주민 이종범(81)씨는 “여기 이사 온 지 6년인데 자고 일어나면 팔이 저리고 마비가 올 정도”라며 “예전에는 전혀 느끼지 못한 증상이다. 비라도 오면 겁이 나서 밖에 사람이 나다니지 못한다”고 말했다.
수십년 동안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온 주민들에게 얼마 전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2022년 개통 예정인 고속도로 제29호선(제2경부고속도로, 포천~세종) 안성 구간이 금광리를 직격으로 관통하게 된 것. 놀랄 만큼 마을 가까이 위치한 송전선로 바로 앞에 또 다시 고속도로 왕복 6차선을 수용하는 터널 입구가 생길 예정이다.
주민들은 마을 뒷산에서 건설회사가 나무를 베는 것을 보고서야 고속도로가 마을 바로 뒤를 지난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말한다. 신용식 금광리 노인회장은 “고속도로가 생긴다고 면 단위 설명회는 했다지만 우리에게 전달된 바가 없는데 무슨 의미가 있냐”라며 “이렇게 도로공사가 직접적으로 피해를 받는 부락에 와서 마을 뒤로 터널이 생긴다고 설명한 적은 없었다”고 밝혔다.
주민들은 이번 고속도로 건설이 마을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놓는 일인 만큼 이 지역을 무인지대로 만들고 단체 이주를 위해 인근에 마을을 새로 조성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주민 이민영(67)씨는 “우리나라가 70년대 한참 발전할 때 전력 수송을 위해 우리가 이만큼 희생하고 봉사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며 “이제 부강한 나라가 됐으니 사람을 챙길 때도 되지 않았나. 지금이라도 합당한 대책을 세워주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인근의 복거마을과 장재동마을에서도 대책을 요구하는 등 고속도로 건설로 인한 반발은 계속되고 있다. 금광리는 건설 계획 인지 이후 지난 8월 ‘금광리터널 반대 및 이주대책위원회(공동위원장 이무언 이장·신용식 노인회장)’을 만들어 청와대, 국무총리실, 국토교통부, 경기도청, 안성시청, 지역구 국회의원 등 모든 유관기관에 피해를 호소하는 진정을 넣었지만 대부분 응답이 없거나 절차상 문제가 없다는 답변만 돌아오고 있는 상황이다.